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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에 무릎꿇은 봉준호 "위대한 배우 없으면 못 찍었다"

시상식 직후 봉준호 감독이 무릎을 꿇고 송강호에게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전하는 포즈를 취했다. [AFP=연합뉴스]

시상식 직후 봉준호 감독이 무릎을 꿇고 송강호에게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전하는 포즈를 취했다. [AFP=연합뉴스]

 “황금종려상은… ‘기생충’의 봉준호!”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곤잘레스 감독의 외침에 객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무대로 나서는 봉준호(50) 감독의 얼굴이 환했다. 25일(프랑스 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그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차지했다. 세계 최대의 이 영화축제에서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영화 최초로 경쟁부문에 진출한 뒤 19년 만의 쾌거다.  
 역사적 순간을 나누려는 듯 봉 감독은 주연배우 송강호, 프로듀서 곽신애 바른손 대표를 수상무대로 불러 올렸다. “‘기생충’이 저에겐 되게 큰 영화적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가 가능했던 건 함께한 아티스트들 덕분”이라며 “무엇보다 위대한 배우가 없었다면 한 장면도 찍지 못할 영화였다. 저와 함께해준 ‘동반자’ 송강호”에게 멘트를 청했다.  

"한국영화 100주년에 큰 선물"
72년 역사 칸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사상 처음 황금종려상 수상
"샤브롤, 히치콕, 김기영 감독 영향 받아
중·일 능가한 한국 거장들 많이 알려지길”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 수상자에 호명된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장에서 배우 송강호와 포옹하며 축하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 수상자에 호명된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장에서 배우 송강호와 포옹하며 축하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배우로서 인내심과 슬기로움과 열정을 가르쳐주신, 존경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배우분들에게 이 영광을 바칩니다.” 송강호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무대에서 프랑스 영화계의 이름난 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이를 미소로 지켜봤다.  
 송강호와 봉준호의 만남은 ‘살인의 추억’(2003)부터 이번에 네 번째. 칸영화제와의 인연은 2006년 ‘괴물’이 시작이다. 당시엔 비공식 부문인 감독주간이었지만, 13년 지난 올해는 영화제의 꽃인 경쟁부문에서 최고상을 안았다. 쿠엔틴 타란티노, 켄 로치, 다르덴 형제 등 할리우드‧유럽의 쟁쟁한 거장 감독들을 제쳤다.  
칸영화제 시상식 무대. 왼쪽이 봉준호 감독, 오른쪽에 앉은 사람들이 심사위원이다. [AP=연합뉴스]i

칸영화제 시상식 무대. 왼쪽이 봉준호 감독, 오른쪽에 앉은 사람들이 심사위원이다. [AP=연합뉴스]i

작가주의 영화를 애호하는 칸이 장르영화를 택한 것도 상징적이다. ‘기생충’은 경제적 처지가 극과 극인 두 가족이 뒤얽힌 블랙 코미디. 반지하와 대저택을 오가는 사회 드라마이자, 미스터리·공포 장르가 뒤섞였다.  
폐막식 후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비록 기존 장르법칙을 이상하게 부서뜨리거나 뒤섞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저는 장르영화 감독”이라며 “그래서 오늘 황금종려상이 더욱 실감 안 난다. 심사위원장 알레한드로 감독 말이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라더라. 장르영화 팬이자 만드는 사람으로서 놀랍고도 기쁘다”고 했다. 할리우드 배우 엘르 패닝 등이 9명의 심사위원단은 ‘기생충’이 “재밌고 유머러스하고 다정하다. 놀라운 영화”라 심사평을 밝혔다.
황금종려상 트로피는 든 봉준호 감독과 삼시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AFP=연합뉴스]

황금종려상 트로피는 든 봉준호 감독과 삼시위원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AFP=연합뉴스]

“마침 금년이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에요. 한국영화에 칸영화제가 의미 큰 선물을 줬습니다.” 중국 기자가 한국의 첫 황금종려상 의미를 묻자 봉 감독이 한 말이다.  
이어 “이번 영화는 클로드 샤브롤, 알프레드 히치콕과 함께 ‘하녀’를 만든 한국 거장 김기영의 영향이 컸다”면서 “제가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영화를 만든 게 아니다. 김기영처럼 많은 훌륭한 선배 감독이 계셨다”고 했다. “2006년 파리 시네마테크프랑세즈에서 김기영 회고전이 대규모로 열렸는데 프랑스 관객들이 열광적으로 보더라. 저도 거기 있었다”며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중국의 장이모우를 능가하는 한국 마스터(거장감독)들이 올해 더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할 땐 목소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시상식 무대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 뒤편에서 프랑스 영화계의 이름난 배우 카트린느 드뇌브과 박수를 치고 있다. [EAP=연합뉴스]

시상식 무대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는 봉준호 감독. 뒤편에서 프랑스 영화계의 이름난 배우 카트린느 드뇌브과 박수를 치고 있다. [EAP=연합뉴스]

한 일본기자가 “영화가 너무 한국적이어서 외국관객은 이해 못할 것이라 했다던데 실제론 다들 충분히 즐겼다. 왜 그런 우려를 했냐”고 묻자, “엄살을 조금 떨었다”고 장난스레 웃었다. “그 말을 한국 기자회견에서 했는데, 칸영화제에 먼저 소개되지만 한국 개봉 때 우리끼리 킥킥거리며 즐길 요소가 있다. 그런 걸 강조하고 싶었다”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고 가족 드라마여서 다른 나라에도 보편적으로 이해되리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다”고 했다.  
또 “이번 영화제에서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는 미국 영화매체 인디와이어 코멘트가 가장 감격이었다”면서 “‘기생충’은 제가 해오던 작업(장르변주)을 계속 한 일곱 번째 영화이고 이제 여덟 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취재진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 그는 “(오늘 수상 같은 일은) 축구나 월드컵 쪽에서나 나오는 현상인데 쑥스럽다. 약간 판타지영화 같이 초현실적인 느낌”이라며 “이 순간을 17년간 함께한 송강호 선배님과 함께하고 있어서 더 기쁘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전혀 예측 못했는데 발표 차례가 황금종려상에 다가갈수록 마음은 흥분되는데 현실감이 느껴졌다”고 했다. 함께 있던 송강호는 “위대한 감독들이 계셨는데 안 불리면 안 불릴수록 (‘기생충’의 수상 가능성이 높아져) 점점 긴장하고 바들바들 떨렸다”고 했다.  
벅찬 표정으로 시상식 무대에 오른 배우 송강호. [AP=연합뉴스]

벅찬 표정으로 시상식 무대에 오른 배우 송강호. [AP=연합뉴스]

수상여부는 모른 채 이날 오후 7시 폐막식에 참석하란 연락을 이날 낮 12시41분에 받았다고 한다. 송강호는 “보통 12시에서 1시 사이 연락한다고 들었는데 연락이 딱 41분에 와서 그 40분이 피 말렸다”고 귀띔했다.
봉 감독은 2006년 ‘괴물’을 감독주간에 선보인데 이어 2008년 옴니버스 영화 ‘도쿄!’, 2009년 김혜자 주연 영화 ‘마더’로 잇달아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진출했다. 2011년 신인감독상인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도 맡았다. 경쟁부문은 2년 전 ‘옥자’로 처음 초청됐지만 넷플릭스 제작 영화란 논란 끝에 수상은 불발됐다. 절묘하게 장르를 비틀어, 사회 풍자로 날을 세우는 솜씨만큼은 매 작품 인정받았다.  
이번 영화는 그 절정이란 평가다. 영화제 소식지 스크린데일리에서 올해 경쟁작 21편 중 최고 평점인 3.5점(4점 만점)을 받으며 폐막 전부터 수상이 유력시됐다. 투자자배급사 CJ ENM에 따르면 '기생충'은 한국영화 역대 최다인 192개국에 판매됐다. 박찬욱 감독 ‘아가씨’의 종전 176개국 기록을 넘어섰다. 
현지에서 수상과정을 지켜본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평단과 영화산업에 동시에 찬사 받는 일이 극히 드문데 봉준호 감독은 해냈다. 어려운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영화에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열어줬다”고 했다.  
심사위원대상 수상자로 나선 할리우드 배우 실베스타 스탤론과 '아틀린틱'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감독 마티 디옵. [AP=연합뉴스]

심사위원대상 수상자로 나선 할리우드 배우 실베스타 스탤론과 '아틀린틱'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감독 마티 디옵. [AP=연합뉴스]

올해 시상식에서 가장 큰 이변은 ‘기생충’의 대항마로 점쳐졌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사실상 무관에 그친 대신 세네갈계 프랑스 신인 마티 디옵 감독의 ‘아틀란틱스’가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한 것. 흑인 여성 감독으론 칸영화제 72년 역사상 처음 경쟁부문에 진출한 그는 가난한 건설현장인부들의 탈출기를 그린 이 장편 극영화 데뷔작으로 예상밖의 큰 주목을 받았다.
심사위원장 이냐리투 감독은 “올해 수상작들은 당면한 사회현실에 대한 자각이 엿보였다. 하지만 정치적 어젠다가 심사기준은 아니었다. 영화 그 자체 외엔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프랑스 칸=나원정 기자 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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