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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입놀림, 불량태클 견뎌내는 것도 당구 실력

기자
이인근 사진 이인근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6)
지난 1일 경기 일산 엠블호텔에서 열린 PBA 프로당구 트라이아웃에서 이범철(왼쪽부터), 이준우, 최성준이 신중히 경기를 펼치고 있다. [뉴스1]

지난 1일 경기 일산 엠블호텔에서 열린 PBA 프로당구 트라이아웃에서 이범철(왼쪽부터), 이준우, 최성준이 신중히 경기를 펼치고 있다. [뉴스1]

 
당구의 승패를 가르게 되는 중요한 요인으로는 실력과 운 외에 멘탈이 있다. 당구 게임을 할 때 인원은 둘, 셋 또는 둘이 한편이 되어 넷이 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일대일 게임이다. 이와 유사한 경기 운영의 스포츠로는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가 있다. 이들 스포츠는 상대방이 치는 공을 순간적으로 맞받아치는, 주로 육체적 순발력이 요구되는 지극히 상대적인 운동이다. 순발력과 기술의 우열이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다.
 
당구의 경기 방식은 일반 운동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상대방의 공을 뺏거나 되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은 자기 차례에서 자기 공을 치고, 나는 내 차례에서 내 공을 치는 것이다. 상대방이 득점하지 못할 경우에만 내 차례가 주어지는 독특한 방식이다. 분명 형식적으로는 경기 대상이 있는 상대적인 게임이면서도 실제 진행은 상대방의 개입 없이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플레이를 하는 독자적인 게임이다.

다른 경기보다 심리적 요소 강하게 작용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상대성과 독자성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 당구 게임에는 상대방과 나의 실력 내지 기술이라는 물리적 경기력 외에 정신적, 심리적 요소가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강하게 개입한다는 점이다. 당구와 유사한 방식의 경기로서는 골프가 있다. 나는 경험이 없지만 골프 또한 정신적, 심리적 요소가 적지 않게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구는 일단 내가 상대방 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면 심리적 안정을 가지고 좀 더 편안하게 게임을 운영하고 리드할 수 있다. 물론 경적필패(적을 쉽게 여기면 반드시 패한다)의 룰이 있지만 내가 여유를 가지고 리드를 해나가면 상대방은 주눅이 들어 전전긍긍하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즉 내가 상대방보다 기술이건 운이건 좀 더 낫다 싶으면 평소보다 잘 치게 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제 실력보다 못 치게 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몰인정한 법칙이 가차 없이 작동하게 된다. 심지어 상대가 웬만큼 안 될 경우에만 나는 적당히 긴장하면서 잘 치게 되는 것이지 상대가 워낙 못 치게 되면 나도 김이 빠져 덩달아 못치게 되는 경우도 가끔 생긴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엠블호텔에서 열린 PBA(프로당구협회) 투어 트라이아웃에서 박근형이 공을 치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달 22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엠블호텔에서 열린 PBA(프로당구협회) 투어 트라이아웃에서 박근형이 공을 치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당구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 집중력과 같은 멘탈적 요소가 필요하다. 자신의 차례에서 비교적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여러 가지의 해결 방식 중 자신에게 적합하고 유리한 솔루션을 선택하는 특수성으로 나름 활발한 두뇌 활동을 요구한다. 이런 것들이 당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정신적, 심리적 요소가 많이 작동하게 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탁구나 배드민턴처럼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공이 서로 왔다 갔다 하면 이건 정말 뭘 생각할 겨를도 없고 따라서 실력 차이에 따른 심리적 압박이 끼어들 여지도 없다. 당구는 상대방이 잘 치는 것을 보면 “아하 이게 만만치 않겠네” 하고, 또 내가 못 치면 “어허 내가 왜 이러지” 하며 스스로 심리적 압박과 자책을 가하게 된다. 게다가 당구는 아주 미세한 감각이 요구되는 것이라, 멘탈의 흔들림은 바로 감각의 흔들림으로 나타나게 된다.
 
당구에서는 유난히 상대방에 대한 에티켓이라든지 매너가 강조되는데, 바로 이런 멘탈적 요소가 경기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선수들의 경기에서도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어떤 선수는 자기 차례가 오게 되면 아무리 쉬운 공이라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큐대로 각을 재보며, 한번 엎드렸다가 다시 일어나는 등의 잔망스러운 행동으로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경기를 자기에게 이롭게 끌고 가려고 한다.
 
예전 어느 일본의 당구 선수는 이러한 심리전을 지나치게 활용해 상대방을 흥분시켰다고 한다. 이 선수의 당구 매너에 대한 비난이 일자 결국 공식 경기에서 시간제한을 두게 되는 사태로 번졌다.
 
친구들 사이의 당구에서는 일부러 상대방의 경기력을 떨어뜨리려고 이런 멘탈적 요소를 자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시간제한도 없거니와 아주 신중한 친구가 내 앞 차례여서 이것저것 재가며 진을 빼면(최악은 하수에다 무지하게 생각은 많고 행동은 느린 친구가 한눈에 보이는 쉬운 배치를 두고 이것저것 재다가 쉬운 배치를 선택하고는 느긋하게 자세를 잡는 경우인데, 이에는 적잖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처럼 자발 머리 없는 사람은 공이 채 멈추기도 전에 자세를 잡고 분풀이라도 하듯 냅다 치곤 하는데, 결국 게임을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주 도발적인 자극에 멘붕
지난달 22일 경기도 일산 엠블호텔에서 열린 PBA 프로당구 트라이아웃에서 임아람(왼쪽)과 조준혁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2일 경기도 일산 엠블호텔에서 열린 PBA 프로당구 트라이아웃에서 임아람(왼쪽)과 조준혁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뉴스1]

 
이런 진 빼기 작전은 애교에 불과하고 아주 도발적이고 불량한 멘탈 자극이 횡행한다. 다행히도 내가 못 치고 있을 때보다는 잘 치고 있을 때(못칠 때 견제가 들어 오면 싸움이 날 수도 있으니) 상대방으로부터 여지없이 불량한 태클이 들어온다.
 
축구에서처럼 물리적이 아닌 심리적 태클인데, 주로 언어적 견제(입놀림으로 심리전을 펴는 것. 예전엔 일본말인 ‘구찌 겐세이’ 라고도 했다)다. 대개는 쉽게 웃어넘기지만 어떤 때는 상당히 기분이 언짢을 때도 있다. 이럴 땐 공에 집중하지 못하고 반드시 실수하기 마련이다.
 
당구는 멘탈 게임인가. 그렇다. 비록 오늘의 패배가 상대방의 치사한 심리전 때문이라고 자위하더라도 자신의 멘탈이 부족해 상대방의 견제에 넘어간 것이리라. 어쨌거나 당구비는 패자 부담이라는 냉엄한 현실은 멘탈이 당구 승부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유물론적으로 통렬하게 증명해 준다.
 
그러나 뭐가 그리 대수랴. 이런 멘탈적 요소 때문에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은 별도로 멘탈 강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당구를 치면서 저절로 멘탈 강화 프로그램을 받는 셈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따금 느슨해지는 즈음에 즐겁게 웃기도 하면서 멘탈 강화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한다는 것이 당구의 일석이조 효과가 아니겠는가
 
깨알 당구 팁
당구 큐. [사진 pixabay]

당구 큐. [사진 pixabay]



당구에 마법 불어넣는 ‘분필 가루’
당구 큐(Cue) 끝에는 ‘팁’이 있고 팁에다 ‘초크(분필 가루. 처음에는 매직 파우더로 불렸다 함)’를 바른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소품이 당구를 지극히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대 당구의 기원설은 영국 설, 프랑스 설이 있는데 팁은 밍고 라는 프랑스인이, 초크는 영국인 존 카가 발명했다고 한다.
 
초창기 당구 큐는 단순한 나무 막대기였는데 큐의 끝부분에 가죽을 사용한 팁이 부착되면서 현대적 모습을 갖추게 됐다. 팁은 임팩트 순간의 반발력을 완충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큐 볼의 정중앙에서 빗겨 치면 ‘큐 미스’가 발생했는데, 팁에 분필 가루를 팁에 바르면 큐 미스 없이 회전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로 인해 좀 더 정교한 당점 조준이 가능해졌으며 밀어치기, 당겨치기, 회전, 곡구 등의 화려한 당구 기술이 생겨났다고 한다. 당구 용어로 ‘잉글리쉬(English)는 회전이라는 의미다.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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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