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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의 심스틸러] 뻔한 ‘걸캅스’를 극장서 봐야 하는 이유

영화 ‘걸캅스’에서 첫 주연을 맡은 배우 라미란. 전설적인 여형사로 이름 날리던 시절의 모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걸캅스’에서 첫 주연을 맡은 배우 라미란. 전설적인 여형사로 이름 날리던 시절의 모습.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걸캅스’는 2019년 5월이 아니었으면 빛을 보기 힘들었을 작품이다. 여형사 두 명, 그것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민원실로 밀려난 주무관과 꼴통 형사가 이 콤비를 이뤄 비공식 수사를 벌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설정일뿐더러 그것을 상업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영화계를 비롯 각계각층에서 벌어진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팽배하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계기가 됐다. 
 
1993년 안성기ㆍ박중훈의 ‘투캅스’로 시작한 한국 형사물이 남북 형사 유해진과 현빈이 만난 ‘공조’(2017), 경찰대생 박서준ㆍ강하늘의 ‘청년경찰’(2017) 등 다채로운 변주를 계속하는 동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경찰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는 문제의식이 생겨난 것.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2017)과 ‘캡틴 마블’(2019)이 액션 영화의 새로운 전기를 연 것도 불을 지폈다. 
 
올 초부터 시작된 ‘버닝썬 게이트’에 대한 공분도 한몫했다. 모바일 단체방 대화내용을 통해 여성 대상 성범죄의 실상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우리 사회의 민낯도 까발려졌다.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드러난 것이다. ‘걸캅스’ 시나리오는 이미 3년 전에 완성됐지만, 현실과 상당히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극 중 클럽을 중심으로 해피벌룬·매직퍼퓸 등 신종 마약이 퍼져 나가고, 불법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유포하는 양상은 현실을 빼다 박은 수준. 48시간 안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도 우리 관할이 아니란 이유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까지 닮았다.
 
‘걸캅스’에서 이들이 일하는 곳은 경찰 민원실이다. 양장미(최수영), 조지혜(이성경), 박미영(라미란)은 비공식수사에서 숨겨둔 장기를 발휘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걸캅스’에서 이들이 일하는 곳은 경찰 민원실이다. 양장미(최수영), 조지혜(이성경), 박미영(라미란)은 비공식수사에서 숨겨둔 장기를 발휘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사실 ‘걸캅스’는 처음부터 배우 라미란(44)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기획이었다. 라미란에게 첫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영화 ‘소원’(2013)을 만든 제작사 필름모멘텀의 변봉현 대표가 “라미란을 주인공으로 한 형사물을 만들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정다원 감독은 아예 그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그렇게 한때 사건 현장을 주름잡던 전설적인 형사였지만 지금은 결혼과 출산 등으로 경력이 단절돼 민원실장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주무관 박미영이 탄생했기에 애당초 라미란 맞춤형 캐릭터인 셈이다.
 
실제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후 대학로 연극 무대에 오르다 결혼 및 출산 후 쉬는 동안 ‘친절한 금자씨’(2005)를 통해 영화계에 발을 딛게 된 그는 “출연 영화 48편, 데뷔 20년 만에 첫 주연”을 맡은 저력을 몸소 보여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 등에서 보여준 생활연기는 물론 ‘히말라야’(2015) 등에서 선보인 강단 있는 모습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한국 영화사에서 단역에서 시작해 조연을 거쳐 주연에 이른 여배우는 그가 유일하지 않을까. 출연 드라마 30여편을 합한 필모그래피는 80편에 달할 정도다. 
 
‘걸캅스’에서 화려한 액션신을 선보이는 라미란. 생활연기와 어우러져 새로운 느낌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걸캅스’에서 화려한 액션신을 선보이는 라미란. 생활연기와 어우러져 새로운 느낌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 같은 장점은 ‘걸캅스’에서도 십분 발휘된다. 극 중 시누이이자 동료인 조지혜 형사(이성경)와 함께 밥상에 앉아 무능한 백수 남편 조지철(윤상현)을 구박하는 장면은 시월드 그 자체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신에서조차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러니 범인을 향해 날라차기를 하는 액션신은 오죽할까. 잘 다려진 수트 대신 주름진 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달리는 그의 액션신은 폼나진 않을지언정 생활감이 흠뻑 묻어난다.
  
“전직 형사라 몸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마음이 놓였다”는 라미란의 말과 달리 한 달간 액션 스쿨에서 구슬땀 흘리며 배운 액션 연기도 일품이다. 이번 영화를 위해 복싱과 레슬링까지 섭렵한 그는 “최대한 대역을 쓰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덕분에 몸짓 하나에도 감정이 실려있다. 예능 프로 ‘언니들의 슬램덩크’(2016)에서 최고령 걸그룹 언니쓰에 도전하기 위해 노래와 춤 연습을 하던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라미란과 노력이라는 단어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지난달 17번째 시즌을 마친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에서는 진상 라부장 역할로 활약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지난달 17번째 시즌을 마친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에서는 진상 라부장 역할로 활약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그럼에도 ‘걸캅스’를 잘 만든 영화라 말하기는 힘들다. 여형사가 전면에 나서는 이야기를 한다는 미명 하에 기존에 남성 중심 서사가 범해온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선, 남성은 악의 위치에 놓는 편리한 이분법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프레임을 반복하는 탓에 어디선가 본 듯한 클리셰로 점철된 장면도 이따금 등장한다. 거기에 불필요한 욕지거리는 듣기 불편할 정도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길 바라는 이유는 하나다. 2016년 공효진ㆍ엄지원 주연의 ‘미씽: 사라진 여자’는 손익분기점(160만명)을 넘지 못하고 누적 관객 수 115만명에 멈춰 섰지만, ‘미씽’의 도전이 있었기에 지난해 한지민 주연의 ‘미쓰백’이 72만 관객을 동원해 손익분기점(70만명)을 가까스로 넘길 수 있었던 것처럼 ‘걸캅스’가 다시 하나의 변곡점을 마련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개봉 보름째인 24일 기준 137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손익분기점(150만명)까지 남은 관객은 13만명. 기왕이면 표만 사고 영화는 보지 않는 ‘영혼 보내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직접 영화를 보고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함께 공유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야 그다음은 ‘쓰백러’나 ‘영혼 보내기’ 없이도 자연스럽게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가 등장하는 토대가 마련될 테니 말이다. 더이상 “여성 영화는 보는 사람이 없어서 안 만든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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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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