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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줌바댄스, 내일은? 시집살이 아내의 '사생활'

기자
이한세 사진 이한세
[더,오래] 이한세의 노인복지 이야기(30)
영화 '퍼펙트 웨딩'의 한 장면. 영화 '퍼펙트 웨딩'은 예비 신부와 예비 시엄마 사이의 고부갈등을 다뤘다. [중앙포토]

영화 '퍼펙트 웨딩'의 한 장면. 영화 '퍼펙트 웨딩'은 예비 신부와 예비 시엄마 사이의 고부갈등을 다뤘다. [중앙포토]

 
지난 2019년 1월 10일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시작했으니 아내가 늦깎이 시집살이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넉 달을 넘기고 있다. 수십 년간 부모님을 모셔온 다른 자녀들에 비하면 아직 왕초보다. 따라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어떻다”라고 섣불리 말하기 어렵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아내가 나에게 들려준 3가지 힘든 점과 좋은 점이 있다.
 
첫째 힘든 점은 식사준비라고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해서 나와 단둘이 살 때보다 하루 여섯 끼로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아내에게 식사준비가 부담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매일 6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는 어머니의 시간에 맞추어, 아침 7시면 식사준비를 해야 한다. 점심도 아내가 차려서 어머니와 대부분 둘이 같이 먹는다. 저녁도 무언가 어머니 혼자서 드실 수 있도록 마련해 드리고 나서야 아내는 오후에 출근하니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두 번째는 어머니의 잔소리다. 동년배의 다른 어르신에 비해 잔소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87세의 노인이 갖는 특성은 어쩔 수 없다. 그중에 하나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야기와 다소 유교적인 가르침이다.
 
어련히 알아서 끌 거실의 전등불도 “전기세 많이 나가니 불은 꼭 끄도록 해라”, “오늘은 분리수거 날이니 쓰레기 버릴 준비 해라”, “화분에 물은 주었니?”, 그리고 출근 때마다 잊지 않는 말씀 “운전 조심해라” 등이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말지만 아내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힘든점 중 하나는 바로 '잔소리'다. 동년배의 다른 어르신에 비해 잔소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87세의 노인이 갖는 특성은 어쩔 수 없다. [중앙포토]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힘든점 중 하나는 바로 '잔소리'다. 동년배의 다른 어르신에 비해 잔소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87세의 노인이 갖는 특성은 어쩔 수 없다. [중앙포토]

 
세 번째는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아내의 저녁 시간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전에는 저녁에 집 소파에 누워 TV를 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장시간 전화통화도 하며 자유롭게 지내던 그녀였다. 그런데 살림을 합치면서 오후와 저녁 시간의 대부분을 집이 아닌 회사나 외부에서 보내게 되었다.
 
아내가 어머니의 저녁까지 집에서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요량으로 어머니께는 아내가 오후에 출근해 저녁 늦게 10시쯤 퇴근한다고 말씀드렸다. 물론 이 출퇴근 시간은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혼자 저녁 식사를 하더라도 나와 아내를 기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아내는 오후 2시쯤 출근해 6시 이후에는 집으로 퇴근하기보다 나와 함께 저녁을 먹고 사무실 2층 본인의 개인 공간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때로는 “집을 두고 굳이 이렇게밖에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보니 이렇게 아내에게 세 가지 힘든 점이 생겼는데 의외로 좋은 점도 있다. 그것은 흥미롭게도 힘든 점이라고 여기고 있는 식사준비, 어머니의 잔소리, 자유롭지 못한 저녁 시간이다.
 
식사준비가 힘이 들면서도 아내에게 자부심을 가져다주고 있다. 5년 전 내가 고지혈증 진단을 받게 되었을 때 모성애가 남다른 아내는 나를 위한 식단에 무척 신경을 썼다. 가급적 지방이 많고 짠 음식을 줄이고, 대신 야채와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을 짜고자 이탈리아 요리학원에도 다니고 베이커리 아카데미도 수료했다.
 
또한 아내는 식기류 선택과 메뉴 디스플레이에 타고난 눈썰미가 있었다. 이러한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황후나 먹을 수 있는 건강 식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2년이 지나자 아내는 꾀가 났는지, 나의 식단을 점점 황후에서 중산층으로 격하시키더니, 어머니와 합치기 전에는 마침내 나는 서민의 아침 식단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식단의 격상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아내는 무언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어머니의 인정도 받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평생을 바쁘게 살았고 아버지 작고 후 15년간 혼자서 힘들게 식사를 준비해 온 어머니 눈에는 그야말로 황후의 건강 식단이 아닐 수 없다. 메뉴 디스플레이에 일가견이 있는 아내니 어머니에게는 아침 차림 세트가 신기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식사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어쩜 이렇게 음식을 잘하니”, “없는 재료에서 뚝딱뚝딱 도깨비처럼 20분 만에 이걸 다 만들다니”, “모니카(아내의 천주교 세례명)야 나 혼자 먹기에는 너무 아깝다. 요리선생님을 하든지 레스토랑을 차려도 되겠다”.
 
아내가 준비한 음식들. 어머니는 식사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진 이한세]

아내가 준비한 음식들. 어머니는 식사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진 이한세]

 
여기에 더해 어머니는 가끔 식사 후 “잘 먹었습니다”라고 경어로 혼잣말처럼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식사를, 그것도 혼자가 아닌 자녀 부부와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한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일 것이리라.
 
주말에 어머니 집을 방문하는 형님 부부가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 전에 보다 건강해 보이세요. 안색도 좋으시고요”라고 안부를 물으면 어머니는 “어미야 말도 마라. 모니카가 얼마나 음식을 잘하는지 내가 요즘 먹는 즐거움으로 산다. 몸무게도 1kg이 넘게 불었단다. 얼굴도 살이 올라 글쎄 성당에 갔더니 교우 할머니가 나보고 얼굴이 부은 것 같다고 하지 않겠니. 그래서 내가 부은 것이 아니고 살이 찐 거라고 답해 주었다”라면서 웃었다. 어머니의 답변을 들으며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형수의 눈에 대견함이 묻어있었다.
 
두 번째 좋은 점은 어머니의 잔소리다. 10여년 전 장인, 장모님이 1년 사이로 갑자기 돌아가셔 아내는 늘 마음 한구석이 빈 것처럼 허전해 했다. 친정엄마처럼 잔소리해 줄 사람도 더 이상 없고, 이래도 “응”, 저래도 “응” 건성으로 대답하는 남편인 나를 보고 아예 잔소리해도 좋으니 관심 좀 가져보라고 구시렁거리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허전함을 안고 살지만 사교성이 좋은 아내와 약간의 잔소리가 있지만 한계를 아는 어머니가 묘한 조합을 이루어 가끔은 둘을 수다쟁이로 만들고 있다. 일요일 점심 후 나는 무뚝뚝하게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로 인터넷을 보고 있으면, 거실 식탁에서 두 여인의 수다 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무엇이 재미있는지 아내는 킥킥대며 웃고 어머니는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나중에 아내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결혼 후 직장생활 할 때 들이대던 남자들 이야기였다고 하면서, 그때 잘못 했으면 당신 동생 생길 뻔했다고 아내가 귀띔해 주었다. “헐~ 우리 어머니에게 그런 연애 에피소드가 있었다니……”
 
세 번째 긍정적인 변화는 아내가 저녁 시간에 여전히 100% 자유스럽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자유스럽지 못하기보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다소 편안함을 희생해야 하니 그만큼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둘이 살던 때 아내의 저녁 시간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냥 주어진 시간이었다. 소파에서 누워서 TV 보고 싶으면 보고, 장시간 친구들과 전화 수다를 떨어도 그만이었다.
 
어머니가 저녁때 혼밥을 하는 덕분(?)에 아내나 나의 저녁 시간 자유가 만들어진 부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가 6시 이후의 자유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지 궁리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 저녁 8시 타임 줌바댄스에도 다니고 서울에서 열리는 10회 인문학 강좌도 끊었다.
 
1992년 대학원을 졸업한 어머니의 논문. 아내는 당시 만 60세였던 어머니의 석사 논문을 보고 야간 대학원을 다녀볼 요량으로 대학을 알아보고 있다. [사진 이한세]

1992년 대학원을 졸업한 어머니의 논문. 아내는 당시 만 60세였던 어머니의 석사 논문을 보고 야간 대학원을 다녀볼 요량으로 대학을 알아보고 있다. [사진 이한세]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하반기에는 야간 대학원을 다녀볼 요량으로 대학을 알아보고 있다. 어머니의 오래된 짐을 정리하다 나온 한 권의 책이 아내에게 충격을 주었다. 1992년 중앙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한 대학원생의 석사 논문이었다. 그런데 석사 논문 제출자가 바로 어머니였다.
 
1933년생인 어머니가 1992년에 석사 논문을 제출하였으니 그 당시 만 60세다. 아직 60세가 되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하는 아내가 어머니의 석사 논문을 보고 동기부여를 받은 것 같다.
 
삶은 한결같으나 힘든 점과 좋은 점 모두 가지고 있고, 하늘에 있는 달도 변함없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식사준비, 어머니의 잔소리, 약간의 희생이 따르는 저녁의 자유 시간, 또한 힘든 점과 좋은 점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힘든 점과 좋은 점 중 누구와 더 친할 것인지는 남이 아닌 나에게 달려있다.
 
이한세 스파이어리서치&컨설팅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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