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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내 책상 뺐다, 한 층이 다 내 자리 됐다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SK D&D 판교 사무실의 모습. 매일 앉고 싶은 자리를 앱으로 예약하는 '자율좌석제'를 도입했다. [사진 노경 작가]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SK D&D 판교 사무실의 모습. 매일 앉고 싶은 자리를 앱으로 예약하는 '자율좌석제'를 도입했다. [사진 노경 작가]

 
기업 사무실에는 오랜 자리 공식이 있다. 창가부터 복도까지 책상 배치를 할 때 직위 순대로 놓거나, 임원실에는 널찍한 가죽 소파가 놓여야 한다는 배치 방법이다. 앉은 자리가 그 사람의 서열을 보여준다. 상사는 직원이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기 좋고, 직원들은 윗사람에게 일하는 티 내기 좋은 구조다.  
 
최근 들어 이 오랜 공식에 균열이 가고 있다. “자리에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있어야 일 잘한다고 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기업들이 공간 개조에 나섰다. 관상용이 아니다. 모바일 시대, 주 52시간 시대에 일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한 결과다. 달라지는 일의 방식에 맞춰 사무 공간도 바뀌어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SK그룹 계열 부동산개발기업 SK D&D의 판교 사무실을 찾았다. 제일기획, 삼성 우면동 R&D센터 등의 사무공간을 디자인했던 김정임 건축가(서로아키텍츠 대표)가 설계했다. 또 건축사사무소 중 최초로 ‘자율좌석제’를 도입한 김찬중 건축가의 더 시스템 랩 성수동 사무실도 둘러봤다.  
 
“김 과장 잠깐 이리 와봐”가 일 못 하게 한다
 
바뀌기 전 사무실의 풍경. 익숙한 사무 공간의 모습이다.[사진 서로아키텍츠]

바뀌기 전 사무실의 풍경. 익숙한 사무 공간의 모습이다.[사진 서로아키텍츠]

6개의 공간 컨셉트 중 '라이브러리'의 모습.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할 수 있는 '예약 좌석'이다. 책상 위 QR 코드에 핸드폰을 대면 예약자 이름이 화면에 뜬다.[사진 노경 작가]

6개의 공간 컨셉트 중 '라이브러리'의 모습.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할 수 있는 '예약 좌석'이다. 책상 위 QR 코드에 핸드폰을 대면 예약자 이름이 화면에 뜬다.[사진 노경 작가]

'라이브러리'의 주변은 책장을 둬서 부서마다 따로 보관했던 자료를 공유하게 했다.[사진 노경 작가]

'라이브러리'의 주변은 책장을 둬서 부서마다 따로 보관했던 자료를 공유하게 했다.[사진 노경 작가]

 
판교의 SK 에코 허브 빌딩 3층에 있는 SK D&D 사무실의 면적은 2380㎡(약 720평)다. 기존 공간(사진 위)은 부서 단위로 나눠 배치한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사무실이었다. 
 
그런데 바뀐 사무실은 부서별로 자리 배치를 하지 않았다. ‘라이브러리’ ‘홈’ ‘팩토리’ ‘그린하우스’ 등 컨셉트에 따라 6개의 공간으로 나눴다. 앉고 싶은 자리를 선택해 앉는 ‘자율좌석제’다. 연이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리를 예약할 수 있다. 
 
SK D&D의 이치원 과장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감시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자율적이면서 자기 주도적으로 해낼 수 있게 공간을 바꿔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전했다. 이를테면 부장이 수시로 “김과장 잠깐 이리로 와봐”라며 자리로 부르는 게 오히려 업무 집중도를 낮춘다는 이야기다.  
 
자율좌석제에 숨겨진 영리한 공간 활용법
 
사물함의 모습.[사진 노경 작가]

사물함의 모습.[사진 노경 작가]

개인 사물함에 바구니를 넣을 수 있게 제작했고, 바구니는 책상 아래 서랍처럼 꽂아 쓸 수 있게 했다.[사진 서로아키텍츠]

개인 사물함에 바구니를 넣을 수 있게 제작했고, 바구니는 책상 아래 서랍처럼 꽂아 쓸 수 있게 했다.[사진 서로아키텍츠]

 
회사에 나만의 책상이 없다. 더는 자리를 독점할 수 없다. 책상 위에 뒀던 가족사진은 어디에 보관해야 할까. 그래서 직원마다 사물함이 하나씩 생겼다. 김정임 대표는 “사물함 안에는 따로 디자인한 바구니가 있고, 그 바구니에 개인 소지품을 넣어 예약한 자리 아래 서랍처럼 끼워 넣어 쓸 수 있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화장실에도 개인 칫솔을 보관할 수 있는 사물함을 뒀다.  
 
옛 임원실의 모습.[사진 노경 작가]

옛 임원실의 모습.[사진 노경 작가]

바뀐 임원실. 따로 있던 방이 모였고, 작아졌다. 방 안에 소파가 없다. 대신 개인 업무를 보면서 직원 면담을 할 수 있는 책상을 제작했다.[사진 노경 작가]

바뀐 임원실. 따로 있던 방이 모였고, 작아졌다. 방 안에 소파가 없다. 대신 개인 업무를 보면서 직원 면담을 할 수 있는 책상을 제작했다.[사진 노경 작가]

 
임원실 역시 개조 대상이었다. 건축가는 흩어져 있던 10개의 임원실을 한 공간으로 모았다. 그리고 방 크기를 21.9㎡(6.6평)→ 11.5㎡(3.5평)로 줄였다. 방에 책상과 소파 대신, 개인 업무도 보면서 직원 상담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책상을 특별히 디자인했다. 대신 임원 공용라운지를 둬서 협업은 밖에서, 개인 면담만 방에서 할 수 있게 했다. 김 대표는 “밀실 문화가 생길 수 없는 방 구조”라며 웃었다.  
 
기존 사무실에는 책상이 총 120개가 있었다. 지금은 226개다. 예약해서 쓸 수 있는 자리는 162석이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오가며 쓸 수 있는 이른바 ‘핫 데스크’다. 개인당 자리 배치를 안 했더니 쓸 수 있는 공간이 더 넓어졌다. 복도에도 서서 잠깐 업무를 볼 수 있는 책상을 두기도 했다. 경계를 허무니 한 공간의 쓰임이 다채로워졌다.  
 
왼쪽은 '팩토리'의 전경. 움직이는 칠판 겸 칸막이를 둬서 회의를 할 때 공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게 했다. 오른쪽 공간은 원래 복도였으나, 서서 잠깐 업무를 볼 수 있게 책상을 뒀다.[사진 노경 작가]

왼쪽은 '팩토리'의 전경. 움직이는 칠판 겸 칸막이를 둬서 회의를 할 때 공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게 했다. 오른쪽 공간은 원래 복도였으나, 서서 잠깐 업무를 볼 수 있게 책상을 뒀다.[사진 노경 작가]

폰부스.[사진 노경 작가]

폰부스.[사진 노경 작가]

 
김 대표는 “20일 오프닝 때 직원들이 자기 책상 뺀다고 싫어할 줄 알았는데, ‘자리 뺏긴 게 아니라 3층 전체를 쓰게 됐다’고 좋아해 흐뭇했다”고 말했다. SK D&D 측은 “회사가 성장해 직원 수가 늘다 보니 사무 공간을 더 임대해야 했던 터에 그 비용으로 기존 공간을 리모델링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인기 없는 자리는 팀장님 옆자리  
더 시스템 랩 성수동 사무실의 모습. 개인 노트북으로 장비를 모두 바꾸고 '자율좌석제'를 도입했다. 앉고 싶은 자리에 일주일 단위로 바꿔 앉을 수 있다. [사진 김용관 작가]

더 시스템 랩 성수동 사무실의 모습. 개인 노트북으로 장비를 모두 바꾸고 '자율좌석제'를 도입했다. 앉고 싶은 자리에 일주일 단위로 바꿔 앉을 수 있다. [사진 김용관 작가]

 
 
공용공간으로 쓰는 라운지의 모습. 사무실의 절반은 일하는 책상이 놓인 스튜디오이고 절반은 라운지다.[사진 더 시스템 랩]

공용공간으로 쓰는 라운지의 모습. 사무실의 절반은 일하는 책상이 놓인 스튜디오이고 절반은 라운지다.[사진 더 시스템 랩]

 
‘주 52시간 근무제’가 공간을 바꾸기도 한다. 건축사사무소 더 시스템 랩은 업계 최초로 ‘자율좌석제’를 도입했다. 성능 좋은 PC를 쓰다 보니, 고정좌석이 필수인 분야에서 드문 시도다. 사무소의 대표인 김찬중 건축가는 “가장 성능 좋은 노트북으로 모두 바꾸고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자료를 저장케 해, 일주일 단위로 자리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사무소의 총 직원은 45명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김 대표는 “젊은 직원들을 면접하면 ‘주 52시간 하느냐’부터 묻는다”며 “이미 ‘300인 이상의 사업장에 한해서만’이라는 필요조건보다 ‘주 52시간 근무제’ 자체가 일터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또 “제때 일을 끝맺도록 자율성을 최대한 주고자 공간과 시스템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라운지에 있는 스크린에는 분당 사무실과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오픈 채널이 늘 켜져 있다. [사진 더 시스템 랩]

라운지에 있는 스크린에는 분당 사무실과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오픈 채널이 늘 켜져 있다. [사진 더 시스템 랩]

 
더 시스템 랩은 지난해 말 성수동 사무실로 이전하면서 기존 분당 사무실을 그대로 뒀다. 직원들은 출퇴근하기 편한 사무실로 가서 일하면 된다. 앞으로 사무실 지점을 더 늘릴 생각이다. 각 지점의 회의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24시간 오픈 채널도 갖췄다.  
 
한때 우리나라 기업 사무 공간의 롤모델은 ‘미국 구글 본사’였다. 한국 기업의 답사 인원이 상당했는데, 구글 본사 직원이 알아서 사진 찍기 좋은 스폿을 알려주더라는 이야기가 회자되곤 했다. 김 대표는 “공간 변화에 앞서 일하는 방식 자체가 변하는 게 중요하다”며 “수업마다 지루하지 않게 교실을 이동하고, 시즌마다 방학이 있는 학교 시스템이 공간 운영의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가장 인기 없는 자리는 어딜까. 바로 ‘팀장님 옆자리’다. 가장 늦게 출근한 직원의 몫이다. 부장님이 창가 제일 좋은 자리에 늘 앉는 게 아니라, 일찍 출근하는 직원이 앉는 것이 ‘자율좌석제’가 바꾼 사무실 풍경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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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