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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사촌 비리 겨눈 장징궈, 계모 쑹메이링이 말렸지만…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578>
쑹메이링(앞줄 가운데)이 가는 곳에는 어디건 콩링칸(앞줄 왼쪽)이 있었다. 1943년 4월 4일 오후 3시, 미국 할리우드. [사진 김명호]

쑹메이링(앞줄 가운데)이 가는 곳에는 어디건 콩링칸(앞줄 왼쪽)이 있었다. 1943년 4월 4일 오후 3시, 미국 할리우드. [사진 김명호]

1948년 9월 30일, 장징궈(蔣經國·장경국)가 무장 경찰 이끌고 양즈(揚子)공사에 나타났다. 불법 물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양즈공사의 실질적인 주인은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손윗동서 콩샹시(孔祥熙·공상희)의 장남 콩링칸(孔令侃·공령간)이었다.
 
제보자 두웨셩(杜月笙·두월생)은 장징궈의 행동에 한기를 느꼈다. 콩링칸에게 전문을 보냈다. “네 이모 쑹메이링(宋美齡·송미령)에게 매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쑹메이링이 직접 상하이로 갔다. 장징궈는 버거운 상대였다. 시장 우궈쩐(吳國楨·오국정)을 먼저 만났다. “네 생각 말해 봐라.”
 
우궈쩐이 소감을 털어놨다. “장징궈는 권력 업고 부(富)를 축적한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들의 부(富)와 화려한 주택은 인민의 골육을 보는 듯하다며 40여 일간 상하이를 뒤집어엎었다. 억울한 자본가가 속출했다. 경제경찰이 상하이 최대의 방직공장 경영주 롱홍위안(榮鴻元·영홍원)을 체포했다. 이집트에서 외환으로 면화를 구입한 혐의였다. 국민당에 우호적인 저장(浙江)실업은행장도 예외일 수 없었다. 부인 세 명과 한 방에서 코 골던 중 팬티만 겨우 걸친 채 끌려갔다. 미화 3000만 달러 은닉했다며 두들겨 맞고 염라대왕 만나러 갈 판이다. 자본 500만 달러와 은행 금고에 있는 예금 총액을 미화로 환산해도 3000만 달러는 어림없는 액수다. 룽홍위안은 외환을 해외에 빼돌리지 않았다. 공장 돌릴 원료 구입에 사용했을 뿐이다. 저장실업은행장의 억울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말도 했다. “장징궈는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극좌 반공주의자다. 경제관제 포고 이틀 후, 이발소 갔다가 서민들의 불만 듣고 금원권(金圓券) 개혁이 실패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심 없이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서적도 열심히 읽는다. 구호 만들기도 좋아한다. 권력과 부를 겸비한 호문자본(豪門資本) 타도를 구호로 내걸었다. 중공 이론가 천보다(陳伯達·진백달)가 타도 대상으로 규정한 장(蔣)·쑹(宋)·콩(孔)·천(陳) 4대 가족이 맘에 걸렸던지, 관료자본 타도로 바꿔버렸다. 한결같이 좌파들이 즐겨 쓰는 용어다.”
 
상하이 경제관제 독도원 시절의 장징궈(왼쪽), 1948년 9월. [사진 김명호]

상하이 경제관제 독도원 시절의 장징궈(왼쪽), 1948년 9월. [사진 김명호]

듣고만 있던 쑹메이링이 “너는 뭐 하고 있었느냐”며 눈을 흘겼다. 우궈쩐은 담담했다. “위원장에게 서면으로 직언한 적은 있다. 인간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며 극복할 방법 찾으라는 답을 들었다. 아직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장징궈에게 같이 가자고 해도 우궈쩐은 완곡히 거절했다. “나는 발언권이 없다.”
 
답답하기는 우궈쩐도 마찬가지였다. 시카고트리뷴 사장 매코믹에게 편지를 보냈다. “거액의 외환과 황금이 조롱 안으로 들어왔다. 말 잘 듣는 소상인과 서민들 덕분이다. 경제 상식이 결핍된 혁명가는 물가가 안정되고 투기와 암시장이 자취를 감췄다며 성공을 노래한다. 정작 없어져야 할 사람들은 납작 엎드린 고양이와 진배없다. 어두운 곳에서 두 눈 반짝이며 폭풍 그치기만 기다린다. 잠복된 위기가 도래할 날이 머지않았다. 불안을 호소할 곳이 없다.” 매코믹은 우궈쩐의 평생 지기(知己)였다.
 
쑹메이링이 장징궈를 만났다. “양즈공사 수사를 중지해라.” 장징궈는 계모에게 예의를 갖췄지만 단호했다. “부친의 명을 받았습니다. 복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양즈공사 수사를 철회하면 부친의 체면이 손상됩니다.”
 
쑹메이링은 마음이 급했다. “콩링칸을 건드리지 마라. 네 아버지에겐 내가 설명하겠다. 잡아 온 사람들 풀어 줘라.” 장징궈는 굽히지 않았다. “부친에게 설명할 일이 아닙니다. 당과 국가의 앞날에 관한 문제입니다. 국민 모두와 상하이 시민들을 납득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쑹메이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내 체면은 중요하지 않구나. 알았다. 이 일은 네 부친이 처리하도록 하자. 지시 올 때까지 경거망동하지 마라.” 장징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부친의 엄명을 집행할 뿐입니다. 제게 무리한 요구를 할 리가 없습니다.”
 
장징궈의 집무실에서 나온 쑹메이링은 안절부절, 회의차 베이핑(北平·지금의 베이징)에 체류 중인 장제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하이에 가서 콩링칸에 관한 일을 처리해라. 장(蔣)·콩(孔) 두 집안의 관계를 악화시키고도 남을 일이다. 콩링칸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궁지에 몰리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 진실은 무섭다.” 장제스의 안색이 엉망이 됐다. 부관에게 지시했다. “상하이 갈 준비해라. 시간이 없다. 서둘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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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