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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의 아이폰’이 불붙인 ‘불 없는 담배’ 대전

2015년 1월, 직장인 이수광(42)씨는 금연을 다짐하며 10여 만원을 들여 전자담배를 구입했다. 막대처럼 기다란 배터리에 기화기(카토마이저·용액에 열을 가해 수증기로 기화시키는 장치)가 달린, 당시 유행하던 액상(니코틴이 들어간 용액)형 전자담배였다. 정부가 흡연율을 낮추겠다며 담뱃값을 2500원(일반담배)에서 4500원으로 대폭 인상한 직후였다. 이씨는 니코틴 원액과 향료를 사서 액상을 집에서 제조하는 속칭 ‘김장’도 했다. 이씨는 “오른 담뱃값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금연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전자담배를 이용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씨는 한달 여 만에 전자담배를 내려놓고 다시 담배를 태웠다. 지금은 KT&G의 궐련형 전자담배인 ‘릴’을 사용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 중 한국에 맨 먼저 진출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2015년 정부의 담뱃값 인상 전후로 액상형 전자담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반담배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데다 담배 특유의 역한 냄새가 없고, 수박·망고 등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 20~30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인천공항세관에 따르면 2013년 798건에 그쳤던 전자담배 기기 수입 물량은 이듬해 1만2967건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인기가 오래가진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액상을 보충해야 했고, 액상이 줄줄 새 주머니가 젖는 등 편의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었다. 중국산 저가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가 충전 중 폭발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뒤이어 기화기의 핵심 부품으로 용액을 가열하는 ‘코일’이 인체에 유해한 유리섬유로 만들어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뜨거웠던 열기는 급격히 식었다.
 
이처럼 국내 담배시장에 벼락처럼 등장했다 벼락처럼 사라졌던 액상형 전자담배가 ‘업그레이드’돼 돌아왔다. 크기는 USB로 착각할 만큼 확 줄었고, 편의성은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 때문에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가 장악한 국내 전자담배 시장을 뒤흔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전자담배업체인 쥴랩스는 24일 ‘미국 전자담배계의 아이폰’이라 불리는 액상형 전자담배 ‘쥴(JUUL)’을 국내에 내놨다. 이승재 쥴랩스코리아 대표는 22일 서울 성수동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 3년 전에 시판했고, 영국 등을 비롯한 유럽에 진출해 있다”며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이 첫 진출 국가”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일본의 전자담배업체인 크로스파트너스가 쥴과 같은 형식의 액상형 전자담배 ‘비엔토(VIENTO)’를 출시했다. 일본의 또 다른 전자담배업체인 죠즈재팬리미티드도 이르면 6월께 국내에 액상형 전자담배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에 맞서 KT&G는 27일 액상형 전자담배인 ‘릴 베이퍼(lil vapor)’를 선보인다. 국내 액상형 전자담배 브랜드인 하카코리아도 최근 신제품 하카시그니처를 출시하며 시장 사수에 나섰다.
 
진보한 액상형 전자담배의 특징은 액상을 보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는 점이다. 액상이 들어 있는 1회용 카트리지인 팟(POD)을 끼워 사용하고, 다 사용한 후에는 팟을 통째로 교체하는 폐쇄형(CSV) 방식이다. 팟은 밀폐돼 있어 액상이 샐 염려가 없다. 쥴을 비롯해 비엔토나 하카시그니처, 릴 베이퍼 등이 모두 CSV 방식이다. CSV 전자담배는 사용 편의성 덕에 미국·일본 등지에서 이미 인기를 끌고 있다. 쥴은 미국 전자담배 시장점유율이 75%에 이르고, 비엔토는 일본 전자담배 판매 1위다. 국내 흡연자의 반응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과거 액상형 전자담배 이용자였던 장희성(38·서울)씨는 “휴대성과 편의성이 기존 전자담배나 궐련형 전자담배보다도 더 뛰어난 것 같다”며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금연 보조제로 사용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내선 니코틴 함량 1% 미만만 판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CSV 전자담배는 궐련형 전자담배처럼 기기와 팟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 기기 가격은 4만~6만원 선이고, 팟 1개(약 200회 흡입)는 4500원 정도다. 초기 반응이 나쁘지 않고, 미국·일본 등지에서 대성공을 거뒀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CSV의 전망이 엇갈린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대세인 미국·일본과는 달리 국내 시장은 궐련형 전자담배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금연정책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도 꾸준히 늘고 있는 편이지만, 이미 한 차례 파동을 겪은 터라 쉽사리 영역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쥴은 미국에서는 니코틴 함유량이 3~5%로 높은 반면, 국내에서는 관련법에 따라 1% 미만(0.7㎖)만 판매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니코틴 함유량은 연기(증기)를 들여 마실 때의 타격감(목 넘김)을 좌우하는데, 니코틴 함유량이 낮으면 타격감이 확 떨어진다”며 “니코틴 함유량이 낮아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궐련형 전자담배 ‘빅3’인 KT&G(릴)와 필립모리스코리아(아이코스), BAT코리아(글로)는 최근 판촉을 강화하는 동시에 쥴의 등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KT&G처럼 언제든 CSV 전자담배를 출시할 준비도 하고 있다. 필립모리스는 영국에서 쥴과 유사한 CSV 전자담배 ‘아이코스 메쉬(IQOS mesh)’를 판매 중이고, BAT도 2013년부터 액상형 전자담배 ‘바이프(Vype)’를 출시해 유럽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쥴·비엔토 등이 국내 전자담배 시장을 파고들 기미가 보이면 언제든 맞불을 놓을 수 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쥴이 국내에 상륙했지만 주요 브랜드의 고객 이탈률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며 “호기심 등으로 초반에 강세를 보일 수 있으나 빅3의 시장점유율에 일어나는 변화는 미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귀환으로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도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쥴 등에 사용하는 액상은 글리세린(VG)과 프로필렌글리콜(PG), 니코틴, 향료로 이뤄져 있는데, 니코틴을 제외하면 모두 인체에 무해한 식품 첨가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금연 보조제로 액상용 전자담배를 지지하기도 한다. 쥴랩스 측도 “쥴은 일반담배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향료가 폐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오는 등 액상형 전자담배도 유해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청소년 흡연율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쥴은 담배 같지 않은 디자인 등으로 미국에서 청소년 흡연자를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 보건당국은 쥴에 대한 온라인 판매와 마케팅을 축소하고 과일·오이향과 같은 팟 판매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도 최근 청소년 흡연율이 상승세로 돌아서 정부도 비상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은 “시장을 면밀히 살펴 액상형 전자담배의 등장이 청소년 흡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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