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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펼쳐놓으면, 붓이 나를 끌고 간다"

화가 노은님이 17일 파주에 있는 사무실에서 전시회를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화가 노은님이 17일 파주에 있는 사무실에서 전시회를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1970년 독일로 파견된 한국의 한 간호보조원이 고단한 생활을 그림으로 달랜지 올해로 꼭 50년. 그 사이 그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병원을 나와 미대에 들어갔고, 그림을 그렸고, 미대 교수가 됐으며, 독일인 동료 교수와 결혼도 했다. 정년 퇴임 후 시작한 골프에 맛이 들려 새벽 잔디를 밟아온 지도 10년째다. 그래도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붓부터 쥔다는 이 화가는 노은님(73·서울여대 석좌교수). “이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붓이요 다른 하나는 골프공”이라며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잠시 귀국해 파주의 한 스튜디오에서 전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났다. 
파주 글 정형모 전문기자 / 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 hyung@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 
 
 

 
 
5월 17일 오후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내 한 스튜디오. 벽에는 크고 작은 그림이 걸려있고, 바닥엔 족자처럼 기다란 그림들이 습자지 사이로 여럿 겹쳐 깔려있다. 그 옆으로 각종 도록과 자료집이 쌓여있다. “며칠 뒤 갤러리 숙제 검사가 있어서 좀 정신이 없어요.” 화가 노은님의 전시를 그림자처럼 돕는 권준성 팀장이 조심스레 책자를 한 아름 가져왔다. 7월 말 국내 대형 갤러리 전시를 위해 선생의 독일 집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맨 위에 『한스티만과 그의 제자들』이란 독일어 도록이 있다. 한스 티만(Hans Thiemann)이 누구인가. 
화가 노은님이 전시를 위해 독일에서 가져온 각종 자료들. 신인섭 기자

화가 노은님이 전시를 위해 독일에서 가져온 각종 자료들. 신인섭 기자

 
국립함부르크미술대학 교수로 노은님의 스승이다. 그는 바우하우스에서 바실리 칸딘스키와 파울 클레를 사사한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이다.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은 바우하우스의 전통이 한스 티만을 거쳐 노은님에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의 작품들을 한번 보세요. 노 선생님 작품도 그렇고, 화풍이 다들 제각각이죠. 우리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스승’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노은님에게 한스 티만은 어떤 스승일까.  
 
“못을 한 번에 박는 능력, 그 감각을 잊지마라”
 
티만 교수와는 어떤 인연인가.  
“독감으로 결근한 나를 찾아온 간호장이 내 그림을 보고 병원 회의실에서 전시하게 해주었다. 낮에 함부르크미대에 다니던 야간조 동료 간호사가 티만 교수에게 소개해주었다. 내 그림을 보더니 나를 굉장히 밀어줬다.”  
화가 노은님이 1970년대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틈틈이 그린 그림들 사진 정형모 기자

화가 노은님이 1970년대 독일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틈틈이 그린 그림들 사진 정형모 기자

 
 
어떻게 밀어줬나.  
“병원과의 계약이 일찍 끝나자 다른 학생들보다 6개월 먼저 입학을 허가해주었다. 장학생으로도 추천해주었다. 자기가 본 가장 재주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바우하우스의 모토는 “예술은 가르칠 수 없다”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뭘 가르치던가.  
“어떻게 그려야 하느냐고 물어보니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뭇잎도 그리고 새도 그렸다. 다른 애들은 크고 멋진 추상화를 척척 그리는데 내 그림은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아 창피해서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갔다. 그런데 다음날 와보니 티만 교수가 내 그림들을 칠판에 붙여놓고 ‘이게 진짜 그림’이라고 칭찬해주셨다.”  
 
뭐라고 하던가.  
“사람들이 나무에 못질할 때 대부분 못 대신 손을 쳐서 다치곤 하는데, 나는 못을 한 번에 딱 쳐서 깊숙이 박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감각을 놓치면 미술계를 떠나야 할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 손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더라. 본성에 있는 걸 바로 꺼낼 수 있는.”  
 
그럼 본인이 미대 교수(함부르크조형예술대학)가 되어서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쳤나.  
“나는 학생들과 노는 걸 좋아했다. 한 번은 학생들과 북해 근처 섬으로 갔다. 거기서 모래사장 위에 아무것으로 무엇이든 그려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해 하더니, 곧 신이 나서 다양한 도구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냈다. 자유롭게 그린다는 것에 대해 자신도 놀라워했다. 보고 싶으면 다 보이게 된다.”  
 
좀 엉뚱한 스타일인 것 같다.  
“면접 때 왜 미대에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누가 가라고 해서요’라고 말했다. 방학 때 다른 애들이 한 보따리씩 작품 해온 것을 본 교수가 ‘너는?’ 하길래 ‘방학인데 이런 걸 해야 돼?’ 했더니 막 웃더라. 독일 사람들이 빈틈이 없는데,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숨통 역할을 한 것 같다. 조화를 이뤘달까.”  
 
프랑스 중학교 교과서에도 그림 실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아트페어 피악(FIAC)은 노은님이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 아니 유럽 전역에 본격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1990년 FIAC에 나간 벨기에 브뤼셀의 필립 기미오(Philippe Guimiot) 갤러리는 도록 자신들의 페이지에 붉은 배경에 다리가 셋 달린 그녀의 작품 ‘이상한 동물(Feuertier·1986)’을 싣고 “프랑스에 최초로 소개하는 작가”라는 문구까지 집어넣었다. 이 그림은 파블로 피카소나 르네 마그리트 같은 저명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렸다.  

프랑스 교과서에 실린 화가 노은님 그림 사진 정형모 기자

프랑스 교과서에 실린 화가 노은님 그림 사진 정형모 기자

 
그의 작품에는 유독 동물이 많다. 2004년 발간한 에세이집 『내 짐은 내 날개다』에서 그는 “나는 그림을 파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파는 사람”이라고 썼다. 굵은 필획으로 표현된 물고기와 강아지와 새들에게는 원시적 생명력이 그득하다. 티슈 위에 볼펜으로 적어 놓은 작가의 메모에 눈길이 갔다. “생명은 물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물고기가 기어가고, 걸어가고, 날아가고…이 모든 것이 똑같이 돌아간다고 본다.”  
 
작품에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어릴 때 전주 교동에서 살았는데, 아버지가 동물을 좋아해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자랐다. 집 앞 시냇가에서 물고기도 자주 잡았다. 지금 사는 독일 남서부 헤센주 미헬슈타트의 집 근처에도 개울이 있고 숲이 울창하다. 숭어 여우 가재가 득시글하다. 이런 자연친화적인 분위기가 내 작품의 원천인 것 같다.”  
 
작품에서 생명에 대한 관심이 느껴진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차이가 없다. 다들 공평하다. 꽃나무 사다 놓고 다음날 푸대접하면 화낸다. 그게 느껴진다. 한번은 여행 가느라 친구에게 화분 물주기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잊어버렸고, 그것 때문에 4년간 말을 안 했다. 그는 ‘그깟 화분 때문이냐’고 내게 화를 냈지만, 난 그런 꼴은 못 본다.”  
 
그림은 매일 그리나.  
“아침밥 먹듯이 그린다. 계획이라는 것도 없다. 외려 뭘 그리겠다 마음먹으면 그날 그림은 망친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종이를 좍 펴놓으면, 그다음에는 붓이 나를 끌고 간다. 붓도 빗자루고 뭐고 손에 잡히는 대로 쓴다. 재료 소재에 제한받지 않고, 시간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붓이 끌고 간다는 말이 재미있다.
“내가 모시고 사는 게 세 가지인데, 하나는 그림을 그리니 붓이고, 둘째는 결혼을 했으니 남편이고, 셋째는 골프를 시작했으니 골프공이다. 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지만 안 되는 것들이기도 하다.”  
화가 노은님이 17일 파주에 있는 사무실에서 전시회를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노은님(Eun Nim Ro)은 ‘그림의 시인’이라 불리는 재독 화가다. 독일에서는 미대 교수이고,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교과서에 작품이 실렸다.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뒤늦게 미술에 빠져 일가를 이뤘다.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은 평화로웠지만,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고, 12명이나 되는 식구가 방 한 칸을 빌려 살아가는 암울한 생활 가운데 20세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생업에 뛰어든다. 간호 보조 교육사 훈련을 받고 보건소에서 일하던 그는 1970년 파독간호사 광고를 보고 독일로 떠났다. 1972년 독감으로 결근한 어느 날, 간호장이 병문안을 왔다가 그의 방에 쌓인 그림을 보고 감동해 병원에서 첫 전시회를 열어준다. 그리고 지방 소식지에서 이를 본 함부르크 국립미술대학 한스 티만 교수의 추천으로 뒤늦게 대학에 입학, 6년 간 밤에는 간호사, 낮에는 미대생으로 주독야경했다. 1980년 전업작가가 됐으며 1990년에는 그 대학의 교수가 된다. 그리고 나이 쉰일곱이던 2002년 같은 대학에서 미학사를 가르치던 동료 교수 게르하르트 바르치(Gerhard Bartsch)와 결혼,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 86년 백남준, 요셉 보이스 등 세기의 거장들과 함께 ‘평화를 위한 전시회’에도 참가했는데, 이를 계기로 백남준 씨가 한국에 가서 ‘독일에 노은님이라고 그림 잘 그리는 여자가 있다’는 말을 했고,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인섭 기자

화가 노은님이 17일 파주에 있는 사무실에서 전시회를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노은님(Eun Nim Ro)은 ‘그림의 시인’이라 불리는 재독 화가다. 독일에서는 미대 교수이고,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교과서에 작품이 실렸다. 파독 간호사 출신으로 뒤늦게 미술에 빠져 일가를 이뤘다. 1946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은 평화로웠지만, 중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고, 12명이나 되는 식구가 방 한 칸을 빌려 살아가는 암울한 생활 가운데 20세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생업에 뛰어든다. 간호 보조 교육사 훈련을 받고 보건소에서 일하던 그는 1970년 파독간호사 광고를 보고 독일로 떠났다. 1972년 독감으로 결근한 어느 날, 간호장이 병문안을 왔다가 그의 방에 쌓인 그림을 보고 감동해 병원에서 첫 전시회를 열어준다. 그리고 지방 소식지에서 이를 본 함부르크 국립미술대학 한스 티만 교수의 추천으로 뒤늦게 대학에 입학, 6년 간 밤에는 간호사, 낮에는 미대생으로 주독야경했다. 1980년 전업작가가 됐으며 1990년에는 그 대학의 교수가 된다. 그리고 나이 쉰일곱이던 2002년 같은 대학에서 미학사를 가르치던 동료 교수 게르하르트 바르치(Gerhard Bartsch)와 결혼,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 86년 백남준, 요셉 보이스 등 세기의 거장들과 함께 ‘평화를 위한 전시회’에도 참가했는데, 이를 계기로 백남준 씨가 한국에 가서 ‘독일에 노은님이라고 그림 잘 그리는 여자가 있다’는 말을 했고,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인섭 기자

 
 
골프를 늦게 시작했다.  
“정년 이후 뭐 하나 즐길 게 있어야겠다 싶었다. 친구들이 ‘양로원보다 골프장이 낫다’고 하더라. 독일에서는 18홀을 돌려면 골프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레슨도 받아야 하고, 실기필기 다 본다. 남편도 면허는 땄지만 취미가 없어 그냥 새벽녘에 혼자 나가 친다.”  
 
혼자 치는 골프는 무슨 재미인가.  
“그냥 산책보다 재미있다. 사슴이나 멧돼지도 만난다. 공 들어가는 소리도 경쾌하고. 카운트는 하지 않는다. 하하. 한참 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내가 끌고 온 카트 흔적이 이슬 맺힌 잔디 위에 구불구불 남아있다. 저게 내 인생이구나 싶다.”    
 
7월 한국 전시 다음은 어떤 전시인가.  
“지난해 5월 뉴욕 전시 중에 미헬슈타트시장이 전화를 했다. 1400년 된 시립미술관을 보수 중인데, 내 이름으로 된 방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난 독일 사람도 아니고 미헬슈타트 사람도 아니다’라고 거절했더니, 자신의 이름으로 방을 가진 기존 세 명의 화가들과 잘 어울린다며 2019년 11월 오픈에 맞춰 전시를 열어달라고 했다. 이제 그 준비를 해야한다.”  
 
내년에는 무슨 계획이 있나.  
“내년? 모른다. 작년에도 ‘내년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바쁘다.”  
 
정형모 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실장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지내고 중앙SUNDAY에서 문화에디터로서 고품격 문화스타일잡지S매거진을 10년간 만들었다. 새로운 것, 멋있는 것, 맛있는 것에 두루 관심이 많다. 고려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했고, 한국과 러시아의 민관학 교류 채널인 ‘한러대화’에서 언론사회분과 간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만든 『이어령의 지의 최전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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