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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의 문화탐색] 민화라는 인정투쟁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민화는 예술입니다.” 지난해 8월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예술로서의 민화’ 심포지엄에서 진행을 맡은 담당 큐레이터는 이렇게 강조했다. ‘판타지아 조선’이라는 민화 전시의 부대 행사로 열린 이 심포지엄에 참석한 나는 ‘종족적 인정 투쟁의 장’이라는 관점에서 민화를 조명하는 발표를 했다. 나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민화가 말 그대로 ‘인정 투쟁’의 장이 되어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인정 투쟁’이란 인정을 받기 위한 싸움이다. 민화는 과연 무엇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장이 되어왔던가?
 
이날 큐레이터의 발언 역시 예술로서 인정받기 위한 욕망을 드러낸 것이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민화가 예술이라는 데 대해서 이의가 없다. 민화는 엄연히 예술이다. 물론 예술로서의 민화 주장은 그런 밋밋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주류예술’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리라.
 
나는 흔히 우리 사회에서 고급예술이나 주류예술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민화가 더 예술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민화에 대한 찬양과는 거리가 있다. 민화가 예술인지 아닌지는 예술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왜 굳이 민화가 예술이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일까. 사실 나는 민화가 예술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냥 민화를 좋아한다, 민화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민화를 예술로, 그것도 굳이 주류예술(?)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에 대해서는 좀 저항감을 느낀다.
 
호랑이가 해학적이고 친근하게 그려진 민화.(부분) [사진 갤러리 현대]

호랑이가 해학적이고 친근하게 그려진 민화.(부분) [사진 갤러리 현대]

민화(民畵)라는 말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만든 말이다. 민예(民藝)라는 말도 야나기가 만든 것인데, 아무튼 그는 민중주의 미학의 신봉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야나기의 민화 규명 이후 민화가 일종의 종족적 인정 투쟁의 장이 되었다고 보는데, 그것은 ‘민(民)’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즉 야나기가 말하는 ‘민’은 민중을 가리키는 것일 테지만 한국인들에게 ‘민’은 민족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식민지 시기의 민중이란 곧 민족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민의 해석이 한국(미)의 정체성 논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1980년대 한국의 변혁운동에서 ‘민’은 민족과 민중과 민주, 모두를 의미했다. 민족 통일, 민주 쟁취, 민중 해방을 내세운 ‘삼민투’라는 학생운동 조직도 있었다. 과연 이 셋이 현재에도 상통하는지는 의문인데, 당대의 민중미술가들 중에는 민화를 모델로 삼아 창작을 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민중미술에서의 민중보다는 민화의 민중이 더 현실적이다. 민중미술의 민중은 엘리트 미술가들의 의식이 투사된, 이상화된 민중이었다. 그에 비해 민화 속의 민중은 세속적 욕망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고 있는 벌거벗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건강하다고 볼 것인지 어떤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그러한 민중의 욕망 또한 신분사회에서 인정 투쟁의 산물임은 분명하다.
 
피카소의 대표작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년)은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20세기 초의 유럽 미술가들은 아프리카 미술로부터 새로운 감각을 발견했고 이를 그들의 작품에 새겨 넣었다. 유럽 미술가들이 참조한 아프리카 미술은 현대예술이 아니지만 이에 영감을 받아 피카소 등이 창조한 것은 현대예술이다. 원시예술과 현대예술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모두 예술이다. 거기에 우열의 차이는 없다. 민화는 한국의 원시예술이다. 민화를 원시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민화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이 또한 오해 없기를 바란다.
 
민화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과 그것을 현대예술로 재창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나는 민화가 예술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현대예술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만약 민화를 현대예술화하고 싶다면 민화의 조형적 형식에 현대적 내용을 담아야 할 것이다. 마치 민중미술이 ‘민족적 형식에 민중적 내용’을 담으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 민화는 아직 그런 경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민화를 현대예술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민화는 예술이다. 그러나 현대예술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민화를 둘러싼 인정 투쟁이 아니라 민화에 대한 담백한 인정이 아닐까.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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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