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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진보든 보수든 다 먹고살자는 얘기 아닙니까"

최훈 논설주간

최훈 논설주간

그의 서거 10주기인 오늘. ‘늘 역사와 삶에 낙관적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은 비극을 맞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삶이 이어졌다면 그는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까. 그의 저서와 윤태영 전 부속실장이 간직해 온 기록을 토대로, 당시 필자의 취재 기억 등을 되살려 가상의 인터뷰를 구성해 봅니다. 가상의 답변들은 그가 생전 직접 했던 얘기들로 재구성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던 진보란 무엇입니까.
“진보든 보수든 결국 먹고살자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왕이 누리던 걸 서민들이 누리게 되는 것, 그게 역사의 진보라고 봅니다. 실용적 진보, 내가 많이 하던 얘기지요. 선명한 차이는 분배·복지에 대한 적극성 여부라고 봅니다. 시장에서의 분배, 국가재정에 의한 분배 중 시장에서의 분배에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할 것인지는 지난한 문제입니다.”
 
반(反)시장 정책 논란은 여전합니다.
“내 재직 중 대표적 사례가 여당의 아파트 원가공개였지요. 난 반대했어요. 솔직히 장사라는 게 남는 곳도, 밑지는 사업도 있지 않겠어요. 특별한 부정이 아니라면, 적어도 업체가 사업자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한 원가공개란 본시 장사의 원리엔 맞지 않습니다.”
 
적당한 타협이란 반발도 거셌지요.
“건설업계 압력 때문이거나 개혁의 후퇴가 아닙니다. 원가 공개란 개혁이 아닙니다. 그게 대통령의 소신입니다. 시장 메커니즘이 존재하게 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되자 주변에서 보란 듯이 성공해야 한다 했는데 폼은 짧고 고통은 길 뿐입니다. 옳은 건 옳고 아닌 건 아니라고 결단하는 게 지도자지요.”
 
당시 부유세 신설도 반대하셨는데.
“정부가 할 수 있는 개혁이 몇 개나 될까요. 부유세 같은 걸 하려다 저항에 부닥치면 진짜 해야 할 개혁을 못합니다. 진영에서 요구하는 걸 다 하거나 다 동의하긴 어렵지요. 개혁이란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부분에 폭넓은 합의를 이뤄 협력이 되고, 사회적 대세가 형성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요즘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소회는.
“한때 감옥 좀 갔다 오고 그런 도덕적 권위를 갖고 각기 역할을 이루려 하는데, 저항의 시대를 넘어 건설의 시대로 가니 바닥이 보이곤 한다 말이지요. 과거 반독재 구호처럼 한 개인과 세력을 타도하는 것, 그걸 넘어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가고 지배해 나갈 가치체계의 준비가 필요할 겁니다.”
 
어려워진 경제에 조언하신다면.
“아직도 투명성 문제가 제기되지만 시장도 투명·공정해지고는 있습니다. 기업들도 스스로 개혁해 나가고 있다는 건 명백합니다. 그러나 이제 자본 투자 등 요소투입형으로는 한계가 있어 혁신주도형으로 가야 합니다. 장기적 성장 잠재력을 갖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지요. 그 핵심은 기술혁신, 인재양성을 통한 기업의 경쟁력이 돼야 합니다. 예로부터 선단경영 싫어하던 사람들은 재벌 싫어하는데 그래 선단경영한 데는 다 실패했고, 전문경영을 한 데는 다 성공했습니까. 분배 격차 해소, 중요하지만 복지 지출을 경제에 부담주는 방향으로 할 이유란 전혀 없습니다. 보수도 알아야 할 게 경제 좋아진다고 민생 다 해결되는 게 아니죠.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문제가 진정 해결되는 겁니다.”
 
재임 때의 한·미 FTA 재개정에는.
“FTA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개방은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세입니다. 개방형 통상국가로 가야 합니다. 진보개혁 세력이 정치사회를 주도하려면 개방에 대한 인식을 바꿔 역사의 대세를 수용해야 합니다.”
 
‘대연정’ 집착이 강하셨지요.
“2004년 12월 고이즈미 총리와 가고시마 회담 때 과로로 뇌경색이 왔어요. 하루 한 갑 이상의 아리랑, 디스 담배를 끊었습니다. 이듬해 재·보선 때 여소야대로 작살나고 ‘대연정’ 고민에 담배를 다시 잡았습니다. 두달 뒤 이해찬 총리, 문희상 당의장, 문재인 민정수석 등 당청 11인 모임에서 대연정을 부르짖을 때는 무려 여섯 개비 줄담배를 꼬나물고 있더라고요.”
 
권력 나누자던 이유가 의심받았죠.
“죽어 봐야 저승을 압니다. 하지만 꼭 다음 선거에서 깨져 봐야 아는 것도 아니지요. 편짜기 우리 정당들은 야당이 여당 도와주는 거 상상도 못합니다. 제갈량의 동남풍이 늘 분답디까. 여소야대, 아니 이걸로 뭐가 됩니까. 다수야당, 정당연합에 책임총리 한번 맡겨보는 게 방안 아닙니까. 대통령은 빠지고 일 좀 되게 내각제 수준으로 권력을 분산하면 됩니다. 총리가 국회의 권력이 되고, 대통령은 행정부 권력쯤 하고.”
 
그게 현실에선 가능성이….
“맞담배 친구이던 이해찬 총리 역시 ‘소연정도 쉽지 않다’고 합디다. 하지만 국회의원들 개개인을 보면 많은 경우에서 통합의 여지가 보입니다. 설득이 가능하다면 내각제 적으로 운영하는 게 맞습니다. 아니 지금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주요 정책을 두고 합동 의총을 왜 못하겠습니까. 변호사 해봐서 아는데 아무리 훌륭한 판결보다 쌍방 합의가 최고인 거예요. 연정 수준으로 가야 합니다. 지역구도를 완화할 선거제 개편의 병행은 물론이고요.”
 
검찰 개혁 이슈로 시끄럽습니다.
“권력이 국민에서 멀어진 이유는 대통령 가족·측근, 검찰, 국정원이었지요. 검찰이 신뢰를 잃으면서 정권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 겁니다. 권력도, 검찰도 서로 책임을 인정합시다. 새로 태어나겠다고 같이 고개를 숙입시다. 나도 은어가 아니었습니다. 4급수에 사는 사람이었어요. 모두 떳떳하지 못한 구조였지요. 한 번은 털고 모두 은어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검찰, 새로 합시다.”
 
모처럼 국민들에 하실 말씀은.
“정치가 원래 시끄러운 거 아니겠습니까. 대화·협치하라고 저 대신 좀 꾸짖어 주시고…. 살림살이 고단하시겠지만 교육열, 지식·기술 수준과 열정 최고인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능히 극복해 낼 거라 믿습니다. 믿고요. 힘내십시오. 응원하겠습니다.”
 
최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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