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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복귀냐 추가 제재냐’ 갈림길 선 남·북·미

식량지원은 단기 처방일 뿐… 4강 외교 재건축 수준으로 리모델링해야
대륙·해양세력으로부터 러브콜 받는 위치 활용할 전략과 예지 절실
 
조선중앙통신은 5월 4일 동해상에서 이뤄진 전술유도무기 화력 타격 훈련 모습을 이튿날 보도했다. 사진에 등장한 무기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 사진: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5월 4일 동해상에서 이뤄진 전술유도무기 화력 타격 훈련 모습을 이튿날 보도했다. 사진에 등장한 무기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지대지 탄도미사일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의 불만 발산과 대미(對美) 압박의 메시지 발신 방법이 너무 폭력적이다. 북한은 5월 4일 원산 호도반도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 전술 지대지(surface-tosurface)미사일로 보이는 발사체를 쏘아 올린 뒤 닷새 만에 평북 구성 지역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두 발을 더 발사했다.
 
대화 재개를 바라는 한국과 미국 정부는 5월 4일 이스칸데르 발사 때는 그것이 탄도미사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앞세워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페인트 모션을 썼다. 그러나 9일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문제의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있음을 전제하고 안보리 결의 위반의 소지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의 두 차례 미사일 발사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남북, 북·미 대화 모드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 문 대통령은 코너에 몰렸다. 5월 9일의 2차 발사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불과 이틀 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 통화에서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에 합의한 직후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지금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문 대통령도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의 40% 정도가 기아선상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국제기구에 140만t의 식량지원을 요청했다. 거기에 응해 한국 정부는 식량지원을 결정하고 트럼프의 흔쾌한 동의를 받아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개가 먹이를 주는 사람의 손을 무는 것과 같은 난폭한 행위다. 식량지원을 취소하라는 여론이 보수층을 중심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비난하면서도 지원은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투 트랙 정책을 선택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식량지원이 인도적 고려에서 결정된 것이라면 옳은 선택으로 생각된다.
 
북한은 하노이에서 놓친 것을 미사일 시험발사로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입장은 불만이 있으면 협상 테이블에 나와서 논의하라는 입장이다. 너무 옳아서 하나 마나 한 소리다. 한국과 미국 모두 김정은이 대화의 판을 엎을 생각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아직은 유연한 자세를 유지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평북 구성 지역에서 5월 9일 발사한 미사일이 마지막이 아닐 가능성도 열려있다. 북한이 스커드에서 노동으로, 노동에서 무수단으로, 무수단에서 화성 계열로 사정거리를 늘려간다면 미국의 인내도 바닥을 보일 것이다. 트럼프는 아직은 “김정은이 신뢰를 배반하지 않았다, 나는 행복하다”고 여유를 부린다. 그러나 그 여유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는 김정은의 다음 행보에 달렸다.
 
 
추가도발시 대 북 제재 강화 불가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 9일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 9일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은 식량지원으로 북한의 도발이 에스컬레이트 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은이 남한의 식량지원을 선뜻 받을지는 속단할 수 없다. 3대에 걸친 북한 최고 지도자들은 굶주린 백성들보다는 대외전략의 큰 구도를 먼저 생각해 왔다. 결국 한국은 북한에 김정은이 말하는 ‘금보다 귀한 식량’을 주면서도 김정은의 심기를 살피면서 제발 받아달라, 그리고 남북관계를 2018년 수준으로 되돌리고 미국과의 대화도 재개하라고 설득해야 할 처지다. 국내 보수층에서는 대북 굴종이라고 요란하게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을 달래든 어르든 식량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에게도 식량 제공이 교착상태의 남·북·미 대화 분위기를 반전시킬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오늘 식량을 주고 내일 대화가 재개되는 단기 성과를 기대하면 실망이 클 것이다. 농부가 봄에 씨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자세로 식량을 보내는 것이 가장 생산적이고 명분에도 맞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의 식량지원 제안으로 김정은의 머릿속 계산이 오히려 복잡할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보기에 김정은이 북한판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목적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그게 뭘까.
 
김정은이 첫 번째로 노리는 것은 대내적으로 지난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처참하게 깎인 체면을 회복하는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하노이 회담이 파탄 나는 순간까지 회담 성공을 전제로 연일 회담 성과로 [로동신문] 지면과 조선중앙TV 전파를 가득 채웠다. 국민 앞에 면목이 없게 된 김정은은 대미 물리적 도발 직전까지 가고, 판문점 선언, 평양선언, 남북군사합의 위반 직전까지 가는 무력시위를 할 필요에 몰렸다.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대화 모드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다. 김정은의 영리한 계산대로 한국과 미국은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에 정치적인 신중한 대응을 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문 대통령이 걱정한 대로 미사일 발사를 다시 하면 사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응징이다. 그래서 북한의 이번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규정한다면 논리적으로는 대북 추가제재 문제가 제기된다. 대북 추가제재는 북한의 실질적 추가도발로 이어져 북·미 대화 분위기는 당분간 돌아오기 힘든 다리를 건너게 될 것이다. 남북관계는 당연히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 그리고 군사합의가 의미를 잃을 만큼 후퇴할 것이다.
 
둘째로 김정은의 미사일 도발은 정상회담을 포함한 북·미 대화를 조속히 재개하고 싶다는 메시지의 발신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그런 계산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의 발사체가 미국을 위협하는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폼페이오의 말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이스칸데르는 사정거리가 500㎞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필요하면 최대 1000㎞까지도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거기다 이스칸데르는 미국이 보유한 최첨단 무기로도 요격하기 어려운 역대 최강 미사일로 알려졌다. 포물선 궤적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일반 탄도미사일과는 달리, 저고도로 비행하다 목표지점에 이르러서는 급상승해 목표물로 내리꽂히는 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구성 지역에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5월 4일 발사된 미사일보다 사정거리가 두 배 길다. 한 걸음만 더 나가면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노동 미사일이다.
 
‘하노이 제안’ 관철하려는 김정은 고집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연구진은 지난 3월 북한에서 식량 관련 현지조사를 진행했다./사진:FAO·WFP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연구진은 지난 3월 북한에서 식량 관련 현지조사를 진행했다./사진:FAO·WFP

이런 가공할 무기를 보고도 미국을 위협하지 않으니 문제없다는 투의 폼페이오의 늘쩡한 반응은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소화하기 힘든 것이다. 이것은 확대하면 2017년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트럼프가 ‘전쟁이 나도 거기(한반도)서 나고 사람이 죽어도 그들(한국인)’이라고 한 발언의 재판으로 들릴 수도 있다. 이스칸데르가 중·단거리 미사일이라도 한국과 일본은 한·미·일 연합군 세력의 최첨단 무기로도 요격할 수 없는 무기 앞에 노출된다는 의미가 된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올 12월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라고 압박한다. 이것은 북한 외무부상 최선희가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하는 것이다. 최선희는 앞으로 김영철을 대신해서 리용호 외상과 함께 북·미 고위급 협상의 전면에 나설 사람이다.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계산법이란, 해석을 하자면 트럼프가 하노이 회담에서 거부한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북한은 말로는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미사일 반복 발사라는 행동으로 나왔다.
 
이건 명분에서 북한이 지는 게임이다. 김정은은 조급증이라는 속내만 들키는 행동을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하노이 실패 이후 ‘멘붕’ 상태에 빠진 북한 최고위 지도부에 내 패를 감추고 상대의 패를 읽어내는 전략가가 없다는 증거다. 하노이 회담이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회담 의제의 비대칭성에 있었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면 북한은 북한 체제의 완전한 보장 방안을 요구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마음을 잘못 읽고 제재완화를 상응조건으로 요구했다. 당장의 식량난 해결은 완전한 비핵화의 등가 교환이 될 수가 없다.
 
트럼프가 북한에 양보로 비치는 합의에 동의할 재량권은 시간이 갈수록 제한되고 있다. 하노이 합의를 파탄 낸 백악관 안보보좌관 존 볼턴과 국무부와 의회의 대북 강경파들은 트럼프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내년 11월 재선을 위한 쉽지 않을 선거전을 펴야 한다.
 
미국 사정에 밝은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한 애팔래치아 산지와 그 서쪽 미국의 심장부(Heartland) 유권자들이 자유주의적 글로벌리스트(liberal globalist)들을 따라 트럼프에 등을 돌리는 경향을 보인다. 애팔래치아 동부, 특히 뉴잉글랜드가 포함된 동북부는 부동의 민주당 표밭이다. 트럼프의 막무가내의 반동적인 미국제일주의가 미국을 신고립주의로 끌고 가는 데 대한 반발을 과소평가할 수 없음을 트럼프와 그의 선거 전략가들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김정은은 미국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에 대한 트럼프의 유연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공화당 온건파와 무당파 유권자만 확보하면 트럼프에 이길 수 있다고 썼다.(NYT, 5월 9일자) 정권이 바뀌어 트럼프가 퇴장하기라도 하면, 미국의 대북 협상 자세는 전통적인 상호주의로 돌아갈 것이 확실하다. 비핵화 협상의 대폭 후퇴를 의미한다.
 
트럼프는 북한이 이스칸데르로 보이는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재무부가 준비한 대북 경제제재 강화를 저지했다. 백악관 대변인이 밝힌 트럼프가 재무부의 결정을 말린 이유가 황당하다: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제재 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데이비드 생어, [뉴욕타임스] 5월 6일자) 김정은은 트럼프의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은 꼴이다.
 
선거에 갇힌 트럼프, 무오류에 갇힌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단거리라도 탄도미사일이라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소지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9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비록 단거리라도 탄도미사일이라면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 소지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더 걱정되는 것은 연말까지 트럼프한테서 김정은을 만족하게 할 새로운 계산법이 나오지 않으면 김정은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깨고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강행할 가능성이다. 그렇게 되면 연말께면 대선국면으로 들어가는 트럼프가 유권자들에게 자랑할 자신의 최대 외교 업적인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엄(중지)이 허공으로 사라진다. 트럼프가 김정은 자극을 피하는 것도 김정은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깨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미국이 연말까지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한다. 연말까지 미국이 북한의 요구 수준에 맞는 계산법을 제시하지 않으면 김정은의 도발은 양적으로뿐 아니라 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을 걱정해야 한다.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이 김정은의 그런 모험을 저지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경제제재 효과가 계층적으로는 최상층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지역적으로는 평양과 지방으로 널리 퍼지기 전에는 김정은은 전략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무오류(無誤謬, infallibility)를 주장하는 최고 지도자의 권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평창 이후 싱가포르까지의 남·북·미 대화 모드가 아슬아슬한 위기를 맞고 있다.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놓고 오지랖 넓은 중재자 역할 그만두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사랑’이 식어도 싱가포르 회담이 무산될 뻔한 지난해 5월처럼 문 대통령이 오작교 역할을 할 여지가 사라지는 것 같다. 대화 모드를 궤도 이탈로부터 지키는 남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 나라 모두 저마다 한반도에 걸고 있는 이해가 다르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4월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원칙에 합의했다. 실질적인 의미가 없는 원론적인 합의다. 한반도의 긴장 고조가 푸틴에게 해로울 것은 없다. 오히려 푸틴은 이 시점에서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에 개입해 일정한 지분을 확보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시비로 푸틴이 트럼프를 위해서 자진해서 김정은의 등을 협상 테이블로 떠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한국이 푸틴을 김정은 설득에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 대(對) 러시아 외교의 환골탈태 수준의 강화가 시급한 이유다.
 
중국의 시진핑은 이미 김정은 옆에 섰다. 김정은은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마다 시진핑과 만나 전략을 논의하고 훈수를 받았다. 시진핑의 북한 방문도 일정 잡는 일만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은 트럼프가 도발하는 무역전쟁에 손발이 묶여있다. 트럼프는 북한 비핵화에 중국의 역할이 필요불가결하다는 것을 알고 시진핑에게 더 적극적으로 김정은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트럼프에게는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미국의 국제수지와 일자리와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북·일 관계의 신시대를 열고 싶어 한다. 그는 5월 2일의 언론 인터뷰를 포함해 몇 차례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4월 26일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김정은과의 회담에 대한 트럼프의 동의도 받았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은 아베 총리의 취임 공약이다. 2021년 9월 퇴임하는 아베에게 남은 시간은 2년 조금 넘는다. 한·일 관계가 바닥을 치고 있는 지금 아베가 문 대통령의 조력자가 되어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한·일 관계 개선과 복원이 시급한 이유다.
 
‘체제보장=주한미군 철수’ 좌시하면 안 돼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왼쪽 세 번째)는 관방장관 자격으로 참석했다.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왼쪽 세 번째)는 관방장관 자격으로 참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남은 3년의 임기 중에 스케일 큰 전대미문의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북한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미국 조야의 불만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 동시에 일본에 대해서도 실용적인 외교를 펴는 것이 중요하다.
 
동아시아의 지도를 펴 보면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 세력의 중간에 위치한다. 정치학자 니콜라스 스파이크먼(1893~1943) 교수가 말한 유리한 연안국(rim land)이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으로부터 경쟁적으로 러브콜을 받을 위치에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변 4강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의 위치를 지리적 저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제국주의 세력들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면서 영토 확장을 할 때나 적실성이 있었다. 지금은 ‘땅 따먹기’ 시대가 아니다. 한반도의 지리적 저주는 지리적 축복의 시대를 맞았다. 다만 우리는 그 기회를 살리는 예지(intelligence)와 전략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문 대통령과 대외전략을 만드는 파워 엘리트들의 뼈를 깎는 반성으로 4강 외교를 재건축 수준으로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태만해 구태에 머물면 한국은 일류국가로 도약할 단군 이래의 호기를 놓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문 대통령은 후세에 어떤 유산을 남길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북한을 북한 문제만으로 접근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모험적이기도 하다. 북한 지도자가 변덕 한번 부리면 어제까지 쌓은 공든 탑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사례를 지금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중앙일보] 북한 문제 전문가 정용수 기자가 작성한 지난해 9월 평양선언 이후 김정은의 군사 행보를 보면, 김정은의 관심이 어디에 있고, 궁극적으로 그가 바라는 체제 안전보장이 무엇인가가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지난해 11월 5~16일 한미 해병대 연합훈련이 실시됐다. 김정은은 11월 16일 국방과학원 첨단전술 무기 시험을 지도했다. 올 4월 15~20일 주한미군 사드 훈련이 실시됐다. 김정은은 4월 16일 제1017군 부대 전투비행사령부 비행훈련을 지도했다. 4월 16일 주한미군 야간 헬기 강습훈련이 실시됐다. 4월 17일 김정은은 국방과학원 신형 전술 유도 무기 훈련을 참관했다. 4월 22일~5월 3일 한미 공군의 연합편대군 종합훈련이 실시됐다. 5월 4일 김정은은 단거리 발사체 화력타격훈련을 참관했다.
 
김정은은 작년 9월 평양선언 이후 일곱 차례의 군 관련 행보를 했고, 그중 네 차례는 한국군과 미군의 군사훈련 직후에 행해졌다. 이런 통계는 김정은이 평양선언과 남북 군사 합의에도 불구하고 군의 훈련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가 발표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 김정은의 군사 행보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시간을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체제 안전보장의 교환까지 확대하면 북한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 내지 규모 조정까지 요구하고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대북 협상 전략가들이 희망사항에 바탕을 둔 장밋빛 그림에 집착을 버리고 김정은의 장기적인 의도를 꿰뚫어 보는 현실적 방안을 가지고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는 의미다.
 
 
※ 김영희
- 1958년 22세 나이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딘 필자는 82세가 된 지금까지 현장을 누비는 영원한 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임원 등을 거치고 최근까지도 중앙일보 대기자 및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외교·안보·국제 뉴스의 한 우물을 판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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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