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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 간절히 원하는 것에 미쳐보자, 한번이라도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89)
서울의 한 공무원 학원 내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의 모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울의 한 공무원 학원 내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의 모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차 한잔하고 가라는 지인의 집에 들어서니 아이가 공무원 시험공부 중이라며 현관에서부터 까치걸음으로 조용조용 해달란 말을 수화로 말하듯 한다. 대학 졸업 후 제방에서 공부만 3년째라고 한다.
 
지인은 아이가 사진 찍는 게 취미라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걸 온갖 협박으로 못하게 하고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하라고 한 것을 후회한다. 나 역시 무식한 엄마라 그 상황이었다면 사진으로 밥 벌어먹겠냐며 빈정거렸을 것이다. 그럴 땐 대담하게 부모를 무시하고 가출하는 게 답인데, 착한 아이들은 부모 말에 순종하다가 아까운 청춘의 시간을 해보고 싶은 것 아무것도 못 해보고 나이 든다.
 
눈치 보는 엄마 마음도 짜증, 착잡, 어수선, 미련이 뒤섞여 있다. 아이가 문소리를 들었는지 방을 나와 나를 보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지으며 다시 들어간다. 나도 엄지 척을 하며 웃어주었다. 사람도 안 만나고 방에 틀어박혀 안 나오는 게 문제지, 손님의 기척에 나와서 인사를 한다는 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실업자 기준을 정하는 비율의 중심이란다. 실업률이 최고점을 찍었다고 연일 뉴스에 난다. 왜 다들 공무원이 되려고 할까? 기술노동, 육체노동자로는 이 나라에서 대우받고 살 수 없는 건가? 선진국에선 노동자들에게 근로 장려금, 지원금, 격려금, 세금 인하 등 별별 혜택도 많이 줘서 기를 살려 주더구먼, 공무원만 혜택을 줘서 기를 쓰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나 참 궁금하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강의실 앞자리를 잡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 학원은 강의실 자리를 1주일에 한 번씩 선착순으로 결정한다. 600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에서 칠판이 보이는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최승식 기자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강의실 앞자리를 잡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이 학원은 강의실 자리를 1주일에 한 번씩 선착순으로 결정한다. 600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에서 칠판이 보이는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최승식 기자

 
얼마 전 수필공부를 할 때 읽어 본 수필가 김점선 님의 ‘무서운 년’의 한 장면이다.

‘공부를 더 하겠다는 딸에게 아버지는 한 푼의 돈도 더 쓸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동생들을 다 모아놓고 연설을 했다. 

“너희는 오늘부터 다 학교에서 자퇴해라. 너희의 월사금은 다 내가 쓰겠다. 너희 중 한 놈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우수한 놈도 없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놈도 없다. 미래에 대한 야망도 없는 너희는 어정쩡한 놈들이다. 그러니 너희가 돈을 쓰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낭비다. 너희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교통 표지판과 날아오는 고지서만 읽을 줄 알면 충분하다. 너희는 이미 한글을 깨쳤으니 그만 공부해라.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우수하다. 지금 공부를 중단한다는 것은 민족 자원의 훼손이다. 내 민족의 장래에 먹구름이 끼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공부에 더는 돈을 안 쓰는 것은 애국·애족하는 길이다.” 동생들은 입을 벌리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신 아버지가 훗날 아무 말도 않고 등록금을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하고 싶은 것은 훗날 실패를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투쟁하고 쟁취하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 자제분이 인사를 하러 방에서 나온다는 건 아직 세상과 부딪혀 볼 기운이 있다는 거다. 지금이라도 젊을 때 세상구경 해보라고 경비를 주며 아이 등을 밀어주면 좋겠다.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다니다가 공무원이 적성에 맞을 것 같으면 그때 시도해도 될 것이다. 그땐 내가 선택한 거라 악착같이 해서 바로 합격할 거니까…. 어떤 것이든 한번은 본인이 간절히 원하는 것에 목매보길 바라본다. 젊어야 가능하다.
 
자식이 20대가 넘으면 내 식구가 아니다. 사회의 일꾼이다. 안 그러면 평생 헬리콥터 엄마, 캥거루 엄마가 되어 살아야 한다. 내 주변에도 그런 부모가 참 많다. 나는 공무원 말고도 기술노동자로 성공한, 가출한 내 아들이 자랑스러워 돌아오는 길에 길게 통화를 했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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