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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외국에 없는 제조업체 표기…OEM·ODM은 웃고, K뷰티는 울고


"유독 한국만 제조원(제조업체)을 화장품 뒷면에 명기합니다. 해외에 '카피 상품'이 난립하는 계기가 될 뿐이에요."

K뷰티 전문가로 통하는 뷰티업계의 한 학자는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 표기 의무 규정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제조업체 명기가 지금 당장은 K뷰티 전체 매출을 끌어올릴 수는 있겠죠. 하지만 길게 보면 K뷰티의 미래를 좀먹는 거예요"라던 그는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다.

제조업체 표기 의무 규정이란 현행 화장품법상 브랜드를 운영하는 제조판매업자 말고도 제품을 생산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를 화장품 뒷면 등에 명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뷰티 업계 전반에서 이런 명기 제도가 산업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화장품 수출에 보탬이 되지 않고 해외 브랜드가 한국 화장품을 베끼는 데 악용된다는 것이다.

 

제조업체 표기 제도를 아시나요
 
국내 화장품법은 3월 14일을 기점으로 소폭 개정됐다. 화장품법 제2조 2항은 종전 화장품제조업(화장품의 제조)·화장품제조판매업(유통·판매·수입)에서 화장품제조업(화장품의 제조) 화장품책임판매업(유통·수입) 맞춤형화장품판매업(신고 업종 신설)으로 개정됐다. '제조업자'와 '제조판매업자'로 분류하던 기준이 '제조업자'와 '책임판매업자'로 변경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개정을 촉구했던 제19조 6항 '화장품 포장의 표시기준 및 표시방법'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에 따르면 화장품제조업자 또는 화장품책임판매업자의 주소는 등록필증에 적힌 소재지 또는 반품·교환 업무를 대표하는 소재지를 기재·표시해야 한다. 또 화장품제조업자와 화장품책임판매업자는 각각 구분해 기재·표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제품 용기에는 제조판매업자와 제조업체를 모두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소리다.

국내 화장품 업계는 이 조항에 반발하고 있다. 의무적으로 제조원이 고스란히 노출되다 보니 해외 경쟁 업체들이 판매업자(화장품 브랜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제조사와 계약해 거의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K뷰티는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톡톡 튀는 컨셉트의 화장품이 유행에 발맞춰 빠르게 회전된다. 브랜드를 보유한 판매업자들의 우수한 기획력과 고른 수준의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제조사인 OEM·ODM사 덕이다. 하지만 제조사 이름이 제품 뒤에 그대로 노출되자 해외 브랜드들이 "이 제품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면서 찾는 경우가 늘었다는 후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마스크팩이 잘 팔리자 해외에서 제조업체를 그대로 찾아가서 비슷하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개발과 마케팅에 공들여 우수한 제품을 출시했지만, 제조원 표기 때문에 영업 기밀과 경쟁력을 해외 브랜드에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

 
뷰티 업계…"베낀 상품 양산, 표기 제도 개정해야"
 
업계 전문가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김주덕 성신여자대학교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로션이 성공했다고 하면 중국 등 타 국가의 브랜드가 그 제조업체에 연락해 비슷하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카피 제품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면서 "OEM·ODM사도 상도의상 (성분 등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고 하지만,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진영 한국화장품중소기업수출협회(KCEA) 회장은 "제품 관련 비밀 정보를 스스로 공개해 중소기업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정착하지 못한다. 나아가 브랜드사가 뚫고 제조사가 밀어 주는 협업 체제가 위협받는다"며 "K뷰티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어려운 시장을 뚫기 위한 중소기업의 피땀 어린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화장품법의 '제조원 표기 의무' 조항은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회장은 지난해 연말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화장품 업계 정책간담회에서도 "한국 업체의 브랜드로 수출이 이뤄지도록 이 규정을 없애 달라"고 건의한 바 있다. 권오섭 엘앤피코스메틱 회장은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과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제조원 표기 문제를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또 다른 뷰티 강국인 미국이나 유럽·일본과 사뭇 다른 규정이기도 하다.

이들 국가는 제조사를 일련번호로 표기하거나 제조 국가를 표기토록 하고 있다. 'Made in France' 'Made in Japan'의 방식이다. 실제로 미국 최대 화장품 유통 채널인 세포라는 자사의 PB상품에 제조사 대신 'Made in Japan' 식으로만 명기한다.

최근 한국 화장품이 인기를 끌면서 'Made in Korea' 상품이 매대에 가득하다. 당연히 화장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나 타 브랜드를 전개하는 경쟁사는 이 화장품이 어느 나라 제품인지는 알 수 있지만, 정확하게 어느 공장에서 만들었는지 알기 쉽지 않다.  

 

K뷰티 덕 본 OEM·ODM 업계
 
반면 제조업체들은 명기를 하지 말자는 주장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근 K뷰티 붐이 전 세계에 불면서 직접적인 수혜를 입은 곳 중 하나는 제조업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간판 OEM·ODM사들은 지난해 나란히 많은 돈을 거둬들였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65.3% 늘어난 1조3579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CJ헬스케어를 인수하고 신규 대형 거래처까지 확보하면서 매출이 급증했다. 영업이익도 900억원으로 전년보다 34.3% 증가했다.

코스맥스도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코스맥스의 매출은 전년보다 42.5% 증가한 1조2579억원으로 1992년 창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48.9% 성장한 523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고전하고 있는 제조판매업자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영업손실로 19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당기순손실은 117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모두 적자 전환한 셈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3455억원으로 1년 사이 7.4% 감소했다. 이밖에 토니모리·잇츠스킨 등 브랜드숍이 모두 적자로 돌아섰다. 스킨푸드는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OEM·ODM사의 눈부신 성장 뒤에는 제조업체표기 방식이 분명히 존재한다. 온라인몰을 비롯해 H&B 스토어·홈쇼핑 등으로 유통 채널이 다양화하면서 화장품 업계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반면 중소 코스메틱 업체는 자체 생산 시설이 없어 화장품 ODM·OEM 기업 의존도가 자연히 높아졌다. 또 해외에서도 한국 화장품이 잘나가면서 국내 OEM·ODM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가 늘어났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제조업체들은 제조원을 표기함으로 제품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생산하며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R&D)도 진행한다"고 맞서고 있다. 실제로 몇몇 OEM·ODM사는 R&D와 특허 취득에 열중해 왔다.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는 매년 수십 개의 특허를 출원하고 또 추가하고 있다. 신기술 확보로 수익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연구개발비 확충이 다시 특허 출원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확립했다는 것이다.
 
 
OEM·ODM 업계 '억울·난색'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콜마와 콜마비앤에이치 등 한국콜마홀딩스 관계사들은 지난해 상반기까지 총 19건의 화장품 관련 특허를 등록했다. 출원 건수는 47개에 달한다.

코스맥스도 작년 10월까지 총 47건을 출원해 27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최근 3년간 등록 건수 역시 2016년 10건, 2017년 19건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코스맥스가 현재까지 출원한 특허는 325건, 등록 특허는 129건이다.

한국콜마의 경우 전체 인력의 30% 이상을 R&D 인재로 채우고 있다. 매년 매출의 5%가량을 R&D에 재투자한다. 코스맥스 역시 최근 들어 질 높은 특허를 확보하는 쪽으로 특허 전략을 수정하면서 연구개발비용을 대폭 늘리고 있다. 2015년 105억3800만원에 불과했던 코스맥스의 연구개발비용은 지난해 2.5배가량 뛴 254억7100만원으로 늘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용 비중 역시 2015년 2.83%에서 지난해 4.82%로 2%포인트(P) 늘었다.

한 OEM사 관계자는 "제조원 표기가 K뷰티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K뷰티 제품 품질을 높인 것으로 봐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한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도 "한국 화장품 제조업체들 수준이 매우 높아 제품 개발부터 매우 긴밀하게 작업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조업체 관계자는 "화장품법 제30조에 따라 수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에는 제조원을 표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제조원 의무 표기법으로 K뷰티 성장이 저해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소화장품 업체들도 할말은 많다. 수출용 제품을 별도로 만들 경우 비용 부담이 매우 크고, 해외 업체들도 한국 내수용 제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 파악은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소비자의 알 권리 문제도 제기된다. 제조원 표기를 없애면 소비자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품의 안전과 신뢰성을 깐깐하게 따지는 한국 소비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판매업자만 표기하는 화장품법 개정안이 추진됐지만 소비자들의 반발로 무산된 전례도 있다.

김주덕 교수는 "카피 제품이 많아지면 한국 화장품의 브랜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가격 면에서 중국에 뒤지기 때문"이라면서 "길게 볼 때 중국의 OEM·ODM사도 국내에서 인력을 빼 가는 방식으로 성장한다.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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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