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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규철의 남극일기]"24시간 밤, 영하 30~40도의 겨울을 준비하라"

장보고 기지에서 바라보는 남극의 밤하늘. [사진 극지연구소]

장보고 기지에서 바라보는 남극의 밤하늘. [사진 극지연구소]

⑧장보고과학기지의 극야(極夜) 겨울나기 준비 
 
남위 74도의 장보고과학기지는 5월부터 24시간 칠흑 같은 밤만 계속되는 극야(極夜)의 겨울이 찾아온다. 영하 30~40도를 오가는 맹추위에, 수시로 A급 태풍을 장난처럼 보이게 하는 강풍이 몰아친다. 산소만 없다면, 지구 밖 어느 행성에 떨어진것 같은 느낌이다.  
 
하계연구원들이 모두 돌아간 3월 초. 마지막 보급도 끝나 마음은 홀가분했지만, 이제부터 월동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4월에 평균기온 영하 15도를 넘나들고 극야로 접어드는 5월에는 영하 20도의 강추위가 빈번해지기 때문이다. 일단 각종 시설물부터 점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강풍에도 대비해야 해서 건물 외관의 패널이나 연구동 입구문이 튼튼한지 또는 야외 적재물(보관물품ㆍ자재 등)들이 잘 묶여져 있는지 점검하였다. 전기실의 UPS(무정전 전원장치)도 교체해서 혹시 모를 정전에 대비하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은 바닷물을 담수화해 사용하지만, 발전에 문제가 생겨 비상사태가 되면 눈을 녹여 먹어야 한다. 이에 융설수조 내외부도 깨끗하게 청소하였다. 기지의 하계 발전을 위한 에너지는 경유 80%와 태양광 20% 정도 차지한다. 5월에 들어서면 일조량이 떨어지면서 태양광 발전이 중단된다. 여름 내내 사용됐던 중장비들은 깨끗하게 정비해서 다음 하계를 위해 중장비동에 빼곡히 보관된다.
 
영하 30~40도를 넘나드는 남극의 겨울철엔 실내생활밖에 할 수 없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다같이 모여 체조를 한다. [사진 극지연구소]

영하 30~40도를 넘나드는 남극의 겨울철엔 실내생활밖에 할 수 없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다같이 모여 체조를 한다. [사진 극지연구소]

이와 같이 대원들이 극야에 대비해 할 일들이 많았지만, 하계 지원이 없어 주 5일 근무가 지켜지면서 조금 여유로워졌다. 아침 회의가 끝나면 무조건 국민체조를 하고 근무를 하였다. 기지 본관동에 조그만 헬스장이 있고 중장비동에는 당구장과 스크린 골프장이 있다. 하계 대원들이 모두 빠져나가자마자 식탁을 줄이고 그 자리에 탁구대를 설치하였다. 이것들은 무료할 수밖에 없는 대원들의 기지 생활에 활력을 주었다. 대부분 근무가 끝나면 정말 ‘방콕’인생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다행히 몇몇 대원은 ‘몸짱’이 되기 위해 헬스도 시작하고 가끔 탁구도 즐겼다. 나도 장보고기지로 오기 전 해보지 못한 골프를 정말 배우고 싶었다. 대원들 중 가장 고수인 조리대원이 초보자 대장을 가르치느라 고생했다. 어떤 대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컴퓨터 게임도 하고 보드게임을 하면서 서로 친목하며 즐겼다.  
 아직은 해가 남아있던 5월초 장보고기지에서 30km 떨어진 브라우닝 패스쪽 봉우리로 산행을 떠났다. [사진 극지연구소]

아직은 해가 남아있던 5월초 장보고기지에서 30km 떨어진 브라우닝 패스쪽 봉우리로 산행을 떠났다. [사진 극지연구소]

 
그동안 날씨가 좋아 몇몇 대원들이 등산을 즐겼지만 3월 중순에 접어들면 날씨가 나빠지니 쉽지 않다. 추운데도 마지막 등산을 즐기겠다고 대원들이 나갔다 왔는데 모두 목 위로 눈발이 내려앉았다. 난 추위가 싫어 등산을 꺼렸지만, 기지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인 높이 2730m의 멜버른 화산은 마치 뒷산처럼 느껴져 가보고 싶었다. 주변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론 기지에서 약 30km 떨어져 있다. 하계 화산연구팀이 헬기로 올라가 관측 장비를 점검하러 오고 갈 때 들어보니 깊은 크레바스들이 길목에 도사리고 있다고 하였다. 가끔 화산가스가 분출하면 신기해 사진 찍기 바빴다. 한 번은 집에 그 사진을 보냈더니 바로 걱정하는 답장이 왔다. 기지가 혹시 위험한 게 아니냐고. 괜히 걱정을 준 것 같아 화산이 폭발해도 기지와 멀어서 괜찮다고 안심시켰지만, 기지 주변에 현무암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이전 폭발 연대가 수백 년도 안 되니 당시 마음으론 그저 있는 동안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총무가 극야 전에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그나마 제일 좋은 날씨를 잡아 모두 단단히 챙겨입고 나갔는데, 영하 20도에 바람이 부니 추워서 자세를 잡기도 힘들었다. 모두 눈을 부릅뜨고 간신히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햇빛이 좋지 않아 그런지 사진이 어둡게 나왔다. 추운 날씨에 나간 보람이 없었다.  
 
하지만, 남극의 겨울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을 즐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밤다운 밤이 오면서 날씨 좋은 날은 남극 하늘에 가득 찬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아주 어릴 때 시골 수박밭 오두막에서 쏟아지는 별을 본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한 번은 브라우닝 패스 쪽에서 오로라가 새벽에 발생하였다. 서로들 깨워서 알려주기 바빴는데, 대장 깨우기가 어려웠나보다. 잘 자고 일어나 아침에 그 소식을 접하니 못 본 게 아쉬웠다. 다음번도 있으니 위안을 삼으며 대원들이 찍은 영상을 신기하게 보았다. 대원들은 이제 가장 힘든 시간인 극야를 맞이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시기에 대원들과 신나는 생활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며 못내 아쉬운 브라우닝 패스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⑨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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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