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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IS] 시스루 입은 나훈아, 회춘 아닌 '청춘'의 무대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는 걸 정말 믿습니다."
가수 나훈아가 중·장년의 청춘을 대변했다. 시스루 셔츠에 상반신을 노출하고 찢어진 청바지에 허벅지를 훤히 내놓은 그는 힘있는 목소리로 25곡의 세트리스트를 자유자재로 갖고 놀았다. 72세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노익장으로 관객들을 울고 웃겼다.

나훈아는 18일 오후 7시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KSPO돔)에서 전국투어 '청춘 어게인' 서울 공연 두 번째 무대에 올라 "전날 오신 분들에게 미안합니다. '나훈아 저거 오래됐는데 어제 두 시간 넘게 공연하고 오늘 되겠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을지 모릅니다만, 나는 어제 목을 풀었고 오늘 공연은 내 알아서 할낍니다. 절대 본전 생각 안 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 '청춘 어게인'은 지난해 11년 만에 컴백해 연 '드림 어게인'에 이은 이른바 '어게인' 시리즈다. 서울 3회 8분 매진을 비롯해 부산 2회 3분, 대구 2회 4분, 청주 1회 2분, 울산 1회 3분 등 상반기 전국 투어 9회 차 공연이 평균 4분 만에 전 석 팔려 나가며 여전한 인기를 자랑했다. 한 관객은 "딸이 새벽까지 대기타면서 끊어준 티켓이다. 못 가는 줄 알았는데 새벽에는 몇 개씩 풀릴 때가 있다면서 기다리라 하더니 끝내 구해줬다"고 기뻐했다.

나훈아도 '피켓팅'(피터질 정도로 어려운 티켓팅)에 대해 알고 있다며 "여러분들이 이 곳에 어렵게 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힘들게 표 끊어줘서 보냈기에 제 책임이 큽니다. 이대로 여러분들을 집에 보낼 수 없습니다. 공연 보고 돌아가면 자식들이 못 알아 볼 정도로 아주 젊어진 모습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또 전보다 더 울컥한 감정으로 공연을 준비했다는 과정을 소개했다. "'물레방아 도는데'가 1972년도에 나왔는데 계산해봐라. 몇 년 전이고, 데뷔곡이 아님에도 47년 전입니다. 전주를 듣는 순간 가슴이 뛰고 무슨 새월이 이래 갔는가 싶고 합니다. 공연 시작할 때 나온 내 옛날 사진들 보면서 또 울컥했습니다"라면서도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는 말 정말 믿습니다. 가슴이 뛰면 청춘입니다"라고 관객들의 청춘을 책임질 것을 약속했다.

"부를게 천지빼까리인데"
관객과의 약속대로 나훈아는 자신이 기획하고 연출한 무대에서 날아다녔다. 올드팝 '예스터데이'로 공연을 시작한 그는 '땡벌' '물레방아 도는데' '잡초' '가라지' '무시로' '낙엽이 가는 길' '18세 순이' '사랑' 까지 멘트 없이 연달아 달렸다. '가라지'에서는 얼굴이 본격적으로 클로즈업되면서 나훈아 특유의 건치 미소가 환하게 잡혔다. '홍시' '내 청춘' '남자의 인생'을 부를 땐 관객들에 곡 선정 배경을 소개하며 가까이 소통했다. 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부른 '동백 아가씨' '갈무리' '그대 그리고 나' 무대에선 "오빠" 함성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훈아의 마술쇼도 인상적이었다.

노래 제목과 가사에 충실한 무대 연출은 관객 몰입도를 더했고, 관객 연령층을 고려한 궁서체의 큰 곡소개와 가사 자막은 떼창을 불렀다. 특히 나훈아는 의상을 수 벌 갈아입으며 무대마다 분위기를 달리했다. 무대 위에서 자켓을 벗고 시스루 셔츠로 갈아입을 땐 입을 틀어막는 관객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저승사자'에서 '공'으로 이어지는 무대는 꽤나 강렬했다. 저승사자와 이승사자가 무대 양 끝에서 등장했고, 나훈아는 중간에서 저승사자로 이어진 검은 끈과 이승사자로 이어진 하얀 끈을 붙잡고 이애란의 '백세 인생'을 개사해 불렀다. 70세에는 노래 좀 더 하다 가겠다고 했고, 80세에는 짜증나고 성질나서 안 가겠다고 했다. 100세에 저승사자가 찾아오면 죽었으면 죽었지 못간다고 전하라고 노래했다. 공의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갈 세상, 백년도 힘든것을 천년을 살것처럼'이라는 가사와 연결되는 느낌을 줬다.

나훈아는 그 뒤로도 '청춘을 돌려다오' '배신자' '울긴 왜 울어' '너와 나의 고향' '고향역' '머나먼 고향' '영영' '고장난 벽시계' '자네' 등을 선곡하고 관객들의 "또, 또, 또" 함성에 무대로 응답했다. 그는 "나는 영어의 영자도 모릅니다. 앙코르 말고 '또'라고 하면 나옵니다. 부를게 천지빼까리인데 '또' 계속 하다간 내일 공연 못할 수도 있습니다"라며 씩 웃었다.


"이미자 선배가 그만둔다는데..."
나훈아는 "오늘 오신 분 중에 만으로 53세가 안 되신 분만 박수"라며 환호를 이끌었다. 열화와 같은 함성에 "이분들은 내가 가수 시작할 때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라면서 자신의 가수 인생의 여러 굴곡을 이야기했다. 신비주의라는 수식어가 붙인 것에 대해선 "나는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하는 꼬라지 보기 싫어 안 나가고, 안 만나는 겁니다. 저 안 만나 준다고 신비주의는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전했다. 전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며 과거 금지곡 사례와 출연 금지가 됐던 일화 등을 재미있게 풀어내기도 했다.

반세기 이상 가요계를 버틴 나훈아는 은퇴 이야기도 스스럼 없이 관객에 털어놨다. "얼마 전 이미자 선배가 그만 둔다고 하는 기사를 봤습니다. 마음이 쎄했습니다. 남일 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나는 공연 한 번 하면 남들 배 이상의 힘을 쏟기 때문에 힘듭니다."

그러면서도 나훈아는 내년 공연에 대한 기대감도 슬쩍 내비쳤다. '공'의 가사를 곱씹으며 "여러분들은 알지 마십시오. 살다보면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알면 이미 늦은 거랍니다. 모르고 사는게 건강에 최고 입니다. 건강하십시오. 행복하게 살려면 건강이 우선입니다"라고 했다. 또 "스스로 행복하게 사십시오. 자식들한테 재산 주지 말고 다 쓰세요. 천당이나 천국에는 은행이 업다 안합니까. 하고 싶은 거 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혹시 자식들에게 주려거든 멀쩡한 정신에 분할하세요. 안그럼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할 수도 있습니다"라면서 "돈 다 쓰고 조금 남거든, 내년에 내가 공연 할란지 안할란지 모르겠지만 보러 오십시오. 농담입니다"라고 웃었다.

나훈아 미소에 관객석에선 "귀엽다"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찢어진 청바지에 민소매, 티셔츠, 니트 등 상의를 여러 번 교체한 모습에 "몸관리가 엄청나다"고 감탄한 남성 관객도 많았다. 공연장을 나서면서도 "보약이 따로 없었다"며 나훈아 공연에 만족감을 드러내는 후기들이 이어졌다.

데뷔 53주년에도 굳건한 인기를 입증한 나훈아는 19일 서울 공연을 마무리하고 6월부터 부산, 대구, 청주로 전국투어를 이어간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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