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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걸린 '퇴직연금 기금형'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이 것

기자
김성일 사진 김성일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31)
기존 계약형 제도는 사업자가 금융기관 또는 근로복지공단과 계약을 체결했지만, 기금형 제도는 사용자로부터 독립된 기관을 설립해 제도를 운용할 수 있다. [사진 중앙포토, unsplash]

기존 계약형 제도는 사업자가 금융기관 또는 근로복지공단과 계약을 체결했지만, 기금형 제도는 사용자로부터 독립된 기관을 설립해 제도를 운용할 수 있다. [사진 중앙포토, unsplash]

 
국회에 제출된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의 핵심은 ‘기금형 제도’ 도입이다. 법이 개정되면 근로자와 사용자는 사업장 상황에 맞도록 기존 계약형 제도와 새로운 기금형 제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기존 계약형 제도는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사용자가 직접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 또는 근로복지공단)와 운용 및 자산관리 계약을 체결해 운영했다. 반면 기금형 제도는 사용자로부터 독립된 기관(자사 단독 또는 연합형 수탁법인)을 설립해 퇴직연금제도를 운용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기금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비영리 수탁법인이 노사의 대리인(Agent)으로서 연금제도를 운용해 노사 중심의 연금제도 운용이 가능하다. 둘째, 수탁법인 내부 전문가 또는 외부 자산운용 전문기관 운용 위탁을 통해 연금자산 운용 성과를 제고할 수 있다. 셋째, 협회, 계열사, 지역 등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수탁법인을 설립·운영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연합형 제도) 규모의 경제를 통한 퇴직연금제도 운용 효율화를 꾀할 수 있다.
 
기금형 제도의 특징. [자료 김성일, icooon mono, 제작 조혜미]

기금형 제도의 특징. [자료 김성일, icooon mono, 제작 조혜미]

 
그런데 기금형 제도 도입만으로 기존 계약형이 안고 있는 원리금 보장상품 위주의 자산운용이나 사업자 주도의 제도 지배구조 등이 해결되지 않는다. 그 전에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는 기금형 제도가 본격화되기 전에 사전준비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대부분 기금형으로 운영되고 있는 퇴직연금제도 선진국의 경우에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소송으로 번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행 계약형 제도와 기금형 제도의 가장 큰 운영상의 차이는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 유연성이 넓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계약형에서 이뤄지고 있는 투자대상 상품과 투자금액 제한과 같은 자산운용 규제가 대폭 완화될 개연성을 안고 있다. 이럴 경우 수탁자 책임을 명확히 규명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가입자들의 급여 수급권보호와 관련된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함께 커 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퇴직연금제도 소송과 관련된 연구가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제에 대한 완화조치로 인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한도가 증가했다. 그리고 가입자의 투자상품 선택폭이 확대되어 합리적이며 위험관리에 바탕을 둔 자산운용을 담보할 수 있는 수탁자의 책임이 요구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탁자의 존재근거는 영국, 미국에서 기원한 신탁법에 근거한다. 신탁이란 쉽게 말해서 믿고 맡긴다는 의미다. 사용자가 신탁을 설정해 수탁자(위의 비영리 수탁법인)에 연금 자산을 양도함으로써 사용자로부터 분리하여 사외에 유보 시키고 연금 자산의 보유자인 수탁자가 신탁 자산을 관리하게 하는 것을 뼈대로 성립된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에서 수탁자는 근로자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자신의 재량으로 운영·관리하게 되므로 그 역할과 책임이 매우 중요하다.
 
해외에서는 퇴직연금과 관련한 수탁자 책임 위반 소송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pixabay]

해외에서는 퇴직연금과 관련한 수탁자 책임 위반 소송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 pixabay]

 
보험연구원이 ‘주요국 퇴직연금 소송 사례와 정책적 함의’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적한 부분이 있다. 기금형에서 퇴직연금 수탁자가 규정을 위반해 가입자에게 투자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가입자 이익에 반하는 투자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 수탁자 책임 위반 소송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연금자산운용 자유화 등으로 수탁자 책임 위반 소송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고자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확립하는 등 대책을 계속 마련해 오고 있다. 컴플라이언스는 수탁자의 법규준수 여부를 자체적으로 감시하는 독자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기금형 제도에서 이에 대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기금형 참여자 혹은 이해관계자 모두 수긍하는 방향에서 컴플라언스 체계를 구축하도록 활발하게 공론화되어야 한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이 굳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입자와 수탁자 간의 이익 상충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관련 소송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먼저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수탁자별 책임 기준설정에 관한 것도 이 체계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모두 기금형 제도가 포함된 근퇴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만 매달려 있다. 수탁자의 책임의 중요성에 대한 현실적, 실무적 논의가 매우 부족해 보인다.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고 책임은 추상적이고 범위는 매우 넓기 때문이다. 기금형 제도 도입을 전제로 시급히 이 부분을 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어떤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운영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운영은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김성일 한국연금학회 퇴직연금 분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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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