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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쏟아진 이상화 "무릎 때문에 은퇴 결정···빙상 여제라 불리던 최고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빙속 여제 이상화는 16일 공식 은퇴식을 열고 17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사진=정시종 기자

빙속 여제 이상화는 16일 공식 은퇴식을 열고 17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사진=정시종 기자





'빙속 여제' 이상화(30)가 질주를 멈춘다. 이상화는 16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공식 은퇴식을 열고 17년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눈물이 쏟아져 말을 잇지 못한 이상화는 이후에도 두 차례 더 눈물을 훔쳤다.
 
이상화는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단거리의 역사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 스케이터'로 이름을 날린 그는 휘경여중 재학 시절 성인 선수들을 제치고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다. 이때부터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만 16세였던 2005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이상화는 첫 올림픽이었던 2006 토리노겨울올림픽 여자 500m에서 5위에 오르며 한국 여자 빙속 최고 기록을 작성했다.

 
이상화는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인 2010 밴쿠버 대회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특히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시작으로 2014년 소치올림픽까지 4차례나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이상화(중앙)의 모습.

이상화는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인 2010 밴쿠버 대회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특히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시작으로 2014년 소치올림픽까지 4차례나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이상화(중앙)의 모습.


이상화는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인 2010 밴쿠버 대회부터 전성기를 열었다. 그는 신체 조건이 월등한 서양 선수들이 득세하던 여자 5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이후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부상과 싸우면서도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를 싹쓸이했다. 2012~2013시즌과 2013~2014시즌엔 4차례나 세계신기록을 갈아 치웠다. 특히 2013년 11월 열린 월드컵 2차 대회(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작성한 세계신기록(36초36)은 6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2014 소치겨울올림픽에선 여자 500m에서 우승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이상화는 고질적인 왼쪽 무릎 부상과 오른쪽 종아리 부상과 싸우며 세 번째 올림픽인 2018년 평창 대회까지 도전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 대회에서 부진하자 '한물간 것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를 악문 그는 모든 악조건을 딛고 은메달을 목에 거는 감동의 드라마를 썼다. 이상화는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살아 있는 전설로 남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생각은 변함없다"며 "단거리 종목에 이런 선수가 있었고, 아직 깨지지 않았다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 항상 열심히 노력했고, 안 되는 걸 되게 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 은퇴를 결정한 계기는.
"선수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정리할지 며칠 고민했다. 선수로 또 여자로 꽤 많은 나이가 됐다. 17년 전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이뤄야 할 나만의 목표를 세웠다. 세계선수권 우승을 비롯해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신기록 수립, 이 세 가지를 꼭 이루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하고 싶고,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내 의지와 다르게 항상 무릎이 문제였다. 마음과 다르게 몸이 따라 주지 못하면서 이런 몸 상태로는 더 이상 최고 기량을 보여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스케이트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가장 실망했다. 그래서 은퇴를 결정했다."
 
 
이상화에게 현역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출전한 2014 소치올림픽이었다.

이상화에게 현역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출전한 2014 소치올림픽이었다.


- 선수로 뛰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소치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스포츠 세계엔 여러 징크스가 있다.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에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이겨 내고 올림픽 2연패를 했다. 완벽한 레이스였다."
 
- 현역 시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마인드 컨트롤이 힘들었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운동에만 매진하기란 쉽지 않다. 나도 부담이 많았다. 꼭 1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계속 식단 조절을 했다. 남들 하나 할 때 두 개를 했다. 모든 걸 자제하고 집중하는 게 힘들었다."
 
- 은퇴까지 가장 큰 고비는.
"평창올림픽 직전이 가장 힘들었다. 선수들은 아이스링크에 들어가면 느낌이 든다. 평창으로 이동 전 독일 대회에서 시즌 최고 기록을 세웠는데도 (불안한) 느낌이 들더라. 메달을 아예 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잠을 편히 자 본 적이 없다. 1등을 꼭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서 힘들었다."
 
- 은퇴 이후 가장 해 보고 싶은 것은.
"그동안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 생활을 했다. 우리는 하루에 운동을 네 번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저녁 8시까지 훈련한다. 그런 패턴을 내려놓고 싶다.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한가롭게 산책하고 싶다. 잠도 편히 자 보고 싶다. 평창 대회 끝나고 알람 끄고 생활할 거라고 했는데, 하루 이틀밖에 못 갔다. 지금도 알람을 끄고 편히 자 보고 싶다. 은퇴식을 한다고 해서 힘들었다. 이제 선수 이상화는 끝났으니 일반 이상화로 돌아가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
 
- 은퇴 결정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
"사실 부모님은 계속 운동하길 원하셨다. 그래서 은퇴 날짜 잡히기 전에도 속상해하실까 봐 일부러 말씀을 안 드렸다. 나만큼 섭섭하실 것 같다. 오늘 아침에도 말 한마디에 서운함이 묻어 있더라. 겨울이 되면 딸의 경기를 못 보니까. 그건 차차 달래 드려야 한다."

 

- 라이벌 고다이라 나오(일본)가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에서 보자는 말을 했다.
"은퇴 기사를 보고 연락이 왔다. 나오가 깜짝 놀라 농담 아니냐, 잘못된 뉴스면 좋겠다고 했다. 저도 상황을 보자고 했는데,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알리게 됐다. 나오와는 인연이 많다. 중학교 때부터 한일 친선경기를 하며 친해졌다. 나오는 아직 현역이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욕심내지 말고 하던 대로 하길 바란다. 나오가 훈련 중인 나가노에 조만간 놀러 갈 생각이다. 베이징올림픽은 어떤 형태로든 찾을 것 같다. 해설위원으로 갈 수도 있고, 코치로 갈 수도 있다. 둘 중 하나로 참가하고 싶다."
 
- 세계신기록은 언제까지 유지됐으면 좋겠나.
"욕심이지만, 영원히 깨지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선수들 기량이 많이 올라와 언젠가 깨지겠지만, 1년 정도는 유지해 줬으면 좋겠다."

 
이상화는 향후 계획에 대해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후배들을 위해 지도자로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사진=정시종 기자

이상화는 향후 계획에 대해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도, 후배들을 위해 지도자로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사진=정시종 기자


- '제2의 이상화' 발굴을 위해 지도자로 나설 계획이 있나.
"은퇴를 고민한 게 올해다. 평창올림픽 때 우승 목표로 임해서 은퇴 미래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계획은 지금부터 차근차근 세울 것이다. 은퇴하면서 스피드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으로 사라지는 게 아쉽기 때문에 후배들을 위해서 지도자로 나설 수도 있다."
 
- 포스트 이상화를 꼽아 달라.
"김민선(20)을 추천하고 싶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많이 성장한 선수다. 내가 어렸을 때와 흡사하다. 평창 대회 때 같이 방을 썼는데 12세 어린 선수가 언니한테 떨지 말라고 격려한 게 대견스러웠다. 신체 조건은 타고났다. 500m뿐 아니라 1000m까지 연습해서 최강자로 거듭나는 걸 보고 싶다."
 
- 세계 최정상을 밟아 본 선수로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주변에 보면 힘들다고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다. '쟤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하지'라는 생각을 갖고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운동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국민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 줄 수 있는 위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 항상 빙상 여제라 불러 주시던 최고 모습만 기억해 달라. 비록 스케이트선수 생활을 오늘 마감하지만, 받은 사랑에 보답하게 개인적으로 계속 노력하겠다. 당장 내일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되지만, 지금껏 해 온 것처럼 다른 일도 열심히 해 보려고 한다. 행복했다. 사랑과 응원, 평생 잊지 않고 가슴속에 새기며 살겠다. 감사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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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