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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협치, 문화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꽉 막힌 정국이다. 이른바 선거법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국회가 파행에 이르고, 물리적 충돌 끝에 겨우 선거법 개정안이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은 됐지만, 이에 반발한 제 1 야당은 국회를 떠나 장외투쟁을 펼치며 거리에 머물고 있다. ‘좌파독재’와 ‘달창(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모임인 달빛기사단을 속되게 부르는 여성비하적 은어)’과 같은 극단적 표현과 혐오적 막말이 난무하면서 대립과 분열의 정치가 판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근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청와대와 국회 관계가 과거와 별 차이가 없거나 악화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자유한국당의 국정 발목잡기 탓’이라는 응답이 34.8%로 가장 많았으나, ‘청와대의 독주 탓’이라는 응답도 31.6%였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무능과 보신주의 탓’이라는 응답이 17.9%였다.
 
이익집단 정치도 매한가지다. 현 정부의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는 민주노총의 불참과 여성·청년·비정규직 계층 대표들의 거부로 계속 삐걱거린다. 얼마 전 어렵사리 이루어진 카풀(차량공유)서비스 도입을 둘러싼 타협도 택시 기사의 4번째 분신과 이어지는 택시업계의 대규모 집회로 진통을 겪고 있다. 바로 엊그제 일단락된 전국 버스파업 협상도 막바지에 다급하게 이루어진 정부, 지자체, 노사 간 중재와 타협으로 최악의 버스 대란은 막았다지만, 준공영제 확대(즉 세금 투입)와 요금 인상으로 결국 일반 시민이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중재와 정책적 대응을 제대로 못한 정부·여당의 책임이 크지만, 분파적·적대적 이익집단 정치의 유산도 문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현 한국 정치 지형에서 중간층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령 한국갤럽의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는 현 정권에 대한 긍정·부정이 팽팽해지면서 유보층이 적어지고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 비율도 급속히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정치권이 극한 대결 정치를 부추긴 결과 중도층에게 한 쪽 진영에 대한 선택을 종용하는 효과이기도 하겠지만, 문제는 과거에 비해 근래 들어 이러한 중간층 위축 현상이 더욱 고질화되었다는 것이다.
 
현 한국 정치에 있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양극화가 확산·고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주지하다시피 유튜브와 온라인 댓글 등 SNS 상의 편 가르기와 대립 현상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요컨대 정치 엘리트건 사회 집단이건 일반 시민이건 적대와 갈등, 편 가르기와 쏠림 성향을 보인다. 과연 우리 정치문화에 협치의 DNA가 있기는 한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다. 하긴 한국의 정치적 전통을 중앙권력 쟁취를 향해 위로만 돌진하는 ‘소용돌이의 정치’라거나, 한국 사회를 끼리끼리만 신뢰하는 ‘저신뢰(low trust) 사회’라 규정한 서구 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계·두레·향약과 같은 유서 깊은 공동체와 협동의 전통이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의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에 기고한 장문의 글, “평범함의 위대함”의 내용처럼 3·1 운동, 광주 민주화운동, 촛불혁명, 그리고 다시 광주일자리 대타협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평범한 한국인들이 함께 뭉쳐 위대한 변화를 만들어낸 유산도 있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인들은 대오각성하고, 이익집단들은 대승적으로 타협하며, 일반 시민들도 자중·자제하자는 식의 뻔한 얘기 말고 어떤 제도적 해법은 없을까. 어려운 문제고 묘책이랄 순 없지만, 정치학 고전으로 평가 받는 아렌드 레이파트(Arend Lijphart)의 민주주의 유형 연구로부터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에게 주는 핵심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협치는 권력을 공유하는 행정부, 비례성이 강화되어 구성된 국회, 조합주의적 이익집단 체제, 지방분권형 연방제와 같은 합의주의 정치제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스위스와 벨기에가 이러한 합의제 민주주의의 전형이다.
 
물론 레이파트의 연구는 제도가 뿌리 내릴 수 있었던 문화적 토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스위스와 벨기에라고 처음부터 합의적 정치문화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벨기에의 경우는 현재까지도 북부 네덜란드어계 플랑드르 지역과 남부 프랑스어계 왈롱 지역 간 마치 벨기에 와플처럼 두 쪽으로 갈라져 있음에도 한 나라로 유지된다. 결국은 제도의 힘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 문대통령이 제안하는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와 5당 대표 회동 정도로는 부족하다. 대통령의 권력을 나누고, 국회의 비례성을 더욱 강화하며, 이익집단 협의 기제(mechanism)를 개선하고, 연방제에 준하는 자치분권을 실현하기 위한 개헌 수준의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바로 협치를 위한 개헌 논의를 다시 시작할 때다.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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