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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갓난아이’ 볼모로 일으킨 '불주사' 백신 품귀 사태

2017~2018년생 두세 살배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악몽'으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갓난아이에게 안전한 BCG 백신을 맞추려고 발만 동동 굴렀던 때를. 그런데 당시 ‘백신 품귀 사태’의 원인이 한 백신 회사의 욕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을 추적해봤다.
#‘질병의 왕’ 결핵

공정위, 2017년 '독점' BCG 백신 공급 끊은 한국백신 제재

결핵은 무서운 질병이다. 석기시대 화석에도 결핵의 흔적이 남아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으로 꼽힌다. 최근 200년 동안 약 10억명이 결핵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결핵이 ‘질병의 왕’으로 꼽히는 이유다. 데카르트ㆍ칸트 같은 철학자, 도스토옙스키 같은 문호(文豪), 쇼팽 같은 음악가가 모두 결핵으로 사망했다. 국내에선 천재 시인 이상이 결핵으로 숨졌다.

1960년대 어린이 예방접종 모습이다. [중앙DB]

1960년대 어린이 예방접종 모습이다. [중앙DB]

‘후진국 병’으로 불리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감염국이란 불명예를 갖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전체 결핵 환자는 3만3796명. 하지만 무적은 아니다. BCG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 결핵균의 독성을 약하게 해 만든 백신으로 접종 시 결핵에 면역력을 갖게 해 준다. 결핵균에 감염되기 전 BCG 접종을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발병률이 5분의 1로 줄어든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생후 한 달 내 신생아에게 BCG를 접종하도록 권고하는 이유다.
#‘불주사’와 신문물
자료: 질병관리본부

자료: 질병관리본부

BCG 백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피내용(주사형)과 경피용(도장형)이다. 피내용은 흔히 말하는 ‘불주사’다. 접종하면 팔뚝에 흉터가 생긴다. WHO는 주사로 정확한 양(약 0.05㎖)을 일정하게 주입할 수 있는 피내용 BCG 백신 사용을 권고한다. 정부는 이 권고에 따라 피내용 BCG 백신을 국가 필수 예방접종 백신으로 지정해 무료 지원해 왔다.

 
그런데 ‘신(新)문물’인 경피용 백신이 등장했다. 피부에 주사액을 바른 뒤 9개 바늘이 박힌 주사 도구를 이용해 두 번에 걸쳐 강하게 눌러 접종하는 식이다. 하지만 국가 무료 예방접종 대상 백신이 아니라 유료다. 백신값만 2만원 이상인데 주사 접종비까지 포함하면 7만원 수준이다. 그런데도 흉터가 남지 않아 부모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BCG ‘시장’
서울 송파구 한국백신 사옥.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한국백신 사옥. [연합뉴스]

한국은 BCG 백신을 전량 수입한다. 덴마크 공기업 SSI의 피내용 백신과 일본 JBL의 피내용ㆍ경피용 백신 3종이다. SSI 피내용 백신은 엑세스파마, JBL사 피내용ㆍ경피용 백신은 한국백신이 각각 국내 독점 판매계약을 맺고 수입ㆍ판매한다. 한국백신의 국내 BCG 백신시장 점유율은 최근 5년간 50% 이상이다.
 
문제는 한국백신의 유일한 경쟁사였던 엑세스파마가 2015년 9월 피내용 백신 공급을 중단하면서다. 제조사인 SSI가 백신 부문을 민영화하면서 생산을 중단하자 피내용 백신 공급이 끊겼다. 이때부터 한국백신이 국내 BCG 백신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다.
#부작용 논란… 품귀 사태
시민들이 결핵 검진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이 결핵 검진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9월, 독점 시장을 활개하던 한국백신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경피용 BCG 백신을 맞은 유아에게서 뼈에 염증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다. 한국백신의 주력인 경피용 백신 판매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백신은 피내용 백신 공급을 줄이기 시작했다. 2017년엔 피내용 백신을 전혀 수입하지 않았다. 국내 ‘백신 품귀 사태’가 일어난 배경이다.

 
이 기간에 부모들은 여러 이유로 발을 동동 굴렀다. 무료로 예방 접종(피내용)을 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고, 경피용은 안전성 문제가 찜찜했다. 질병관리본부는 급히 2017년 10월부터 비싼 경피용 백신에 대한 임시 무료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백신 품귀 사태는 SSI의 백신 부문을 인수한 말레이시아 AJ가 만든 피내용 백신을 국내에 공급하기 시작한 지난해 6월에서야 막을 내렸다. 국가 예산 140억원이 투입됐다. 이 기간에 한국백신의 BCG 백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3% 늘었다. 한국백신에게 BCG 백신 수급은 ‘돈벌이’였다.
#공정거래법 ‘철퇴’… 남은 과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도중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도중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는 16일 독점 수입ㆍ판매하던 고가의 BCG 백신(경피용) 판매를 늘리기 위해 무료 BCG 백신(피내용) 공급을 중단한 한국백신에 대해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9000만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대표이사 등 임원 2명은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장혜림 공정위 지식산업감시과장은 “신생아 생명ㆍ건강에 직결되는 백신을 판매하는 독점 사업자가 출고를 조절한 행위에 대한 첫 제재”라며 “독점 의약품 판매에 관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를 지속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신생아를 볼모로 백신 품귀 사태를 일으킨 회사는 처벌을 받게 됐다. 하지만 무서운 질병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필수 예방접종 백신조차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언제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과제로 남았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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