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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대신 OO야?' '시댁ㆍ처가 대신 시가ㆍ처가'로 부를까

[중앙포토]

[중앙포토]

“한국어는 너를 ‘너’라고 부르지 못하는 말입니다. (이런 언어는)전 세계에 7개 밖에 없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열린 가족 호칭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신지영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으로 상대를 부를 수 있는 ‘호칭어’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세계언어지도(WALS)에 따르면 전 세계 207개 언어 중 ‘너’라는 의미의 2인칭 대명사를 쓰기 꺼리는 언어는 7개다. 한국어와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태국어, 크메르어, 버마어 등이다. 신지영 교수는 “한국어에선 모르는 사람에게 ‘당신’이라고 말하면 욕이 될 정도”라며 “그만큼 호칭에 대해 사람들이 민감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을 부르는 호칭에선 이런 민감함이 엿보이지 않는다. 남편의 집은 ‘시댁’이라 부르지만, 부인의 집은 처가로 부른다. 남편 동생은 도련님·아가씨인데, 부인 동생은 처남·처제라고 한다. 한쪽은 존칭이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 관습에 따라 별생각 없이 써왔지만, 최근 이러한 가족 간의 호칭에 성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성이 결혼 후 불러야 하는 호칭 개선을 청원합니다’는 글도 올라왔다.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여성가족부 주최로 가족 호칭 토론회가 열렸다.[사진 한국건강가정진흥원]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여성가족부 주최로 가족 호칭 토론회가 열렸다.[사진 한국건강가정진흥원]

‘가족 호칭, 나만 불편한가요’란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여성가족부가 주최하고 한국건강가정진흥원과 한글문화연대가 주관했다. 성차별적인 가족 호칭을 바꿔 사용해본 시민들의 응모 사례를 소개하고 좋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렇게 부른다고 그런 뜻이 아니야’, ‘그게 뭐라고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가족 호칭을 바꾼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이러더라고요.” 신 교수는 지난 1월 국민권익위원회의 온라인 참여 플랫폼인 ‘국민생각함’을 통해 진행된 가족 호칭 설문을 진행하자 사회·정치계에서 위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가족관계 호칭은 과거 불평등한 가족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출가외인·성차별적 세계관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며 “상대방을 낮추고 깔볼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의식 없이 호칭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선 비대칭적 호칭을 바꾸자고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응모에 국민이 제안한 사례도 발표됐다. ‘시댁과 처가’는 ‘시가와 처가’로 바꾸자고 했다. 증조할머니·증조할아버지를 최고할머니·최고할아버지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다. 도련님보다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자는 방안도 뽑혔다. 응모자는 "원래 친했던 누나가 형과 결혼한 뒤 자신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서먹해지자 제 이름을 불러달라고 해 편한 가족이 됐다"고 밝혔다. 부부간에 OO아빠, OO엄마를 부르는 호칭도 ‘여보·당신’ 등으로 바꿔 부르고, 장인어른·장모님과 시아버님·시어머님 대신 모두 ‘어머님·아버님’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가족 호칭. [국립국어원]

가족 호칭. [국립국어원]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도 가족 호칭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를 좌장으로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김희영 한국여성민우회 팀장 박건식 MBC PD, 최봉영 전 항공대 교양학부 교수 등이 참여했다. 
 
김하수 연구위원은 “1970년대 초 젊은 교수 중엔 박사학위 소지자가 적어 자신들을 ‘박사님’이라고 불러주는 걸 좋아했지만 80년대부턴 ‘교수님’으로 듣고 싶어했다”며 “이처럼 호칭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영향을 받는 시대적 현상이므로 가족 호칭 역시 ‘가변성’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연구위원은 “국가가 언어문화 개선을 끌고 가 성급하게 바꾸려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를 활짝 열되 단계적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희영 여성민우회 팀장은 “식당 노동자에게 ‘아줌마. 여기요’라고 부르는 것이 여성노동자가 처한 환경을 드러낸다”며 “호칭은 결국 말투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형성된 사회적 관계는 차별이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박건식 PD는 “남편의 아우 등에 쓰는 ‘서방님’ 등 사용이 줄어드는 호칭어는 표준어에서 삭제하고, ‘자기’ 등 부부간의 호칭어로 확산하는 언어는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으로 호칭 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봉영 교수는 “호칭은 결국 상대의 신분을 담아내는 것”이라며 “신분에 따라 말을 높이거나 낮추는 일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서로 높임말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여성가족부 주최로 가족 호칭 토론회가 열렸다.[사진 한국건강가정진흥원]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여성가족부 주최로 가족 호칭 토론회가 열렸다.[사진 한국건강가정진흥원]

하지만 아직 가족 호칭은 고유한 전통을 담고 있어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여성가족부는 공청회·방송토론회 등에서 의견을 수렴해 가족호칭 대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다만 강제성이 있는 가이드라인 등은 제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신지영 교수는 “언어는 신성불가침의 성역도 금과옥조도 아니므로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로 바뀔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합의다. 사회 구성원의 합의 없이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언어 사용자의 의식 수준이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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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