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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문화탐색] 매트릭스 20주년, 상상은 현실이 되다

박상현 IT 칼럼니스트

박상현 IT 칼럼니스트

20년 전인 1999년 5월 15일, SF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매트릭스’가 한국에서 개봉됐다. 낮에는 토머스 앤더슨이라는 이름으로 소프트웨어 기업의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밤에는 네오라는 가명으로 불법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어 팔던 청년이 어느 날 자신이 알고 있던 세상이 전부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주인공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스토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세상이 사실은 거대한 허구였다는 설정, 그리고 주인공이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체성의 혼란 등 ‘매트릭스’가 가진 요소들은 이미 ‘스타워즈(1977)’나 ‘블레이드 러너(1982),’ ‘토탈리콜(1990)’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흥행에서 대기록을 세운 것도 아니다. 그해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 중에서 박스오피스 순위로 5위를 했으니 제법 장사를 잘했지만, ‘스타워즈’ 팬들이 그렇게 싫어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이나 ‘토이 스토리 2’ 같은 연작들에게 밀렸고, 심지어 ‘오스틴 파워스’ 같은 코미디 영화에도 밀렸다. 하지만 올해 세계 곳곳에서 영화 팬들이 개봉 2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는 다른 영화들이 아닌 ‘매트릭스’다. 왜일까?
 
영화 ‘매트릭스’. 미래적 이미지의 전형을 만들며 영화사에 획을 그었다. 개봉 20주년을 맞아 전세계 곳곳에서 팬들의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중앙포토]

영화 ‘매트릭스’. 미래적 이미지의 전형을 만들며 영화사에 획을 그었다. 개봉 20주년을 맞아 전세계 곳곳에서 팬들의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중앙포토]

우선 ‘매트릭스’가 전에 없었던 새로운 기법과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총알이 날아가는 장면에서 화면이 정지된 채 카메라가 주인공 주변을 빙 돌면서 보여주는 ‘불릿 타임(bullet time)’ 기법은 ‘매트릭스’에서 사용된 후로 큰 인기를 끌어 많은 영화가 흉내 냈고, 요즘에는 프로야구 같은 스포츠 중계에도 사용하고 있을 만큼 흔해졌다.
 
또한 ‘매트릭스’는 할리우드를 디지털화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영화로 유명하다. 화려한 영상과 다양한 부가기능과 정보 때문에 영화 팬들이 반드시 DVD로 소장해야 하는 영화로 알려지면서 VHS가 주를 이루던 시장을 DVD 중심으로 바꾼 작품이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지금의 스트리밍 영화시장이 디지털화 없이는 상상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보다 관객을 더 매료시킨 것은 영화가 던진 철학적 질문이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사실은 거대하고 정교한 시뮬레이션이라면 나는 그것을 깨달을 방법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1999년이라는 시점에서 그 질문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매트릭스를 이야기하는 우리나라 평론가의 70%가 이 고사를 언급한다는 농담도 있다)이나, 플라톤의 이데아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었다. 다른 사람 아닌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가 우리가 ‘매트릭스’ 같은 시뮬레이션에 살고 있지 ‘않을’ 확률이 수십 억 분의 1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니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무시해버리기도 힘들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는 모습이나, 구글의 채팅 서비스 듀오와 전화 통화를 한 사람들이 상대가 인공지능인 줄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 AI가 인간을 속여서 지배하는 매트릭스는 머지않아 현실화될 미래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영화 속에서처럼 인간들이 매트릭스에 갇히는 데는 거대한 인공지능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생각을 시뮬레이션 속에 몰아넣는 것은 2199년으로 설정돼 있지만, ‘매트릭스’가 나온 후 20년을 돌아보면 그보다 훨씬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할 수도, 어쩌면 벌써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한때는 자유로운 바다라고 생각했던 인터넷이 거대 플랫폼에 의해 쪼개지고, 각각의 플랫폼 안에서 사람들은 알고리즘, 즉 로봇이 공급하는 콘텐트만을 받아보는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컴퓨터 앞에서 앉아서 능동적으로 웹을 ‘서핑’했던 사람들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이동했고, 웹 브라우저 대신 몇 개의 앱 안에 갇혀서 산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로만 친구를 맺는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끼리, 기후변화는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들끼리, 그리고 백신은 자폐증을 일으킨다고 확신하는 사람들끼리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그 안에 살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이미 사람들은 허구적인 세상, 혹은 매트릭스에 갇혀 버린 것 아닐까.
 
박상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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