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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어택] 그들과 ‘퍼펙트게임’이 그리운 5월의 한복판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5월 16일이다. 1961년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다. ‘5·16’ 자체가 그 사건을 뜻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5월 16일을 다른 ‘사건’으로 기억한다.
 
토요일이던 1987년 5월 1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스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가 열렸다. 선발투수는 해태 선동열, 롯데 최동원. 이쯤 되면 눈치챘을 것 같다. 한국 프로야구 불멸의 명승부, 두 선수의 ‘15회 맞대결’이 열린 날이다. 2회 말 롯데가 2점을 선취했다. 3회 초 해태가 1점을 따라붙었다. 롯데가 이기는 듯했다. 해태가 9회 초 동점을 만들었다. 결국 연장 15회 2-2 무승부로 끝났다. 이날 완투한 선동열은 232구, 최동원은 209구를 던졌다. 선발투수 투구 수를 100개 안팎으로 조절하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같은 날 연달아 두 경기를 던진 셈이다. 당시 선동열(1963년생)이 24살, 최동원(1958년생)이 29살이었다. 이 승부를 소재로 2011년 조승우·양동근 주연의 영화 ‘퍼펙트게임’이 제작됐다. 최동원은 개봉을 앞둔 같은 해 9월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두 선수는 사실 세 차례가 아닌 다섯 차례 맞대결했다. 세 번의 선발 맞대결은 1승 1무 1패였다. 두 선수가 처음 맞붙은 건 1985년 7월 31일이다. 선동열이 3회에 구원등판해, 선발 맞대결은 아니었다. 최동원이 완투한 롯데가 4-2로 이겼다. 또 한 번은 ‘15회 맞대결’ 한 달 전인 1987년 4월 17일인데, 1회 1사 후 구원등판한 선동열의 해태가 6-2로 승리했다. 최동원은 6점을 내주고 강판당했다. 다 합쳐도 2승 1무 2패, 두 선수는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15회 맞대결’이 펼쳐진 1987년 5월은, 4·13 호헌조치에서 6·10 항쟁과 6·29 선언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야구장에서 해태 팬은 김대중을, 롯데 팬은 김영삼을 연호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화 요구가 뜨거웠다. 최동원은 이듬해인 1988년 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에 앞장섰다. 그로 인해 롯데에서 방출됐고 삼성 라이온즈로 강제 이적 당했다. 최동원은 1990년 은퇴했다. ‘15회 맞대결’은 두 선수의 마지막 승부다. 눈부신 5월의 한복판, 문득 그들과 그들의 ‘퍼펙트게임’이 그립다.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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