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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新대권무림] 원순씨 “천하는 기다리는 자의 것, 좇을수록 멀어진다”

지역맹주편 ③ 서울의 대도, 원순씨
<무림서열록 제34위> 한성시장 원순씨.
자수성가형: 경상도산. 중원 최고라는 경기고등무술학교, 서울무술대학에서 내공을 익힘. 철혈제 박통에 항거하다 서울무술대학에서 파문. 잡학·잡술에 잠시 빠졌다가 단국무술대학에 입문, 이듬해 사법시험을 통과해 1년간 대구무림 검사. 이때 장만한 롤렉스 시계를 도둑맞고는 평생 고가의 시계를 차지 않았다고 함. 무공내력: 없음. 참여무술, 낙천낙선무술, 소액주주무술 같이 절정고수나 재계에 극성인 풀뿌리 무공을 익힘. 명박대제 시절 무림 감찰의 사찰에 시달리다 분노해 강호 출도를 결심, 무력 2011년 한성시장 비무에서 승리. 단독 담판으로 철수공자를 철수시켜 대도(大盜)로 불림. 대표 무공: 일각이면 누구의 마음도 녹일 수 있다는 세치언변공, 어떤 공격도 피할 수 있다는 아니면말고공. 요즘은 청년수당살포, 미세먼지말살, 광화문개조초식 등에 꽂혀있음. 근황: 한성시장 자리를 세 번 훔친 뒤로는 더 훔칠 게 없어 고민. 남은 건 천하무림뿐인데, 현 무림지존의 위세에 눌려 복지부동 중.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작은 도적은 잡히지만 큰 도적은 제후가 된다(小盜者拘, 大盜者為諸侯)’
 
장자는 큰 도적 도척(盜跖)을 내세워 세상을 조롱하며 이렇게 말했다. 도척은 자신을 훈계하러 온 공자를 꾸짖었다. 인과 예, 어설픈 ‘공자님 말씀’은 저리 가라고 했다. ‘성공하면 우두머리가 되고 실패하면 꼬리가 된다(成者為首, 不成者為尾)’며 확인사살까지 했다. 그때부터였다. 무림사 제일 법칙이 강자존(强者存), 강자만 살아남는다가 된 것은.
 
대도(大盜) 원순. 그는 타고난 도둑이었다. 남의 것을 가져와 나누는 것으로 무림 일을 시작했다. 강호인들은 ‘아름다운 점포’라고 불렀다. 무림 절대고수 반열에 오른 것도 남의 자리를 차지하면서다. 철수공자가 자기 호주머니 속 물건이던 한성시장 자리를 그에게 내준 덕을 톡톡히 봤다. 그렇게 세 번 연속 시장 비무에서 승리했다. 무림사 첫 기록이다. 다음은 없다. 무림비무법이 네 번 연속 시장좌 차지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훔칠 것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중원 천하. 무림지존의 자리다. 예로부터 작은 도둑은 재물을 훔치지만 큰 도둑은 천하를 훔친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는 “하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아는 사람은 안다, 그게 원순씨 특유의 내숭이란 것을.
 
원순씨는 지금 잔뜩 웅크렸다. 나섰다 당한 자들이 한둘인가. 안희정공자는 현 무림지존에게 광화문 광장에서 뽀뽀까지 했지만,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이재명처사는 또 어떤가. 검찰공에 당해 생불여사, 죽은 목숨과 같은 처지 아닌가. 그는 다르다. 현 지존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결코 안 한다. 원순씨도 입소문 무서운 줄 잘 안다. 항어(巷語)야말로 고금 이래 촌철의 살인기가 아니던가. 무림 언론과 만나도 대권 관련 질문은 받지 않는다. 누군가 물으면 “현 지존의 임기가 절반도 안 됐는데, 그런 얘기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자른다. 어전회의 때도 굴신(屈身)이 보약이다. 전대 지존 그네공주에겐 대들기도 하고, 날 선 공격도 퍼부었다. 하지만 지금은 “백주 한 잔 놓고 1시간쯤 대화하자고 불러주셨으면 좋겠다”며 납작 엎드린다.
 
‘때리면 맞고 밀면 밀린다. 그러나 때가 되면 반격하고 친다. 한신이 괜히 한신인가. 건달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긴 끝에 왕이 되지 않았던가. 유방이 무공으로 황제가 됐나. 무공이라면 어찌 초왕 항우를 당했으랴. 이미 여권 무림의 조짐이 심상찮다. 강호 초출에게 20%의 공격 가산점을 주되, 지역 맹주는 30%의 방어력을 내려놓게 하는 내년 총선 비무 규칙을 마련 중이다. 한번 만들어진 규칙은 다음 비무에도 사용될 것이다. 총선 다음은 대권 비무다. 방어력 30%면 스스로 손발을 묶고 싸우라는 얘기다. 이건 내겐 치명타다.’
 
그는 지존좌는 쫓는 자가 아니라 기다리는 자의 것이라고 믿는다. 대공(大功)이면 득기위(得其位)라, 무공을 닦고 초식을 연마하면 지존좌는 저절로 온다. 물론 고민은 있다. 대표 무공이 없는 것이다. 무공평론가 김형준은 “원순씨하면 딱 떠오르는 한 칼이 없다. 성명절기, 자기류의 무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원순씨는 지금 세 가지 무공에 집중하고 있다.
 
첫째, 미세먼지말살공. 미세먼지를 잡는 자, 천하를 쥔다. 그는 스스로를 ‘미세먼지 야전사령관’으로 부른다. 자신이 본부장을 맡은 미세먼지 재난대책본부를 지난달 출범했다. 미세먼지가 극성인 겨울과 봄철엔 5등급·4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하는 ‘시즌제’도 추진한다. 며칠 전엔 런던을 다녀왔다. 런던의 ‘도심공해세’나 오염원 관리를 배우겠다고 했다. 기자 18명을 대동했다. 자신의 행보를 크게 소문내달라는 뜻이리라.
 
위력은 경천동지다. 청와대와 국회도 움직일 수 있다. 원순씨가 좌충우돌하자 무림 국회는 미세먼지특별법을 비롯해 8개의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제 외교의 승부처이기도 하다. ‘중국 눈치보기’는 현 지존이 점수를 많이 까먹은 지점이다. 원순씨는 중국과의 협력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김원이 정무부시장은 “서울시장은 대선 후보로 상수라서 뭘해도 대선 행보로 읽히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세먼지말살공이야말로 무림의 앞날을 생각하는 고수라면 꼭 익혀야 할 무공”이라며 “차기 지존좌의 승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둘째, 혁신창업공. 다음 지존좌는 경제싸움이다. 그는 “경제 올인”을 선언했다. 바이오와 의술초식이 승부처다. 홍릉에 바이오허브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기재는 모두 의술대학 입학을 꿈꾼다. 덕분에 의술인재는 강호에 차고 넘친다. 학교·병원과 산업·연구를 묶으면 새롭고 강력한 위력의 의료경제무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지방 무림도 끌어들여야 한다. 오송의 바이오단지, 제천의 한방의료 초식과 묶으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가 또 한 축이다. 원순씨는 “양재에 국내 최대 연공단지를 만들 것”이라며 “21세기 대한민국 먹거리가 여기서 나온다”고 했다.
 
그의 경제 무공의 뿌리는 사회적 경제다. 사회적 경제의 대표인 ‘마을 공동체’ 초식은 그의 자랑거리다. 무림인이 행복하려면 재산과 공동체, 연결의 세 가지가 충족돼야 하는데, 마을 공동체야말로 이를 위한 최초·최강의 무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파 무림에선 “꿰어야 보배라는데 바이오·빅데이터 입으론 누가 못하나, 규제부터 풀라”고 날을 세운다. 중앙 무림도 못하는 일을 잔뜩 늘어놓기만 한다는 것이다. “입으로 하는 논검(論劍)은 천하제일, 실전은 삼류무사”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좌파 사회주의 초식’이란 비난도 뼈아프다. 시시비비는 차기 지존비무에서 가려질 것이다.
 
셋째, 광화문광장개조공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권력은 광장에서 나온다. 광장이야말로 힘의 원천인데, 그중 광화문광장이 제일이다. 2021년 5월은 차기 무림지존 비무가 있는 달이다. 그때까진 광장을 뜯어고치는 게 원순씨의 목표다. 벌써 반발이 만만치 않다. 여당 무림의 차기 주자부터 반대한다. 세종대왕상을 옮기고 촛불로 광장을 덮겠다는 발상은 오만의 상징이 됐다. 광장 전문가들은 “이념과 정치를 덜어내고 갈등을 봉합하는 광장이 돼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급함은 금물이다. 왜 꼭 차기 지존비무 일정에 맞춰야 하나. 10년, 20년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원순씨의 생각은 다르다. 광장의 관리자로서 광장의 힘을 사용하는 게 뭐가 나쁜가. 광장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그러니 세월호 천막은 되고, 대한애국당 천막은 안 된다. 그게 한국 무림의 현주소요, 광장의 진리다.
 
도둑에게도 도가 있어야 한다. 장자는 도척의 입을 빌려 큰 도둑이 되려면 다섯 가지 도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첫째 어디에 값진 물건이 있는지 아는 성(聖), 둘째 도둑질할 때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용(勇), 셋째 맨 나중에 나오는 의(義), 넷째 뭘 훔칠지 아는 지(知), 다섯째 도둑질한 물건을 잘 나누는 인(仁)이 그것이다. 원순씨는 어떤가. 과연 큰 도둑이 될만한가. 무림평전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가 한 일은 늘 처음이었다. 지지만큼 반대도 많지만, 결과적으론 실패한 것도 성공한 것도 없었다. 그러니 그의 다음 길? 누가 알겠나. 오직 신만이 알뿐이다. (Only God knows)”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다음은 좌파의 척살자, 황교안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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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