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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No 미사일 추정의 원칙’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이쯤 되면 재판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를 전제로 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연상케 하는 새로운 원칙이 등장한 것 같다. 이른바 ‘No 미사일 추정의 원칙’이라 부르면 어떨까. 미사일로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는 발사체이며, 탄도 미사일로 최종 확정되기 전까지는 단거리 미사일로 호칭하겠다는 군의 태도다. 틀린 말은 아니다. 원래 군사적 평가는 정보 자산을 통한 첩보 수집과 은밀한 분석을 거쳐야 하는 만큼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또 군사 첩보의 세계에선 내가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자체가 적에게는 귀중한 정보가 된다.
 
예컨대 ‘이것은 갈비인가 치킨인가’라는 질문에 ‘북한이 배달한 건 갈비가 아닌 치킨’이라고 공언하는 순간 남한이 가진 군사 정보 자산의 능력 또는 한계가 드러난다. 그러니 굳이 ‘내가 이만큼을 알고 있다’고 노출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번에 군이 보인 신중함은 한치의 약점도 노출하지 않겠다는 정보 마인드가 아닌 것 같다. 그냥 이유를 헤아리기 쉽지 않은 신중함이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탄도 미사일 기술 이용 및 개발 금지)를 위반했다고 규정하는 걸 피하려는 정치적 신중함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면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지난 4일 이른바 ‘불상의 발사체’ 1발을 놓고 군은 단거리 발사체로 부르며 미사일 표현을 피했다. 그러다가 9일 북한이 두 발을 쐈고 그중 1발이 400㎞를 넘어가자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현존 무기 체계 중에서 400㎞를 날아가는 방사포나 포탄은 없다. 미사일이 유일하다. 그러니 군으로선 9일 북한이 420㎞ 거리로 날렸던 발사체를 놓고 미사일이라고 추정하는 것 외에는 내놓을 답이 없었다.
 
이처럼 4일과 9일 북한이 쏜 것을 놓고 달라진 설명을 내놓으면서 군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됐다. 군에 따르면 ‘4일=단거리 발사체’ ‘9일=단거리 미사일’이었다. 그런데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4일과 9일 발사 사진에 따르면 두 발사체의 외양이 똑같다. 군사전문가들은 4일 쏜 것이나, 9일 쏜 것이나 모두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북한이 개량한 신형 미사일일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그러면 군은 똑같은 미사일을 놓곤 처음엔 발사체, 나중엔 미사일이라고 달라진 분석을 내놓은 게 된다. ‘그때그때 달라요’인가.
 
군은 또 북한이 지난 9일 쐈던 단거리 미사일을 놓고 탄도 미사일로 규정하는 데 대단히 신중하다. 9일 미사일은 기존의 전형적인 탄도 미사일과는 달리 독특한 궤적을 보였다는 얘기도 외교안보 부처 주변에서 나온다. 그렇다 한들 9일 쏜 미사일이 순항 미사일이 아니었다면 탄도 기술에 기반한 미사일이라는 점에선 변함이 없다.
 
21년 전 북한이 국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군의 입장이 분명했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은 대포동1호 미사일을 쐈다. 북한은 다음 달 4일 “김일성 장군,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지구상에 전송되고 있다”며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군의 당국자들은 인공위성이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이라고 일축했다. 당시 비상근무 중이던 합참의 한 3성 장군은 “북한의 인공위성 주장은 말장난”이라고 단언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군에 원하는 건 정무적 판단이 아닌 안보적 판단이다. 통일부가 대북 협상과 남북 관계를 전면에 놓고 판단한다면 군은 안보를 최우선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는 게 당연하다. 군이 통일부처럼 행동하려 하면 나중에 군 장성 자리에 통일부 관료를 앉히라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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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