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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누가 ‘용기 있는 검사’ 인가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검사들의 언론 인터뷰가 예사롭지 않다. 진행 중인 수사의 외압을 폭로하기도 한다. 언론 노출에 대한 내부 통제는 허물어졌다. 그들은 지난날의 선배들에게 외압 앞에서 왜 그리 용기가 없었느냐고 묻고 있을지 모른다.
 
오래전 검사의 길에 들어설 때의 다짐은 ‘무서운 검사가 되겠다’ 였다. 청탁이 통하지 않고 물질 공세에도 꿈쩍 않는 검사를 무서워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출근한 지 며칠 만에 흔들렸다. 조경 가게에서 꽃나무 화분 한 점을 훔쳤지만, 부근에 쓰러져 있다가 붙잡힌 사건 때문이었다. 절도 전과가 있어 피해 금액이 적은데도 구속된 청년을 앞에 두고 기록을 훑어보다가, 울컥하며 눈물을 보일 뻔했다. 겨우 신문을 마쳤지만 ‘얼마나 굶주렸으면 그 무거운 걸 훔쳤을까’ 라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렵게 내부 결재를 얻어 기소유예로 풀어주면서 많은 걸 배웠다. 사건에 따라선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연민의 정에 끌려 법 집행이 물러져서도 안 된다는 것까지.
 
사건에 파묻혀 무서운 검사와 따뜻한 검사 사이를 오갔지만, 역시 무서워지기가 더 힘들었다. 선처의 청탁이 인간관계를 바탕에 깔고 들어왔으니까. 무시 못 할 학교 선배가 변호인으로 등장하거나 외부 청탁을 받은 직속 상사가 부탁하는 경우, 청탁을 물리치는 데 엄청난 용단이 필요했다. 인간관계의 단절까지 감당할 용기는, 청탁을 물리치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자를 때 자르면서도, 대인관계가 안 좋다는 말을 듣지 않을 만큼의 줄타기가 필요했다.
 
법의 길 5/15

법의 길 5/15

용기라는 화두(話頭)를 들고 씨름하던 중, 진정한 용기가 뭔지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됐다. 영화 ‘1987’에 소개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었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궤변으로 대학생의 억울한 죽음을 덮고 수사팀의 실수로 끝내려던 경찰에 제동을 거는 건 검사의 몫이었다. 물고문의 뚜렷한 흔적을 못 본 체해달라는 정권 차원의 압력을 뿌리치고 사체부검을 지휘한 것이다. 검사의 용기가 고문치사의 진상을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몇 달 뒤 검찰은 크게 상처를 입었다. 대공수사라인 보호라는 명분에 밀려 고문 가담자를 2명으로 축소하는 걸 묵인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축소의 외압을 과연 누가 거부할 수 있었을까.
 
늘 그렇듯이 외압은 결코 노골적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외환위기 돌파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경우 역시 그랬다. 1998년 S그룹 C회장의 거액 외화 도피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나섰다. 달러 고갈의 주범인 재벌의 외화 빼돌리기를 규명하겠다는 각오로 전력투구한 끝에 증거를 잡았지만, 구속 직전 단계에서 중단됐다. C회장 주도의 외자 10억 달러 유치가 임박했으니 수사를 미뤄달라는 거였다. 기소중지를 해놓고 지방으로 좌천됐으니 멀리서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외자 유치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사건을 묵살시키려는 시도가 소위 옷 로비 사건으로 비화했다. 당시 누가 외자 유치 주장을 묵살하고 구속 강행을 고집할 수 있었을까.
 
수많은 수사외압 앞에서 지난날 선배들이 겪은 고뇌의 무게를 젊은 검사들은 짐작이나 할까.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외압에 시달리면서도 언론의 힘을 빌릴 생각조차 못 했던 건 용기가 부족했던 거냐고. 그리고 내부 고발에 나서기 전에 내부 잘못은 어떻게든 내부에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을 충분히 해 봤는지도 따져보고 싶다.
 
문영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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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