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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박대·욕설·성희롱까지…고달픈 통계청 조사원

박귀순 통계청 서울사무소 고용팀장(왼쪽 셋째)과 조사원들이 사무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통계 조사원은 응답을 받기 위해 문전박대 속에 야근·주말 조사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 통계청]

박귀순 통계청 서울사무소 고용팀장(왼쪽 셋째)과 조사원들이 사무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통계 조사원은 응답을 받기 위해 문전박대 속에 야근·주말 조사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 통계청]

‘지정통계 작성을 위한 조사 또는 확인에 있어 관계 자료 제출을 요구받거나 질문을 받은 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
 
통계법 제26조 3항 내용이다. 이른바 ‘통계에 응답할 의무’다. 하지만 응답률은 2010년 80.6%→2015년 75.4%→2017년 72.5%로 하락세다. 통계청이 고민에 빠진 이유다. 통계 조사 ‘문전박대’ 시대 최전선에 선 통계 조사 요원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통계청은 1984년부터 조사 현장에서 뛰어온 ‘베테랑’ 박귀순(53) 서울사무소 고용팀장을 추천했다. 박 팀장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1인칭 시점에서 기사를 재구성했다.
 
예능 프로그램 ‘한 끼 줍쇼’를 즐겨본다. 연예인이 모르는 집 문을 두드려 밥을 얻어먹으며 평범한 사람과 얘기를 주고받는 구성이 정겨워서다. 나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체감상 5~6년쯤 전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먼저,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조사 요원이 방문했을 때 집을 비운 경우가 많다. 응답자를 만나기 위해 늦게까지 기다리거나, 주말 조사도 불사한다. 만나더라도 “왜 개인 정보를 꼬치꼬치 캐묻냐”고 반응하는 가구가 부쩍 늘었다. 옛날엔 조사를 마치고도 가끔 만나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끼 줍쇼’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집집이 문을 두드려 응답자를 설득시켜야 하는 통계 조사 요원은 ‘문전박대+욕’ 세트를 다반사로 겪는다. 특히 조사원 대부분이 여성이라 겪는 고충이 많다. 속옷 차림 남성이 일단 집으로 들어오라고 할 땐 덜컥 겁부터 난다. 문자 메시지로 “따로 한번 만나자”며 성희롱하는 경우도 있다. 욕? “한 번만 더 찾아오면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이루 말 못한다. 내 일이란 게 칼같이 조사만 하고 빠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번은 조사차 방문했는데 원룸 주인이 마침 이삿짐을 옮기고 있더라. 같이 팔 걷어붙이고 짐 옮기고, 설거지하는 데 손을 보탰다. 어르신이 쓰러질 것 같아서 병원에 데려간 적도 많다. 때론 경조사까지 챙긴다.
 
조사에 불응하는 가구를 설득하기까지 잡는 평균 기간이 ‘6개월’이다. 한 번에 설득하는 건 꿈도 못 꾼다. 무조건 듣는다(경청)→“저라도 같은 심정일 것 같아요”(공감)→“여러모로 바쁘실 텐데 응답하기 쉽지 않겠습니다”(이해) 3단계를 거친 뒤 설득에 들어간다. “비밀을 보장하고 통계 목적 이외엔 사용하지 않는다”고 이성에 호소하는 게 마지막이다.
 
다른 가구로 바꾸면 되지 않냐고? 나라에서 정한 표본이라 다른 가구로 대체할 수가 없다. 가끔 응답자가 “중요한 일인데 제가 하겠다. 답례도 필요 없다”며 적극적으로 응해올 땐 고마움이 밀려온다. 자녀와 함께 빼곡히 작성해 온 가계부를 받아들 때면 ‘아, 이게 살아있는 통계구나’ 싶다.
 
가끔 응답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답례(매달 5만~6만5000원)가 박한 수준으로 느껴진다.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서 답례 수준, 혹은 혜택을 늘렸으면 한다.
 
언젠가 당신에게도 조사 요원이 찾아갈지 모른다. 그때 부디, 제발 조사에 응해달라. 통계는 정부 정책의 ‘출발점’이다. 당신이 내는 세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파악하는 기초작업에 참여해 달라. 자신을 위한 기부라고 생각하면 낫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이 기사는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공기업 이야기를 전하는 [김기환의 나공] 시리즈입니다. 인터넷 (joongang.joins.com)에서 더 많은 콘텐트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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