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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조선 논쟁, ‘오리엔탈리즘 이전 서구의 원조 동양학과 사료의 중요성’

[사진 : 역사학자 유정희]

[사진 : 역사학자 유정희]

- 다음은 ‘고조선 논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유정희(남, 37,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등 저)님이 직접 쓰신 기고문이다. 

지금은 서구가 모든 것의 기준(바로미터)이 되는 서구화의 시대이다. 가령 우리 한국인들조차 미(美)의 기준을 얘기할 때 ‘오드리 햅번’이나 ‘그레이스 켈리’를 얘기하지 한국 연예인을 잘 얘기하진 않는다. 실제로 김희선(배우)이나 이주하(CF모델)는 그 기품이나 단아함이 서구 미인들 못지 않은데도 말이다. 

아무튼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시각에서 동양을 타자화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의 총체를 일컫는다. 19세기 근대제국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동양은 “신비로움으로 포장된 다소 하등한 문명”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본래 ‘서구의 원조 동양학’은 이와는 사뭇 달랐다. 곧, 오리엔탈리즘의 등장 이전, 그러니까 18세기까지 동아시아의 찬란한 문명은 서구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동양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은 서구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존중을 받았다. 

 이 시기 서구의 동양사적 인식은 대부분 중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우리와도 관련이 있는 사료가 남아있다. 바로 ‘쟝 밥티스트 레지(Jean-Baptiste Régis: 1663-1738)’라는 예수회 선교사가 남긴 ‘고조선’의 기원에 대한 사료이다. 

당대 최고 지식인으로 청나라 황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이 프랑스 선교사는 중국어와 고서해독 능력이 매우 뛰어난 학자였다. 그는 당시 조선왕조의 역사를 기술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왕국 고조선’의 기원과 관련하여 <후한서 동이열전(5세기)>, <삼국유사(13세기)>, <신단민사(20세기 초)>의 파편적으로 남겨진 고조선의 기원과 흥망에 대한 기록을 확인시켜주는 소중한 사료(<레지사료> - Regis’s historical records on Old Joseon: RHROJ)를 남겼다. 

이 사료가 정말 귀중한 이유는 <삼국유사>에 실린 고조선이 중국 요(堯)임금 때 기원했다는 내용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유일한 근대이전 서구의 고조선 사료이기 때문이다. 이 사료에 등장하는 고조선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오래되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로 중국의 왕조(夏,商)들이 약해졌을 때, 그들을 위협하는 동북아의 강자로 묘사되고 있다. 마치 수당(隋唐)시기 고구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제국주의가 세계를 지배한 19세기에 역사학이 또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태동되면서 동양의 유구함은 부정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는 20세기 후반까지 그 존재를 철저히 부정당했으며, 하의 뒤를 이은 상(商)나라 역시 20세기 초중반에 가서야 그 실재성을 서구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다. 

우리의 고조선도 같은 운명을 겪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동아시아의 오래된 왕조들이 그 존재가 부정당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성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19세기 이래 중국이 쇠퇴하고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면서 일본은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인식틀을 받아들여 일본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문명을 ‘열등한 문명’으로 규정하면서 일본보다 오래된 문명들의 존재가 부정되었고, 이것이 또다시 일본학자들의 견해를 많이 참조했던 서구학자들의 구미에도 맞아떨어지면서 더욱 확고한 견해가 되었던 것이다. 

최근 중국 하나라의 경우에는 상당수의 서구학자들도 꽤 바뀐 태도를 취해 보다 적극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반해, 우리의 고조선은 아직 오리엔탈리즘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한국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미국인 역사학자 마크 E. 바잉턴(Mark E. Byington, 그는 동아시아학과에서 부여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참고로 커리큘럼 등을 보면 알겠지만 미국의 동아시아학은 대개 중국학 쪽에 비중을 많이 둔다.)은 고조선의 유구성을 부정하는 대표적인 서구학자이다. 

그의 스승으로 유추되는 Michael Puett은 중국 고대 서주사(西周史) 전공자이고, 나머지 그의 논문을 심사한 분들 중 한분은 중국고고학, 다른 한 분은 조선사 전공자로 알려져 있다. 바잉턴은 다른 서구학자들이 주로 그러하듯 동아시아의 고대 사료들의 신실성에 큰 의심을 표시하며 고고학적 자료를 사료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잉턴의 저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는 주로 고고학-중국사료-한국사료 순으로 그 중요성을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그는 책에서 “조선이라는 것이 기원전 2세기 이전 요동 반도 해안에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과연 국가단계의 정치체인가의 문제는 너무나 불명확하다. 게다가 기원전 2세기 초 연나라의 중국인 망명객인 위만에 의해 세워진 국가는 전적으로 토착세력에 의해 등장했다고 보기 대단히 어렵다. 다른 확실한 증거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오늘날 한국 역사에서 ‘고조선’이라고 일컬어지는 국가는 당연히 신중하게 다루어 져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학자가 신중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궁극적으로 고조선의 기원 문제에 있어 결국 사료 자체를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얘기로 귀결될 수도 있는데 이게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또한, 그의 책을 보면 한국 역사학계가 부여가 왜 한국 역사인지에 대해 명확히 대답을 못하고 있다라고 쓴 부분도 언뜻 보인다. 

역사는 사료의 학문이다. 물론 고고학은 고대사 관련 사료의 진위를 검증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역사학자는 사료를 함부로 부정하거나 사료 전체를 버리려 해서는 안된다. 최근 우리 일부 역사학계에서도 <삼국유사>의 고조선 관련 사료 지위를 박탈하려는 움직임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정말 신중히 생각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사료를 버리고 고고학적 증거만을 택한다면 그것을 과연 ‘역사학’이라고 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참고서적
1) 쟝 밥티스트 레지 저(유정희 해제),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아이네아스, 2018. 
2) Mark E. Byington, The Ancient State of Puyo in Northeast Asia: Archaeology and Historical Memory (Cambridge and London: Harvard University Press, 2016), 10.   

박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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