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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화폐개혁인가, 단위변경인가…용어조차 헷갈린 국회 토론회

‘큰 배(중요한 정책)’를 띄울지 말지 논의하는데 정작 ‘선원(정책 당국자)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단상에 오른 ‘손님(토론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용어조차 오락가락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배는 항구를 떠나기 어려워 보였다.
 
5만원권과 1만원권 지폐. [중앙포토]

5만원권과 1만원권 지폐. [중앙포토]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라는 정책 토론회 얘기다.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의 이원욱ㆍ최운열ㆍ심기준 의원과 자유한국당의 박명재ㆍ김종석 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중요한 정책 사안을 놓고 여야 의원들이 모처럼 함께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정책 당국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행이나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아무도 단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조하현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한은이나 기재부 관계자가 발제하고 토론자들은 찬성이나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게 맞았다”며 “아무도 나오지 않아 서운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토론회 막판에 억지로 마이크를 넘겨받은 박운섭 한은 발권국장은 “(리디노미네이션은) 언젠가는 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제각각 다른 용어를 썼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화폐개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화폐단위 변경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존에 쓰던 화폐를 바꿔서 부자들의 금고 속에 있는 현금을 끄집어내려는 것(화폐개혁)인지, 단순히 1000원을 1원(환)으로 바꾸는 식으로 0을 몇 개 떼어내려는 것(화폐 단위 변경)인지 알기 어려웠다. 정책 당국에서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서 생기는 혼란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지하경제의 양성화’라는 목표를 추진할 것인지, 말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토론회를 주최한 이원욱 의원은 환영사를 통해 “리디노미네이션은 지하경제 양성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지하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의 20~25%로 추정되는데 이것을 환산하면 400조~500조원”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 [연합뉴스]

반면 토론회 발제를 맡은 임동춘 국회 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리디노미네이션이 성공하려면 무기명ㆍ무제한으로 돈을 바꿔줘야 한다”며 “이렇게 하면 지하경제 양성화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양오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은 “대원군의 당백전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화폐개혁에 정치적 동기가 들어가면 반드시 실패했다”며 “기술의 발달로 점점 현금 없는 사회로 가고 있는데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공감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은 총재로 재직하던 2004년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했던 박승 전 총재는 “제일 어려웠던 일은 화폐개혁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었다”며 “돈을 바꿔줄 때는 금액과 기간에 관계없이 무제한ㆍ무기한ㆍ무기명으로 바꿔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전 총재는 “지하경제의 양성화로 숨은 자금을 끄집어낸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승 전 한은 총재. [중앙포토]

박승 전 한은 총재. [중앙포토]

임 팀장은 ‘충분한 사전 논의와 국민적 합의’도 강조했다. 그는 “공론화 및 제도 준비기간이 4~5년, 법률 공포 후 최종 완료까지 포함하면 약 1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일한 해외 사례에 대해서도 토론자의 관점에 따라 해석이 엇갈렸다. 터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터키는 2004년 100만 리라를 1리라로 바꾸는 화폐단위 변경을 실시했다. 최근 15년간 주요 20개국(G20)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 유일한 국가다.
 
임 팀장은 “리디노미네이션의 시행 과정 또는 시행 후 각종 거시경제 지표가 안정세를 보이며 금융ㆍ경제적으로 별다른 혼란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일관되고 강력하게 추진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토론자로 나선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의 의견은 180도 달랐다. 그는 “터키는 지금도 하루짜리 초단기 금리가 연 25%에 이르는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라며 “경제가 잘 돌아가는 선진국 가운데 리디노미네이션을 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외국 투자자들의 평가에 예민하고 관심이 많은 나라”라며 “리디노미네이션을 했을 때 이 나라가 왜 이러지 하는 질문을 받는 것이 두렵다”고 전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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