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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시댁'에 남편은 '처가'에 간다…이런 말도 성차별

기자
손민원 사진 손민원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23)
과거 학급 번호의 경우 당연히 남학생부터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학교 문화에 대해 2005년 국가 인권위원회는 여학생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각급 학교에 시정을 요구했다. [뉴스1]

과거 학급 번호의 경우 당연히 남학생부터 시작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학교 문화에 대해 2005년 국가 인권위원회는 여학생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각급 학교에 시정을 요구했다. [뉴스1]

 
반장은 당연히 남학생이었던 때도 있었고, 학급 번호 1번은 당연히 남학생이 차지하는 시절도 있었다.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이러한 학교 문화에 대해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남학생에게만 앞번호를 부여하는 관행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여학생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각급 학교에 시정을 요구했다.
 
그 이후 대부분의 학교가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출석번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50번부터 출석번호를 지정한 학부형이 차별 행위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했다고 한다.
 
또 한편에선 주민등록번호에서 뒷자리 중 첫 번째 숫자를 성별에 따라 부여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1900년대 출생자의 경우 남자에게는 ‘1’이, 여자에게는 ‘2’가 각각 부여되고, 2000년대 출생자에게는 남자 ‘3’, 여자 ‘4’가 부여된다. 남성에게 모두 빠른 번호가 주어지고 있다. 이 또한 남성을 우선시하는 사고의 산물이라 볼 수 있다.
 
“숫자로 남자가 앞인 게 성차별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말 속에는 관계와 권력이 표현된다. 이는 한 번의 호칭으로, 한마디의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소통과 관계가 지속되다 보면 그 사회의 문화로 형성된다.
 
만약 오늘 한국과 일본이 축구 경기를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를 ‘한일전’이라고 말하지 ‘일한전’이라고 하지 않는다. ‘일한전’은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한 단어다. 또 ‘남북 정상회담’이란 말은 당연하게 들리지만 ‘북남 정상회담’은 낯선 용어처럼 들린다. 이렇듯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만들고 문화를 생성한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 경기를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를 '한일전'이라고 하지 '일한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듯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만들고 문화를 생성한다. [중앙포토]

한국과 일본이 축구 경기를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를 '한일전'이라고 하지 '일한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듯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만들고 문화를 생성한다. [중앙포토]

 
혐오 부추기는 차별 언어 
현재 우리 사회는 나와 다른 생물학적 성이냐에 따라, 나와 다른 세대냐에 따라, 나와 다른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 어떤 성별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노골적으로 차별을 넘어 혐오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청소년은 1인 BJ의 자극적이고 차별적인 말을 그대로 습득하고 재미있다고 따라 하고 있다.
 
혐오의 말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 차별 언어는 나와 다른 차이를 이유로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편을 나누고, 다른 편에는 부정적이고 공격적 태도를 드러내게 한다. 차별 언어는 대부분 이 사회의 소수자인 장애인, 여성, 청소년, 난민, 성 소수자를 향한다. 
 
차별 언어는 대립과 갈등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지만, 일단 만들어진 후에는 대립과 갈등을 더 부추기고 혐오까지도 만들어낸다. 혐오 표현은 단순히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을 넘어 나와 타인을 분리하고 배제하며 그 대상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낙인을 찍는다.
 
그럼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혐오의 표현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대표적인 혐오 표현 중 하나가 여성을 비하하는 뜻을 내포한 ‘김치녀’, ‘된장녀’, ‘맘충’, ‘김여사’ 등이다. 이에 맞서 한국 남성에 대한 비하의 용어로 ‘한남충’이 쓰이고 있다. 한국 사회는 가부장제의 유교적 사상이 강하므로 오랜 관습에 따른 남존여비의 잔재가 우리 일상 언어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다.
 
성차별적 호칭을 살펴보면 남편이 다른 사람 앞에서 아내를 지칭할 때 ‘집사람’ ‘안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여성은 주로 집에서 일하는 사람,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결혼하고 나면 남편은 아내의 여동생에겐 ‘처제’, 남동생에겐 ‘처남’이라는 호칭을 쓴다. 같은 논리라면 여성 또한 남편의 여동생에겐 ‘부제’, 남동생에겐 ‘부남’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데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른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설 명절을 맞아 성차별적 호칭을 개선하자며 새로운 표현 7개를 제시했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9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가족 호칭의 성 차별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남성보다 여성이 '성차별적이다'는 인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설 명절을 맞아 성차별적 호칭을 개선하자며 새로운 표현 7개를 제시했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9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504명을 대상으로 가족 호칭의 성 차별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남성보다 여성이 '성차별적이다'는 인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반면에 설날에 아내는 ‘시댁’을 가야 하지만 남편은 ‘처가’에 간다. 남편 가족에게는 존칭을, 아내 가족에게는 하대하는 문화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외할아버지의 호칭도 마찬가지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겐 왜 바깥 외(外)자를 굳이 붙여야 할까?
 
‘남녀 사이’, ‘남존여비’, ‘남남북녀’ 모두 남성이 앞이다. ‘연놈’, ‘어미아비’ 같은 욕설은 왜 그 반대일까. ‘처녀작’, ‘처녀비행’은 어떨까? 여기에서 ‘처녀’의 의미는 여성의 순결성을 강조하는 남성 중심의 문화가 드러나는 차별적인 용어라 할 수 있다. 이 또한 첫 작품과 첫 비행으로 명명할 수 있겠다.
 
이제 직업군에 대한 명칭을 살펴보자. 여성의 직업에는 왜 꼭 ‘여’자가 붙는 것일까? ‘여류화가’, ‘여의사’, ‘여배우’, ‘여군’은 그냥 화가, 의사, 배우, 군인으로, ‘남자 간호사’도 간호사로 불러야 한다.
 
또 장애인을 비하하는 수많은 언어가 존재한다. 장애인을 빗대어 오랫동안 사용돼 온 속담과 관용어도 있다. ‘눈뜬장님’, ‘꿀 먹은 벙어리’, ‘귀머거리 삼 년’ ,‘절름발이 정책’ 등이 그 예다. 실제로 장애인을 비하하려는 의도로 쓰이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 표현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는 것이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벙어리장갑’은 엄지 장갑으로, ‘장애우’는 장애인으로, ‘정신분열’은 조현병으로, ‘정신지체’는 지적장애란 표현으로 사용해야 한다.
 
여성 대다수 일상 속 호칭 변경 원해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립국어원이 ‘일상 속 호칭 개선 방안’에 대해 8000여 건의 국민 의견을 분석한 결과 여성은 대다수가, 남성도 절반 이상이 일상 속 호칭을 바꾸자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숙한 나의 언어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면 내가 하는 일상의 언어부터 스스로 검열해 보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과거 많은 여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은 '순결, 정숙, 배려, 겸손'이었고, 남학생의 급훈은 '단결, 용기, 명예, 열정'이었다. 아직도 많은 학교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규범 안에 급훈이나 교훈, 교가를 규정한다. [뉴스1]

과거 많은 여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은 '순결, 정숙, 배려, 겸손'이었고, 남학생의 급훈은 '단결, 용기, 명예, 열정'이었다. 아직도 많은 학교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규범 안에 급훈이나 교훈, 교가를 규정한다. [뉴스1]

 
과거 많은 여학교의 교훈이나 급훈은 순결, 정숙, 배려, 겸손이었고, 남학생의 급훈은 단결, 용기, 명예, 열정이었다. 학생들은 이 급훈과 교가를 되뇌며 성장하는데, 아직도 많은 학교의 급훈이나 교훈‧교가는  여성성‧남성성의 규범으로 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60년 전통을 지닌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교가를 바꾼 사례를 접하게 되었다. 이 고등학교의 교가 후렴부엔 ‘여자다워라!’라는 가사가 반복되었는데, 이 부분을 학생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지혜로워라’로 바꾸는 과정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내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작은 언어에 질문을 던지고 바꾸어 나간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모든 사람에겐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상대방을 비방하고 존엄을 깎아내리는 표현의 자유까지는 허락되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것은 무엇이든 허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집단에서 잘못을 한 사람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집단을 묶어 ‘○○녀’, ‘○○충’으로 묶어 그 집단 전체를 혐오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차별이나 혐오의 언어는 말하는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듣는 사람에겐 칼 같은 무기가 되고, 또다시 재생산돼 혐오를 공고하게 확산시킨다. ‘○○충’이 많아진다는 것은 결국 배제의 대상이 많아지는 것이라 할 수 있고, 나 또한 혐오의 대상에서 무관하지 않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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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