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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한의 퍼스펙티브] 암 생존자의 열악한 근로 환경, 더 방치해선 안 된다

살 만한 세상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위암 수술 후 통증이 심하고 쉽게 피로감을 느낍니다. 마음도 우울하고 언제부터인가 쉽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오랜 항암 치료로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일을 해야만 하는 집안 사정이라 식당 일을 하고 있어요. 힘들어서 재발할까 무섭지만….”
 
“암 환자가 일한다고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게 힘들었어요. 병 걸린 게 내 잘못이나 약점이 아닌데…. 혹시라도 실수하면 암 때문에 그렇다는 편견도 많고요. 아프니까 편한 일만 할 거라고 오해하며 같은 부서에서 일하기 꺼리는 게 느껴지면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급속한 의료 기술 발달로 암 치료 효과가 개선되고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과거 치료에 몰두하느라 상대적으로 간과했던 환자의 삶의 질이라는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미국 종양학자이자 의학 전문 저술가인 싯다르타 무케르지 컬럼비아대 교수의 말처럼 ‘만병의 황제’로 여겨졌던 암은 오랫동안 죽음과 동의어로 여겨질 만큼 치명적인 불치병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암 진단과 치료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점차 관리하며 살아가는 만성질환으로 변해왔다. 고려대 의대 종양 혈액 내과 이수현 교수는 암 치료의 발전에 대해 “수술, 항암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가 핵심적 치료 방법으로 발전해 왔는데 최근에는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로 암이 전이된 환자를 완치시키기도 하는 등 혁신적 치료법이 끊임없이 개발됐다”고 평가한다.
 
치료법의 발전이 완치 환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손주혁 교수는 “암의 조기 발견과 치료법의 발전으로 암 사망률은 이미 선진국에서 감소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도 곧 감소할 것”이라며 “암으로 사망하지 않는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라고 예측한다. 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환자가 늘어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긍정적인 일이나 과연 우리 사회는 이들의 사회 복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수현 교수는 “증가하는 생존자가 치료와 일상을 병행하며 부딪히는 여러 사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생존자가 경험하는 치료 기간 연장과 관련된 의료비 증가, 직장 복귀, 경제적 안정, 환자와 가족에 대한 사회적 태도 등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필요해졌다.
 
암을 극복한 사람을 암 생존자(cancer survivor)라 부른다. 암의 위협에서 벗어나 살아났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암 생존자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데 암 극복자, 암 경험자 등과 교차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엔 암 치료 후 재발이나 전이 없이 5년 이상 생존한 사람을 통상 임상적으로 완치되었다고 판단하였으나, 점차 의미가 확대돼 현재는 암 진단 직후부터 사용돼 암을 경험한 사람으로 정의된다.
 
전자현미경으로 본 암세포. [중앙포토]

전자현미경으로 본 암세포. [중앙포토]

국립암센터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16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암 환자의 상대 생존율은 암 정복 국가 계획이 수립되기 전인 1993~95년 41.2%에서 2011~15년 70.6%로 급격히 상승했다. 90년대 초반 암 환자가 5년 생존할 확률이 절반이 안 되었던 데 비해 이제는 3분의 2 이상이다.
 
정부는 96년부터 1차와 2차에 걸쳐 국가 차원의 암 정책을 수립하고 암 관리체계를 구축해 왔다. 이를 통해 의학적 예방과 조기 검진, 전문 연구, 치료 기술의 발전이 사망률 감소에 기여했다. 그런데 암 생존자가 증가하며 경험하는 심리·사회적 문제가 증가하며 암 치료에 집중된 노력을 삶의 질을 증진하는 노력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2016년부터 추진한 3차 암 관리 종합계획에서는 기존의 암 예방, 조기 검진, 완화 의료, 연구에 더해 암 생존자 지원까지 확대됐다. 특히 국립암센터는 올해부터 초기 암 치료를 완료한 암 환자와 가족의 건강 관리, 심리 상담을 포함한 암 생존자 통합 지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암은 신체적 통증이나 신체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동시에 심리·사회적 영향을 미친다. 정서적으로 큰 충격이자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의료비로 인한 경제적 문제, 직업 상실, 죽음에의 공포, 관계 단절, 우울감, 무력감, 불안감, 소외감 등 심리·사회적 고통을 경험하므로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완치자의 자립을 위해서는 직업 복귀가 중요하다. 일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자립 생존할 수 있는 수단임과 동시에 한 사람이 사회적 정체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느끼는 통로이기도 하다. 아울러 경제적 안정과 함께 사회에 소속된 통합감과 사회의 일원으로 안전감을 느끼게 한다. 해외에서도 암 생존자의 직장 복귀는 핵심 사안이다.
 
지난달 4일자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 의견 코너에서 미 국립암연구소 로빈 야브로프 연구원 등은 암 생존자와 가족의 직업 유지와 경제적 어려움이 큰 문제임에도 기존 연구에서는 무시됐다며 경제활동 연령대의 암 생존자들이 취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암 생존자의 절반 정도만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해외에 비해 열악한 수준이다.
 
법으로는 암 생존자 직장 복귀를 위한 제도가 마련돼 있으나 직종별로 지원 수준이 다르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공무원은 질병 상 휴직을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으나, 민간 기업의 경우 병가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지 않고 단체협약이나 취업 규칙에 따라 처리해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다.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장 조주희 교수는 국내 암 생존자의 근로 환경이 열악한 이유에 대해 “국내 암 관련 의료 정책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삶의 질에 대한 접근이나 체계적 연구 사업이 부족하다. 암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따라 직장 내 배려나 제도적 지원이 열악하다”고 지적한다.
 
직장 내 지지와 제도 부재는 큰 문제다. 유방암 생존자의 직업 복귀에 대해 연구한 가천대 김정수 박사는 “환자가 치료 후 일을 재개할 때 처음엔 불안과 위축감을 느끼지만, 가족이나 직장 상사·동료의 이해와 지지, 사내 근로 복지제도가 있으면 비교적 쉽게 일터에 적응해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고 분석한다.삼성서울병원 송효석 수석사회복지사는 “암 환자를 위한 정서적 지지와 직업 복귀를 위해 먼저 암을 경험한 암 생존자의 경험을 활용한 멘토링 프로그램이 효과적이었다”며 “암 진단 직후 멘토링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제도화하고 바우처 프로그램과 연계해 퍼진다면 멘토 생존자의 삶의 질도 향상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많은 의료기관에서 유사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모두 민간 차원의 자원봉사라는 한계가 있다.
 
암 치료의 최종 목적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손주혁 교수는 “암 생존자들이 치료 후 가정과 사회로 돌아가 각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유익할 것”이라며 정부와 의료계 차원의 체계적 프로그램을 주문했다. 충북대 의대 박종혁 교수가 말한 “제자리로 돌아가기, 가정으로·직장으로·사회로”라는 모토는 핵심을 담고 있다.
 
기대수명까지 산다면 국민 3분의 1이 암에 걸릴 위험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암 유병자가 174만 명이므로 국민 29명 중 1명, 특히 노인 인구에서는 9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 고령화 속 암 환자가 늘고 치료 기술이 발전하면 암 생존자는 더 늘어난다. 그들의 가족과 친지·동료로서 영향을 받는 범위는 우리 모두를 포함한다. 암 생존은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암 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역시 스스로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다.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암을 경험하는 생존자들이다. 언제 경험하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빌뉴스의대 객원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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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