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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빈 곳’이 된 나의 아버지

기자
김명희 사진 김명희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11)
요즘 겨우내 묵혔던 밭고랑에 각종 모종을 심는 계절이다. 나도 예전에는 마당 가에 고구마와 다양한 푸성귀들을 심어 먹곤 했다. 사진은 전북 고창의 산비탈에서 농민들이 고구마 모종을 심고 있는 모습.[중앙포토]

요즘 겨우내 묵혔던 밭고랑에 각종 모종을 심는 계절이다. 나도 예전에는 마당 가에 고구마와 다양한 푸성귀들을 심어 먹곤 했다. 사진은 전북 고창의 산비탈에서 농민들이 고구마 모종을 심고 있는 모습.[중앙포토]

 
요즘 겨우내 묵혔던 밭고랑에 각종 모종을 심는 계절이다. 나도 예전에는 마당 가에 고구마와 다양한 푸성귀들을 꼭 심어 먹곤 했다. 오래전 어느 봄날 텃밭에 정갈하게 비닐을 덮고 고구마 순을 줄지어 심는데 갑자기 환청이 들려왔다.
'이렇게 비스듬히 뉘어서 심거라. 이 만큼씩 간격을 두어야 고구마가 실하다···.'
 
내 귓가에 들려온 것은 아버지 음성이었다. 그때 나와 작은 오빠는 봄이면 아버지가 직접 길러주신 고구마 싹을 받아서 밭에 심었다. 아버지가 주신 고구마 모종을 심는 날에는 오래 앓으셨던 아버지 기침 소리까지 함께 심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더는 고구마 순을 키워 자식들에게 나눠주지 못하셨다. 그 이듬해 정월 폭설이 내린 날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한 해 전 생신날이 떠오른다. 육신의 병이 오래되어 정신까지 포악해진 아버지는 작은아들 가슴에 대못을 박으셨다. 자식 걱정하신 뜻은 좋았지만 심한 욕이 문제였다. 우리는 아버지 성정을 잘 알아서 독한 욕을 하셔도 본심은 아니겠지 하며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그러나 아버지와 성격이 비슷했던 작은 오빠는 이해 못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여파로 며칠 후 아버지 생신에 작은 오빠 식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아버지는 아침 생신상을 받고 작은아들이 오길 온종일 기다리며 미역국에 손도 대지 않으셨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생신 몇일 전 작은아들 가슴에 대못을 박으셨다. 그 여파로 작은 오빠네 식구는 생신 때 나타나지 않았고, 그날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오길 기다리며 미역국에 손도 대지 않으셨다. [중앙포토]

아버지는 생신 몇일 전 작은아들 가슴에 대못을 박으셨다. 그 여파로 작은 오빠네 식구는 생신 때 나타나지 않았고, 그날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오길 기다리며 미역국에 손도 대지 않으셨다. [중앙포토]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아버지 생신상이었다. 그날 각자의 사정으로 자식들 사남매 중 셋은 오지 못했다. 생신 미역국조차 한술도 뜨지 않으시고 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셨던 나의 아버지···. 막내인 나 혼자 당신의 쓸쓸한 생신상 앞에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내 아버지도, 생신에 오지 못한 작은 오빠도 참 안타까웠다. 그토록 야단쳐서 보내놓고도 생신상 앞에서 작은아들이 오기를 기다리시며 끝내 생신 미역국을 차게 식혀버렸던 나의 가여운 아버지.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다 지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 글을 쓰는데 저 멀리 붉은 서녘 노을이 물들어 온다. 도심 골목까지 물든 노을이 고구마 순처럼 선홍빛이다. 그토록 평생을 아프셨던 나의 아버지가 저 하늘나라에서는 건강을 되찾으신 것일까? 하늘 구름 저 너머에서 나의 아버지가 오랜만에 가족들 먹이려고 고구마 모종을 넉넉히 심고 계시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 고구마 심을 때엔 이만큼씩 간격을 두고 비스듬히 뉘어서 심는 것 잊으신 것 아니지요···? 막내딸이 아버지 많이 사랑합니다.”
구름 속 어딘가에 땀 흘려 일할 것 같은 나의 아버지를 향해 살갑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 날이다.
 
가정의 달 오월이다. 나는 며칠 전 남편과 함께 양가 어머니를 모시고 충남 서천 쪽 바다를 한 바퀴 돌고 왔다. 그날 아버지 생각 참 많이 들었다. 생전엔 몸이 너무 아프셨기에 그토록 모질고 고약하기도 하셨던 나의 아버지. 그러나 그 마음마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생 자식들에게 모든 것 다 내어주신 우리의 부모님들. 그러나 자식에게 아주 조금만 받아도 행복해하시고 고맙다시며 언제나 과분해 하시는 부모님들을 보면 참 감사하고 마음이 짠해진다. 양가 노모께 잘하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살아계시는 날 동안 단 하루라도 더 웃게 해드려야겠다고 나 스스로 다짐해 본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빈 곳
-저세상으로 떠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몇 개 뭉툭한 위로와 사무용 슬픔들이 첨부된 후,
그의 이름은 곧바로 삭제되었고
동사무소 직원의 손에서 내게 넘어온 서류는 헐렁하다
 
한 사람 몫의 이승이 지워진 서류를 들고서 2月의 거리로 나선다
음력의 추억들은 겨울바람처럼 흔들리기 시작하고
쉽사리 높낮이가 변하는 그래프처럼 온통 혼란스럽다
 
아버지는 더 이상,
구름을 몰고 다니거나 위급한 근심들을 안겨주지 못할 것이다
주인을 잃은 슬픔들은
기억 한켠에 그늘 한두개쯤 더 장만하게 될 것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그의 집에 전화를 건다
순간, 날카로운 모서리에 찔리듯 화들짝 깨어나는 기억
아버지는 없다
 
밤마다 위급함을 이끌고 중환자실을 통과하던 사연들과
눈물을 빌리러 그의 머리맡을 찾곤 했던 내 오랜 습관들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
 
아, 되돌릴 수 없는 먹구름들
오늘 이후 나는
되돌아올 것들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한다
어떤 후회나 쓸쓸함은 모두 빈 곳이 되었다
 
세상의 뒷면이 된 아버지는 깊은 산속에 심어졌고
이승의 휴일엔, 챙겨야 할 방문지가 하나 더 늘었다
이제 내안의 금요일쯤엔 폭설이 세상을 잠글 것이고
빈 곳은 한동안 고체처럼 단단해질 것이다
 
김명희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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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