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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에 명주 섞고 저고리 빼고…한복 일상화 열정 한눈에

디자이너 이영희가 1993년부터 12년간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서 선보인 시그니처 의상 중 하나인 ‘바람의 옷’ 시리즈. 한복이 민속의상을 넘어 세계인에게 어필하는 옷으로 만들기 위해 치마에 이브닝 드레스 개념을 담았다. [신인섭 기자]

디자이너 이영희가 1993년부터 12년간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서 선보인 시그니처 의상 중 하나인 ‘바람의 옷’ 시리즈. 한복이 민속의상을 넘어 세계인에게 어필하는 옷으로 만들기 위해 치마에 이브닝 드레스 개념을 담았다. [신인섭 기자]

“솔직히 어머니를 위한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처음엔 했었죠. 그런데 정리를 하면 할수록, 이 옷들이 개인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한복을 누구나, 어디서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어머님의 뜻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여기가 제자리인 것 같아요.”
 
국립대구박물관 전시실에서 의상을 설명하는 이정우 메종드이영희 대표.

국립대구박물관 전시실에서 의상을 설명하는 이정우 메종드이영희 대표.

9일 오후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을 야무지게 둘러보던 디자이너 이정우(62) 메종드이영희 대표의 표정은 시원섭섭해보였다. 대한민국 대표 디자이너 이영희(1936~2018) 선생의 1주기 기념전 ‘이영희 기증복식, 새바람’(5월 18일~9월 15일)을 한 주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위해 찾은 자리였다. 지난해 가을 이곳에 기증한 8377점 중 전문 학예사들이 고르고 추려낸 500여 점의 작품이 전시실 1관과 2관을 이미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반투명 노방, 모시 대례복 등 눈길
 
서울 신사동 매장도 고스란히 옮겨다 놓았다. 액세서리와 각종 소품도 볼 수 있다.

서울 신사동 매장도 고스란히 옮겨다 놓았다. 액세서리와 각종 소품도 볼 수 있다.

선생의 작품이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은 여러가지가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국립대구박물관이 복식특성화박물관으로 거듭나고 있었고, 선생의 고향이 대구인데다, 전시를 위한 한복을 대여하기 위해 서울의 메종드이영희를 찾았던 박물관 학예사들과의 만남이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첫 기일(5월 17일)을 맞아 첫 회고전을 열겠다는 계획에 따라 직원들이 수장고에 있던 옷들을 깨끗하게 빨고 정성스레 다림질해놓으면, 학예사들이 꼼꼼하게 포장을 하고 박물관으로 옮겨와 분류 및 훈증 등의 보존처리를 마무리 짓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황금자수 장식을 한 모시 대례복.

황금자수 장식을 한 모시 대례복.

전시장으로 들어가 아카이브를 지나면 연분홍 노방(오간자)으로 지은 여성용 한복과 황금빛 자수로 장식된 모시 대례복이 우선 시선을 붙든다. 옷감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선생은 한복의 형태가 잘 살아나는 반투명 노방으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냈고, 모시에 명주를 섞거나 대나무 껍질을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 옷감처럼 사용하는 등의 과감한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부로 살던 어머니가 일을 시작한 게 마흔 살 때인 1976년이었어요. 노방으로 만든 제 약혼복을 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주문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옷을 만들게 되셨죠. 이렇게 예쁘고 좋은 우리 한복을 어떻게 하면 널리 알리고 입힐까 하는 생각밖에 없는 분이셨어요.”
 
그 맞은 편에는 어깨와 쇄골을 드러낸 검정 마네킹들이 형형색색 기다란 치마를 입고 있다. 선생의 시그니처 의상인 ‘바람의 옷’ 시리즈다.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1993년부터 12년간 파리에 진출해 프레타 포르테를 놀라게 한 대표작 중 하나다. “한국의 민속 의상이 세계인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저고리는 빼고 치마만 이브닝 드레스의 개념으로 만든 것이죠. 실도 하나하나 염색을 해서 세상에 유일한 색을 만들어 냈습니다. 어머니에게 매번 새로운 옷을 선보여야 하는 패션쇼는 발전의 원동력이었어요. 마치 시험이 있어야 공부하는 것처럼.”
 
초기의 개량 한복들.

초기의 개량 한복들.

개량 한복을 입은 마네킹 앞에서 이 대표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82년 신라호텔에서 전시회를 처음 했는데, 저는 이때가 파리 쇼 때보다 더 떨렸어요. 전통 한복과 다른 옷을 처음 시도한 자리였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는 이때 이미 한복으로 파리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꾸고 계셨더라고요. 비록 한국에서는 ‘한복쟁이’ 정도로 평가받았지만, 돌아가신 석주선 박사님 같은 분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죠.”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감사패 전달
 
디자이너 이영희. 2018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디자이너 이영희. 2018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은 세계를 향한 꿈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전시실 2관에서는 86아시안 게임 홍보용 의상과 88올림픽 전야제에서 미스코리아들이 입었던 각국 의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참가국 국기를 하나씩 보며 디자인을 하는데, 문양을 해체하고 포인트만 집어넣는 모습을 보며 저도 큰 공부가 되었어요.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배우 이하늬가 입고 나와 춘앵무를 춘 이 옷은 결국 어머니의 유작이 됐네요. 당시 병상에서 이하늬씨에게 전화와 문자로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옷을 입어야 하는지 알려준 것이 SNS에서 화제가 됐죠.”
 
이밖에 어린이들만 입던 색동저고리를 어른들도 입을 수 있도록 색 배합을 새로 하고, 현란한 원색과 회색 같은 무채색의 조화를 꾀하는가 하면, 옷감 하나라도 아끼기 위해 만든 조각보를 현대적으로 응용한 작품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이 대표는 “한복이 일상의 문화로 자리잡는 분위기가 뿌리를 내렸으면 한다”고 소회를 말했다.
 
이날 박물관에서는 기증에 대한 감사패 전달식도 열렸다. 함순섭 국립대구박물관장은 “복식 연구자들은 실물을 보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복식연구센터를 새로 건립해 전시를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박물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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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