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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암묵지' 체득하는 숯쟁이, 그런 고수가 필요하다

기자
윤경재 사진 윤경재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34)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잉걸불
어머니 자궁 같은 황토 아궁이에서
불의 신 아그니는
꽃불 같은 마음을 숯쟁이에게 들켰으니
 
두 얼굴 세 다리 일곱 팔의 신도
가끔은 벗이 그리워 비밀을 흘린다
 
숱한 실수와 실패의 화상을 몸에 새긴 채
참나무 등걸을 거꾸로 세우고
숯가마 정수리에 이글이글 불 지피면
주황빛 잉걸불이 수줍은 듯 익어
조그만 숨구멍 사이로 숨죽인 혀 속삭인다
 
한번 크게 죽었던 검탄 백탄
누군가의 숯 가슴에서 활활발발 타오를 뿐
 
해설
잉걸불은 ‘활짝 피어 이글이글한 숯불’ 또는 ‘다 타지 않은 장작불’이란 뜻의 우리말이다. 숯을 만드는 숯가마에 가면 잉걸불이 얼마나 황홀한 느낌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나는 가끔 몸과 마음이 냉랭하고 온기가 필요해지면 천연 숯가마에 가서 온몸과 마음을 지진다. 어머니 자궁 같은 숯가마에 들어앉아 원적외선을 쬐면 몸속 깊은 데서부터 열기가 생겨 살아있는 느낌을 받고 돌아온다.
 
불꽃의 색깔은 온도와 연소하는 물질에 따라 달라진다. 나무를 태울 때 불꽃이 암적색이면 700도, 적색은 850도, 주황색이면 1100도쯤이란다. 나무를 태워서는 더 높은 온도를 내기 어렵다. 가스버너는 더 높은 온도를 내 푸른색을 띠게 된다.
 
숯은 참나무, 소나무나 대나무 등 재질이 단단한 목재를 밀폐된 숯가마에 넣어 불완전 연소를 시켜 만든다. 사진은 참숯을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숯은 참나무, 소나무나 대나무 등 재질이 단단한 목재를 밀폐된 숯가마에 넣어 불완전 연소를 시켜 만든다. 사진은 참숯을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숯은 참나무, 소나무나 대나무 등 재질이 단단한 목재를 밀폐된 숯가마에 넣어 불완전 연소를 시켜 만든다. 나무 재질이 무르면 다 연소하여 재가 된다. 재래식 숯가마는 맨 위에 불을 지피는 아궁이가 있다. 아랫부분의 돔처럼 둥글고 넓은 공간에다 참나무 밑둥치를 세워 차곡차곡 쌓아 넣는다. 그리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불이 붙으면 황토를 개어 막아 산소 공급을 차단한다.
 
그러면 열기가 아래로 내려가 단단한 참나무를 고온으로 익히듯 해 목재의 휘발성 물질이나 회분을 태워버리면 순수한 탄소만 남게 된다. 일주일에서 열흘가량 걸린다고 한다. 이때 아래쪽 숨구멍을 보면서 불꽃을 조절하는 게 일류 기술이란다.
 
숯에는 검탄과 백탄 두 종류가 있다. 다 탄 숯가마에 구멍을 내고 공기를 공급해 숯가마 안에서 빨리 식힌 숯이 검탄이다. 얼른 빼내어 검은 모래로 덮고 서서히 식힌 숯을 백탄이라 한다. 백탄은 휘발성 물질이 적은 순수한 탄소 덩어리로 연소할 때 냄새도 없고 화력이 높은 연료이다. 1000도 이상의 높은 화력을 내어 활자주물에 사용되었다. 오래 태웠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어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다.
 
아궁이, 산스크리스트어 ‘아그니’에서 유래
싸구려 성형탄이나 수입 목탄은 잡목을 섞어 만들어 태울 때 연기나 해로운 화학물질이 나와 음식점에서 사용하면 좋지 않다. 양심적인 음식점에서는 비싸도 백탄을 사용한다고 하니 꼭 물어보자.
 
불을 지피는 아궁이는 ‘불의 신’이란 뜻인 산스크리트어 아그니(Agni)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데 뜻과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 인도에서 아그니 신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좋은 신으로 추앙된다. 지혜를 관장하고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
 
아궁이는 '불의 신'이란 뜻인 산스크리트어 아그니(Agni)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데 뜻과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 [사진 위키피디아(퍼블릭 도메인)]

아궁이는 '불의 신'이란 뜻인 산스크리트어 아그니(Agni)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데 뜻과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 [사진 위키피디아(퍼블릭 도메인)]

 
두 개의 얼굴, 세 다리, 일곱 개의 팔(또는 혀)을 가졌다고 한다. 두 얼굴은 지혜와 인간의 친구이면서 또 세상을 파멸시키는 힘을 지닌 존재의 양면성을 의미한다. 세 다리는 불과 번개와 태양을 상징한다. 일곱 개의 팔은 불을 이용하는 지혜를 뜻한다.
 
숯쟁이가 좋은 숯을 굽기 위해선 숯가마와 아궁이를 요령껏 설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아래쪽에 낸 불구멍, 즉 숨구멍을 조절하는 세심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오로지 불꽃의 색깔로 온도를 직감해 공기구멍을 여닫는 게 중요하다.
 
인간의 지식은 텍스트나 글로 전할 수 있는 것과 문자화하기 어려운 게 있다. 교과서나 설계도에 기록되어 전달할 수 있는 지식을 형식지(explicit knowledge), 개인의 몸에 체득된 지식을 암묵지(tacit knowledge)라고 부른다. 암묵지는 마치 수영이나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한번 익히면 몸이 평생 기억하는 것과 같은 지식이다. 암묵지는 말이나 글로 전하기보다 직접 체험하고 깨달아야 더 명확해진다.
 
산업 발전에서도 암묵지가 중요하다. 형식지는 돈을 주고 사 올 수 있다. 설계도를 사와 그대로 공장을 지을 수 있으나 기본 설계도를 작성하고 공장을 운영하는 세세한 기술은 직접 체험한 몇몇 고등기술자, 즉 고수가 아니면 이뤄내기 어렵다.
 
우리나라 초고층 빌딩만 해도 건축설계, 기초 토목설계, 풍동설계, 건축구조설계 등은 모두 외국 회사에서 설계도면을 사와 짓는다고 한다. 순수 우리 기술은 건축을 시공하는 데만 사용된단다. 그럼 그런 빌딩은 누가 지은 셈인가. 건축에 들어간 자재만 해도 설계사가 지정한 물품을 사용해야 하니 아무리 큰 건축물을 지어도 우리에게 떨어지는 수익은 적기 마련이다.
 
2009년 준공당시 세계 4번째로 긴 인천대교 모습. 인천대교와 영종대교를 짓는데 바다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계산해 '개념설계' 하는 역량이 부족해 기본 설계도는 일본회사에 맡겨야 했다. [중앙포토]

2009년 준공당시 세계 4번째로 긴 인천대교 모습. 인천대교와 영종대교를 짓는데 바다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계산해 '개념설계' 하는 역량이 부족해 기본 설계도는 일본회사에 맡겨야 했다. [중앙포토]

 
인천대교와 영종대교를 짓는데 바다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계산해 ‘개념설계’ 하는 역량이 부족해 기본 설계도는 일본회사에 맡겨야 했다. 반도체도 그렇다. 메모리 반도체 설계와 제조 능력은 우리나라가 앞서가나 비메모리 반도체는 설계능력과 제조능력이 한참 떨어진다.
 
게다가 메모리 반도체도 공정에 들어가는 도구와 장비는 거의 일본과 유럽에서 수입해 쓴다. 메모리 반도체 수출액의 상당액이 이들에게 지출되니 빛 좋은 개살구 역할을 할 뿐이다. 얼른 비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개념 설계’ 잘하는 숨은 고수 키워야
옛날 숯쟁이가 몸으로 체득한 암묵지를 개발해 질 좋은 숯을 생산하고, 인류 최초로 금속활자를 주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듯이 암묵지를 지닌 재야의 고수를 많이 키워야 우리 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다. 비단 산업뿐만이 아니라 연예, 방송, 법조, 금융, 문화, 철학에서도 암묵지를 이용해 ‘개념설계’를 조성할 수 있는 다방면의 숨은 고수를 키워야 한다.
 
숨은 고수는 숱한 실패와 좌절을 체험해야 비로소 생긴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만들 때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적어도 실패한 원인을 안 것만큼은 큰 소득이라고 말한 것처럼 개념설계는 실패와 좌절을 먹고 자란다. 에디슨의 그런 능력을 ‘축적의 힘’이라고 부른다. 고수는 결과를 재촉하거나 간섭하고, 자유를 제한하거나 사회가 불안정하면 생겨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들을 홀대하거나 작은 잘못을 처벌하면 고수는 절대 키울 수 없다.
 
선진국처럼 고수가 대접받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려면 정치가의 긴 안목과 인내심이 청렴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을 키워주고 그 능력이 발휘되도록 기다려주며, 실패해도 재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사회에 온기가 골고루 퍼지게 만드는 아궁이 역할을 해야 한다.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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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