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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시선] 文 만난 이홍구 "사면초가 아는 듯한 표정"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해 강하게 얘기했다. ‘하시는 일이 정의롭긴 한데 성과 없는 건 바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정권에 치명타가 됩니다’라고 말이다. 한데 대통령은 말이 없더라. 그러다 막판에 ‘최저임금, 주 52시간 노동으로 사회적 갈등이 있겠지만, 더 큰 틀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야 한다’고 잘라 말하더라. ‘내 갈 길 가겠다’는 거라는 감이 확 왔다.”
 

청와대 간 원로들 “문, 넘사벽”
‘마이웨이’ 확고 … 표정은 걱정
총선 우려 큰 듯 … 노선 바꿀 때

문 정부에 우호적인 지식인으로 분류돼온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 지난 2일 문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원로와의 대화’에 참석한 소회를 묻자 고개를 흔들었다. “대통령이 예의로라도 ‘잘 들었다’고 하면 될 텐데 ‘아니다’라며 딱 끊어버리더라. 뭐하러 불렀나 했다. 집권 2주년 맞아 경청 시늉만 한 것 아닌지 싶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은 “한·일관계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 반응은 “일본이 위안부·징용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송호근은 “놀랐다. 위안부·징용은 거꾸로 이쪽(문재인 정부)에서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유체이탈 화법이 있냐”고 반문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도 “한·일관계에 한마디로 대책이 없더라”고 탄식했다. “‘정치적 이용’ 같은 얘기를 할수록 우리 입장만 불리해지는데 대통령이 그런 인식은 없고 한·일 갈등을 풀 정상회담 얘기도 안 해 걱정이 컸다.”
 
송호근의 분석이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정치인으로 진화하면서 ‘일본이 잘못하고 있으니 정의로 바로잡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 것 같다. 정치 지도자가 가질 신념은 아닌데 이게 드러나면 우리 외교가 굉장히 곤란해질 거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 한솥밥을 먹은 김우식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도 아픈 소리를 들었다. ‘신앙’인 탈원전에 김우식이 레드카드를 꺼낸 것이다. “원자력 연구가 정말 중요한데 애써 길러놓은 학자들 다 외국에 가버렸다. 탈원전은 대단한 실패”란 직격탄이었다. 이홍구 전 총리는 "정확하고 신랄한 일갈이었다”고 평했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이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적폐청산 피로증이 심하다”고 진언했다가 “살아 움직이는 (적폐) 수사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 반박에 가로막혔다. 그에게 물어봤다.
 
문 대통령이 원로들 얘기를 듣고 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있을까.
“대통령을 만나보니 고지식한 면이 있는 분 같더라. 그러면 대개 고집이 세다. 웬만해선 생각을 잘 안 바꿀 것 같다.”
 
그래도 집권 3년 차에 총선도 다가오니 다소 우클릭을 시도할지 모르지 않나.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뒤 가장 역점을 둔 게 남북관계와 소득주도성장인데 후자는 이미 망가졌고, 남북관계만 남았다. 남북관계는 남남갈등 관리가 필수인데 문 대통령은 지난해 4·27 판문점 회담 만찬에 야당은 물론 국회의장단조차 초청하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우클릭 가능성은 별로 없다. 국회마저 배제하고 홀로 가겠다는 뜻인데 이러면 남북관계는 표류하고 남남갈등만 심해진다. 탄핵당한 자유한국당이 2년 만에 원기를 회복한 것도 대통령이 원인을 제공한 탓이다.”
 
문 대통령이 원로들을 만난 건 잘한 일이다. 원로들도 그냥 대통령을 만나는 게 아니다. 지난달 2일 청와대를 찾은 경제 원로들은 A4 용지 5~6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진언할 내용을 적어왔다. 정운찬 전 총리는 “다들 무지하게 준비해왔다. 2장 들고 온 내가 가장 적었을 정도였다. 진보 성향인 강철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조차 문 정부 정책에 D학점을 준다면서 초당파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 반응은 ‘도움이 됐습니다’가 거의 전부였다”고 했다. 이러니 원로 가운데 문 대통령이 자신의 진언을 받아들여 정책을 바꿔가리라고 기대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이홍구 전 총리는 “당파성 없는 원로들이 자꾸 지적하니까 좀 듣는 것은 있는 듯했다”며 힘을 실어줬다. 청와대가 그의 진언만큼은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문 대통령을 만나보니까, 표정이 걱정스럽더라. 대화 도중 애써 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본인 상황이 ‘사면초가’ 같이 돼가고 있다는 걸 의식하는 것 같았다. 당장 외교적 고립이 가장 위험한 듯하다. 지금 식으로 가선 내년 총선 돌파가 간단하지 못하리란 것도 알고 있는 듯했다. 다행히 새 청와대 비서진이 전임자들보다는 나은 듯하니 이들과 함께 국정 기조를 바꿔가기 바란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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