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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을 선점하라, 미·중 ‘신 냉전’

남극점에 위치한 미국의 아문센 스콧기지의 야경. 남극 밤하늘에 오로라가 펼쳐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남극점에 위치한 미국의 아문센 스콧기지의 야경. 남극 밤하늘에 오로라가 펼쳐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구의 끝에서 신냉전이 벌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새로운 ‘냉전(冷戰·cold war)’이다. 영하 30~50도의 영구동토 남극대륙 위에서 중국과 미국 등 세계열강들이 과학기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홍콩의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과 미국이 남극 최고봉에서 벌이고 있는 힘겨루기’라는 제목으로 남극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의 사례를 소개했다.
 
남극에는 해발 고도가 4093m에 이르는 남극 최고(最高)의 산이 있다. ‘돔 아르구스’라는 이름의 이 산은 남극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남위 80도·동경 77도에 걸쳐있다. 중국은 2009년 이 돔 아르구스에 쿤룬(崑崙)기지를 세웠다. 천체를 관측하고 별똥별을 관찰할 수 있는 전파 망원경 등을 갖춘 하계 과학기지다. 여름에만 연구원들이 있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는 돔 아르구스 일대를 ‘남극특별관리구역’(ASMA)으로 지정하려고 몇 년째 시도해왔지만, 다른 나라의 지지와 후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남극특별관리구역이란 남극조약에 따라 해당 구역 안에서 남극활동을 조율하고, 중복이나 충돌보다는 협력을 진작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정된다. 아무래도 처음 제안한 국가가 가장 적극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중국, 남극서 과학기지 경쟁 노골적
 
남극대륙 최고봉 돔 아르구수 정상에 중국의 오성홍기가 꽂혀있다. 중국은 이곳에 쿤룬기지를 두고 있다. [신화사=연합뉴스]

남극대륙 최고봉 돔 아르구수 정상에 중국의 오성홍기가 꽂혀있다. 중국은 이곳에 쿤룬기지를 두고 있다. [신화사=연합뉴스]

문제는 최근 미국이 쿤룬기지에서 약 100㎞ 떨어진 지점에 임시 과학기지를 건립하면서 발생했다. 중국은 쿤룬기지 인근에 미국이 자국 기지를 건립한 것에 대해 중국의 ASMA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시도로 보고 있다. 더군다나 중국은 미국 기지가 미 국방성의 후원을 받아 추진됐다고 보고 있다. 남극에서 가장 고도가 높고 추운 곳에 과학기지를 운영하며 관리구역으로 지정하고 싶었던 중국의 입장에서 속이 쓰린 일이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쿤룬기지의 명분을 ‘과학 연구와 환경 보호’라고 표현했지만, 최근 들어 남극대륙의 기지 경쟁에 가장 노골적인 나라가 중국이라는 게 세계적 평가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지난달 ‘남극 전역에 걸친 중국의 진출이 국가 단위 팽창주의의 두려움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뉴질랜드 헤럴드도 같은 달 ‘냉전: 남극, 미국·중국의 새로운 전쟁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돔 아르구스를 둘러싼 양국의 기지 경쟁 등을 보도했다. 중국은 이미 창청(長城)기지와 중산기지 두 곳의 상설기지, 그리고 쿤룬기지와 타이산(泰山)기지 등 두 곳의 하계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또 오는 2022년을 목표로 5번째 기지를 건설 중이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5차월동대(2017년 10월~2018년 10월) 대장으로 장보고기지에서 1년을 보내고 온 유규철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내가 있을 때도 중국 쇄빙연구선 설룡호 선원들과 중국 고위관료들이 기지를 찾아온 적이 있다”며 “장보고기지와 이탈리아 기지 가까운 곳에 다섯 번째 남극과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사전 조사차 방문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한국도 내륙 향한 코리안루트 개척 중
 
극지연구소 ‘K-루트 사업단’이 독자적인 남극 내륙진출로를 탐사하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극지연구소 ‘K-루트 사업단’이 독자적인 남극 내륙진출로를 탐사하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남극에는 1년 내내 운영되고 있는 상설기지와, 여름 한 철만 운영되는 하계기지 등 세계 29 개 국의 80개가 넘는 기지가 들어서 있다. 남극권에 처음 상설기지가 세워진 것은 남극탐험 초기인 1903년이다. 스코틀랜드 남극 탐험대가 기상학 기지를 세우려는 목적으로 남극 내륙으로 들어갔지만, 땅을 찾지 못하고, 사우스오크니 제도에 오몬드하우스라는 이름의 기지를 건설하게 됐다.
 
한국도 1988년 처음으로 남극반도 끝자락의 킹 조지 섬에 세종과학기지를 세웠다. 2014년에는 남극 대륙 본토의 테라노바 만에 두 번째 기지인 장보고 과학기지를 건설했다. 극지연구소는 두 기지에 매년 34명의 월동대원을 보내고 있으며, 하계연구원을 포함, 연간 최대 220여 명이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극지연구소는 또 ‘K-루트 사업단’을 만들어 2020년을 1차 목표 시점으로 독자적인 남극 내륙 진출로인 코리안루트 확보에 나서고 있다. 코리안루트는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남극점까지 이르는 길을 말한다. 직선거리는 1700㎞, 총 육상주행 거리는 3000㎞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이지영 극지연구소 홍보팀장은 “남극의 심부빙하 등 과학적 가치가 높은 대상을 연구하려면 내륙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며 “코리안루트를 개척한 뒤 세계 여섯 번째 내륙기지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 천연자원 보고 남극에 눈독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남극대륙의 크기는 1400만㎢로, 중국과 인도를 합한 넓이와 같다. 아시아·아프리카·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째로 큰 대륙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구 유일의 ‘주인 없는 땅’이다. 1959년 만들어진 남극조약 때문이다. 조약은 남극에서 어떠한 영유권도 항구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평화적 이용, 과학 조사와 교류의 허용, 군사 행동의 금지, 핵실험이나 방사능 유출을 금지하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따라서 어느 나라도 영토권 주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미국은 지금까지 남극대륙의 ‘맏형’ 역할을 자처해오고 있다. 미국은 남극 로스해 구역에 맥머도 기지를 처음 세웠고, 남극반도에 파머기지를 지었다. 또 남위 90도 남극점에 ‘아문센-스콧’ 기지도 운영하고 있다. 남극 최대의 기지인 맥머도 기지는 한꺼번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다. 공항과 호텔이나 슈퍼마켓·술집·은행까지 갖추고 있어 하나의 소도시를 이루고 있다.
 
남극 조약에 따라 기존의 영유권 주장이 보류돼 있고, 새로운 영유권 주장이 금지돼 있지만, 오래 전부터 남극을 자국 영토라 주장한 나라도 있다. 노르웨이·뉴질랜드·아르헨티나·영국·호주·칠레·프랑스가 그들이다. 이들 7개 국은 모두 1911년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이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한 이래로, 자국민의 남극 탐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다. 주인 없는 땅에 먼저 가서 깃발을 꽂아 주인임을 주장할 수 있는 ‘무주지 선점(無主地 先占)’이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영토권 주장을 위해 남극에서 자국민이 아기를 출산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7개 국조차 특정 국가의 영유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남극조약을 받아들이고 있다.
 
왜 세계 각국은 동토의 땅 남극을 이토록 갈망할까. 남극은 자원의 보고다. 남극대륙에는 인류가 10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 자원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석탄과 철·구리·니켈·금·은 등도 풍부하다. 당연히 세계 각국이 남극의 천연자원에 눈독을 들였다. 이 때문에 1998년 남극환경보호의정서가 발효된 이래, 오는 2048년까지 50년간 광물자원 개발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런 체제는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써 남극은 과학 연구를 비롯한 평화적 이용을 위한 곳이다. 우주관측과 남극 생물의 진화·생태 연구, 지구온난화와 남극빙하의 변화, 남극 대기·해양이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 등이 그 대상이다. 최근에는 남극 빙하 1~2㎞ 아래에 존재하는 빙저호에 대한 연구 또한 활발하다. 빙저호는 이처럼 두꺼운 빙하 아래에 있기 때문에 햇볕도 미치지 못하고 대기와 차단된 채 수천만 년간 외부와 격리된 상태로 존재해 왔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예측돼 연구가치가 뛰어나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지난해 말 ‘2019년 주목해야 할 과학분야 현안(What to watch for in 2019) 10선’을 발표하면서 남극 빙하 변화 연구를 1순위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자원고갈 시대를 대비해 우주 강국들을 중심으로 소행성과 달의 천연자원을 캐오는 것을 염두에 둔 연구까지 진행하고 있는 점을 미뤄보면, 남극대륙 역시 순수한 과학의 목적만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신형철 극지연구소 정책협력부장은 “남극은 현재로선 어느 나라도 영토로 주장할 수도, 광물자원을 개발할 수도 없지만, 남극기지 경쟁의 이면에는 과학연구를 넘어 미래의 가능성을 붙들어 놓으려는 의도가 숨어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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