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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선 당리당략보다 국익이 우선

한반도 평화와 초당 외교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한반도 평화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과 미국을 압박할 목적으로 북한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무력시위 카드를 꺼내 들면서다. 정부와 여당은 ‘발사체’ 또는 ‘신형전술유도무기’라는 모호한 이름으로 지난 4일 북한이 동해로 발사한 무기들의 실체를 가리고 있지만,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불안하게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가 깨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정부·여당은 북한의 도발 수위를 최대한 낮춰 평가하며 ‘로키’로 대응하고 있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미사일을 미사일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의 저자세를 질타하며 대북정책의 전면적 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흔들릴 때마다 익히 보아온 모습이다.
  

정치적 유불리와 당리당략 따라
현실을 축소·과장하거나 왜곡하고
언론이 이를 부추기는 한
한반도 평화의 꿈은 멀어질 뿐

발사체인가 미사일인가
 
국회의장을 단장으로 한 의원외교단이 이번 주 중국에 다녀왔다. 하지만 방중단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빠졌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과 관련한 대여(對與) 투쟁 국면에서 외국에 간다는 게 당에 눈치가 보여 안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집권이 목적인 정당이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외교에서는 당리당략보다 국익이 우선이다. 제대로 된 정당의 지도부라면 의원들이 설사 그런 태도를 보이더라도 정쟁은 정쟁이고, 국익은 국익이라며 등을 떠밀어서라도 보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지혜롭고 성숙하게 조절하고 해소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특히 전쟁과 평화를 좌우하는 대외정책에서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과 갈등은 국가의 안전과 운명을 위태롭게 한다. 한반도 평화와 직결된 외교정책이나 대북정책에서만큼은 정당이나 정파 간 이해보다 국익을 앞세우는 초당(超黨)적 접근이 필요하다.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연세대 통일연구원과 통일부 산하 통일연구원이 ‘문재인 정부와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를 주제로 지난달 공동개최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기자는 남남갈등의 해소 없이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국익보다 정쟁 … 방중 거부한 한국당
 
한반도 평화의 일차적 당사자는 남북한이다. 그러나 북한이 강조하는 ‘우리 민족끼리’ 정신으로 남과 북이 똘똘 뭉쳐도 그것만으로 한반도 평화는 보장되지 않는다.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적(敵)이면서 한국의 동맹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 없이는 한반도 평화가 불가능한 구조다. 북·미가 적대 관계를 지속하는 한 한반도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평화는 실현 불가능하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한반도 평화의 선행 조건이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에 합의했다. 새로운 관계 수립의 최종 목적지는 관계 정상화다. 관계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은 북한 핵이다.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북·미가 관계를 정상화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해야 북·미 관계가 정상화할 수 있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도 가능하다.
 
일시적으로 남북 관계가 호전되더라도 비핵화 문제에서 진전이 없으면 남북 관계는 언제든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비핵화 해법을 둘러싸고 미국이 주장하는 일괄타결식 빅딜론과 북한이 고집하는 단계적 비핵화론이 하노이에서 충돌하면서 그동안 진전을 보여온 남북관계도 다시 냉각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비핵화의 선순환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낙관론이다.
 
하노이에서 다시 확인된 것은 미국의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논리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북한이 요구하는 상응 조치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논리이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선호하는 ‘리비아식 해법’이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은 중재자와 촉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한국의 여론은 양분돼 있다. 한쪽에 현실론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명분론이 있다. 현실론에 선 쪽을 동맹파 또는 한·미 공조 우선파라고 하면 명분론에 선 쪽은 자주파 또는 남북공조 우선파다. 현실론자들은 세계 제1의 강대국 미국과 협력하지 않고는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한·미 동맹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미국과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분론에 선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미국이 초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운명을 미국의 손에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의식 속에는 한반도 분단에 대한 미국 책임론이 암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유럽에서는 패전국 독일이 분단됐지만, 아시아에서는 패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분단됐다. 냉전의 두 주역인 미국과 소련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였지만, 35년간 일제의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인들로서는 원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 책임의 일부라도 미국이 인정한다면 남북이 화해하고 협력해 한반도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한국인들의 노력을 이해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 명분론자들의 생각이다. 6·25 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현실론과 명분론, 동맹파와 자주파로 갈라져 극심한 진영 갈등을 겪어 왔다.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로 상대 진영을 친미우파 또는 종북좌파로 낙인찍고, 적대시하고 있다.
  
동맹론·자주론 이분법 넘어서야
 
한반도 평화의 선결 요건인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실론과 명분론, 동맹론과 자주론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양쪽의 눈치를 살피는 소심하고 비굴한 태도로는 결코 자신감을 갖기 어렵다.
 
한국은 더이상 과거의 약소국이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전 세계 일곱 개 나라 중 하나다. 한·미 동맹 의존 구조에 기인한 심리적 무력감만 아니라면 한국의 군사력도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한국은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해법을 만들어 미국과 북한을 그쪽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때론 설득하고, 때론 압박하는 배짱과 용기도 필요하다.
 
동맹국 사이에도 이견은 있을 수 있다. 미국이 재채기만 해도 독감에 걸릴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서는 대미 의존 구조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가진 핵무기에 지레 겁을 먹고, 평양의 비위를 맞추며 평화를 구걸하는 태도로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낀 구조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북한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하는 북한 동포를 위해 세습 정권의 독재자 김정은에게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관계에서도, 한·미 관계에서도, 그리고 국제사회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남남 갈등 해소가 평화의 전제 조건
 
그런 자신감의 대전제는 남남 갈등 해소다. 동맹론과 자주론 둘 다 일리가 있지만, 그 자체로는 한계와 맹점도 분명하다. 한쪽 입장만 고집하는 것은 맹목적 아집이고, 비현실적 흑백논리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무게 중심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잃어서는 안 된다.
 
개인과 당파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대국적 안목과 진정한 애국심, 용기없이 갈등의 해소는 어렵다. 정치적 유불리와 당리당략에 따라 현실을 과장 또는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고, 언론이 이를 부추기는 한 남남 갈등은 해소될 수 없다. 국론을 결집하기보다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한반도 평화의 꿈은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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