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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 10주기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5월 9일은 장영희(1952~2009)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 되는 날이다. [중앙 포토]

5월 9일은 장영희(1952~2009)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 되는 날이다. [중앙 포토]

기적이란 다른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프고 힘들어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까 노심초사하며 버텨낸 나날들이 바로 기적이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9일은 장영희(1952~2009)가 세상을 떠난 지 10주기 되는 날이다.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자 영문학자, 번역가였던 그는 우리에게는 감동적인 글을 남긴 수필가로 더욱 기억에 남아 있다. 장영희는 생전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밝고 긍정적인 사고로 세상의 빛이 되는 보석 같은 글을 남겼다.
 
영문학자 장왕록(1924~1994)의 딸로 태어난 그는 평생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생후 1년에 찾아온 소아마비 장애로 평생 목발과 보조기에 의지한 삶을 살아야 했다. 장애로 인한 불편함과 마음의 상처는 그의 책 곳곳에 드러난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가끔 목발과 보조기 없이 꼼짝할 수 없는 상태로 길바닥에 앉다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악몽을 꾸곤 했었다. 그 느낌은 비참한 좌절감, 지독한 당혹감이었다. (『내 생애 단 한 번』)
장영희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며 긍정의 기운이 넘치는 글을 썼다. [중앙 포토]

장영희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며 긍정의 기운이 넘치는 글을 썼다. [중앙 포토]

 
장애에 이어 지독한 암도 그를 끝까지 괴롭혔다. 2001년 유방암에 이어 2004년 척추암을 선고받았다. 투병 1년 만에 강단으로 복귀해 많은 이들이 안도했지만 2008년 암은 간으로 전이됐다. 생전 자신이 장애인이나 암 환자로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그는 “내 삶은 ‘천형(天刑)’은커녕 ‘천혜(天惠)’의 삶”이라고 했다. 
 
넘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이 죽을힘을 다해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됐다고 난 확신한다.
 
장영희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며 긍정의 기운이 넘치는 글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완성된 책이 장 교수의 대표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작업한 이 책은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고통스러운 암 투병 중에도 그림 작가 선정에서부터 제목, 책의 디자인까지 모두 저자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이 책은 2009년 5월 8일 처음 인쇄됐는데 장영희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다음 날인 5월 9일 그는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책 표지

책 표지

 
공교롭게도 이 책은 10주기를 며칠 앞둔 지난달 말에 100쇄를 돌파했다. 샘터는 최근 100쇄 기념 판으로 표지를 새롭게 꾸민 양장본을 출간했다.
 
이 밖에도 장영희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내 생애 단 한 번』『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등 수필집을 다수 남겼다. 아버지 장왕록의 10주기를 기리며 기념집『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엮어냈고, 번역서로는 『종이 시계』『슬픈 카페의 노래』『이름 없는 너에게』 등도 냈다.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생일 그리고 축복』의 인기로 문학 전도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아버지 장왕록의 10주기를 기리며 기념집『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들고 있는 장영희 [중앙 포토]

아버지 장왕록의 10주기를 기리며 기념집『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들고 있는 장영희 [중앙 포토]

 
샘터는 10주기를 맞이해 장영희가 남긴 글 가운데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문장만을 뽑아 한권으로 묶은 책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을 펴냈다. 책에는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존재합니다. 그래서 희망은 우리가 삶에서 공짜로 누리는 제일 멋진 축복입니다.” 처럼 장영희가 남긴 주옥같은 글들이 가득하다.
 
장영희가 사망한 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그리움은 여전하다. 장영희의 제자들은 그를 추모하는 에세이집 『당신과 함께라면 언제라도 봄』(샘터)을 펴냈다. 제자 김치헌 신부는 책에 “선생님이 빈자리는 그리움과 아쉬움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뿌려 놓이신 씨앗들이 작은 장영희들로 성장해 하나의 장영희로 되어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적었다.
 
이해인(74) 수녀는 10주기 추모글 ‘그리움도 들풀처럼 자라서’를 발표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가족과 친지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능력 있는 영문학자, 지혜로운 교수, 감칠맛 나는 향기의 에세이스트 그리고 자연과 사람을 따뜻하게 대할 줄 알던 휴머니스트로서의 인간 장영희를 우리는 사랑했습니다. (중략) 살아있는 모든 날이 축복이고 생일이라고 살아온 기적은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영희님이 하는 말은 항상 다른 이의 말보다 힘이 있습니다. 힘찬 파도처럼 생기 있는 모습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10주기 당일인 9일에는 서울시 마포구 백범로 서강대 마태오관에서 장영희 추모 낭독회가 열린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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