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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마약 경유지 된 한국…“여차하면 서울에 풀면 그만”

지난해 부산본부세관은 부산항을 거쳐 중국으로 가려던 컨테이너에서 코카인 64kg이 숨겨진 가방을 적발했다. 이 코카인은 부산항 개항 이래 최대 규모로 시가 1900억원 상당에 달했다. [뉴스1]

지난해 부산본부세관은 부산항을 거쳐 중국으로 가려던 컨테이너에서 코카인 64kg이 숨겨진 가방을 적발했다. 이 코카인은 부산항 개항 이래 최대 규모로 시가 1900억원 상당에 달했다. [뉴스1]

지난해 11월 부산항에 적재된 컨테이너에서 수상한 검은 가방이 발견됐다. 고철더미 등에 숨겨진 이 가방에는 비닐로 밀봉한 마약이 무더기로 숨겨져 있었다. 이날 세관에 적발된 코카인은 총 64㎏, 200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에콰도르에서 출발해 멕시코를 거쳐 부산항에 들어왔지만 원래는 대부분 중국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세계 마약상들, 한국 타깃 왜
한때 청정국, 감시 피하기 쉬워
태국→서울→일본, 남미→부산→중국
작년 176kg 적발, 일부 국내에 풀려

“5kg만 빼돌려도 16만명이 투약”
경찰, 버닝썬 계기로 마약과 전쟁

지난해 8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원룸에 경찰과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이 들이닥쳤다. 원룸에는 필로폰 112㎏(300만 명 투약분)이 보관됐었고 이날 90㎏이 압수됐다. 태국 방콕항을 출발해 한국에 들어온 필로폰은 당초 일본 등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일부는 국내로 유통됐다.
 
한국이 마약 밀수의 ‘중간 경유지’로 세계 마약상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 나아가 한국을 거쳐가는 마약 일부가 국내에 직접 유통되기도 한다.  
 
지난 3일 전북지방경찰청에서 비타민으로 위장해 필로폰을 밀반입한 태국 마약 조직을 검거한 경찰이 증거물을 분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전북지방경찰청에서 비타민으로 위장해 필로폰을 밀반입한 태국 마약 조직을 검거한 경찰이 증거물을 분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 마약청정국이라는 타이틀은 옛말이 됐다. 통상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이 20명을 넘지 않을 때 마약청정국으로 분류되는데, 인구 5000만 명인 한국의 마약사범은 이미 2015년부터 기준선인 1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도 마약사범 1만2613명이 붙잡혔고, 올해에도 마약 집중 단속 등으로 1만 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마약의 중간기지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마약청정국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이미 마약 공급국으로 세계 수사기관의 이목을 받는 동남아, 중국, 대만 등에서 직접 특정 국가로 밀수하는 것보다 마약 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한국을 거치면 위험 부담이 덜하다고 본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 세관 등에서 마약을 단속하는 기술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인원이나 화물을 점검하기는 쉽지 않다”며 “일단 어떻게든 한국에만 마약을 들여오면 이후 중국, 일본 등으로 보내거나 여차하면 한국에 유통하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두 달 마약사범 1677명 붙잡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런 식으로 들어온 마약은 실제 일부가 국내에 유통되기도 한다. 해외로 보내기 전 일부를 국내 마약상들에게 떼어주는 식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외국계 채팅 메신저 등을 통한 손쉬운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국내에서도 마약 수요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파악하고 있다. 과거 연예인 등 일부의 전유물이었던 마약이 학생, 주부, 직장인 등 일반인을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이주만 경찰청 마약수사계장은 “드러나지 않은 규모가 커 국내 마약 유통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다”며 “마약 조직원들도 서로를 모르는 점조직 형태라 투약자를 검거해도 몸통까지 추적하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국내에 중간 경유로 들어온 마약 중 5㎏만 빼돌려져도 16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 뿌려지는 것”이라며 “공항, 항만 등에서 조기 적발해야 유통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마약 밀수 루트가 다양해지는 것도 문제다. 과거 국내에 들어온 마약은 대부분 ‘중국발(發)’이었다. 그런데 최근엔 동남아, 대만 등에서 마약이 넘어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국이 마약밀수범을 극형으로 처벌하는 등 강력 단속에 나서자 대량 밀수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대검찰청 마약범죄백서에 따르면 중국인 마약밀수범은 2017년 89명으로 전체 밀수범의 47.9%였다. 전년보다 점유율이 18% 줄었다. 반면 태국인 밀수범은 2013년에는 한명도 없었다가 2015년 13명, 2017년에는 75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는 사이 국내에선 때아닌 ‘마약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버닝썬 사태  등으로 마약 이슈가 논란이 되자 집중 단속에 나서면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월 25일부터 두달 간 전국에서 마약류 사범 1746명이 붙잡혔고 585명이 구속됐다. 이중 마약 투약자나 유통책 등 마약사범은 1677명(566명 구속)이었고,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범죄자도 69명이 검거됐다. 가수 박유천(33), 방송인 로버트 할리(61),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인 황하나(31)씨 등 유명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대거 검거됐다.  
  
“한국, 경유지 넘어 소비국 단계 인정을”
 
하지만 이는 근래에 갑자기 마약사범이 급증했다기보다 경찰의 적극적 수사로 이미 물밑에 있던 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마약 투약자 검거도 필요하지만 국내에 중간 경유 등으로 들어오는 마약을 조기에 적발하는 ‘국경선 차단’이 더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국제협력팀장은 “중간 경유지를 넘어 마약 소비국으로 접어드는 단계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단순 검거 실적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마약의 폐해를 확실히 알리고 마약 수요를 장기적으로 줄여나가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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