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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석유수출 금지, 이란 경제 옥죄지만 세계 경제도 휘청

이란 국기가 휘날리는 유전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국기가 휘날리는 유전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은 지난 6개월 간 이란산 석유 수입 금지를 면제 받던 8개국에 대한 예외 조치를 지난 2일 중단했다. 그리스·이탈리아·대만과 한국·중국·인도·일본·터키가 대상이다. 미국은 이란 경제의 핵심인 원유 수출을 사실상 틀어 막는 혹독한 봉쇄를 시작했다.
 
2015년 7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유엔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이란과 핵 합의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하면서 대이란 경제 제재가 일부 완화됐다. 하지만 2016년 들어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을 불신하며 2017년 5월 핵 합의에서 이탈하고 그해 8월 금속 등에 대한 1차 제재에 이어 11월엔 석유 등에 대한 2차 제재에 각각 들어갔다. 이번 8개국의 수입 예외 조치 중단은 6개월 간의 2차 제재 유예 기간이 끝나면서 이뤄졌다. 이번 예외 조치 중단으로 대이란 경제제재를 일부 완화했던 이란 핵 합의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미국은 국내법으로 대이란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에 보복할 수 있어 국제사회가 대놓고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이란은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제재가 부분 해제됐던 2016년 13.4%에 이르렀던 GDP 성장률은 지난해 -1.5%로 떨어졌고, 올해는 -3.6%로 전망된다. 4월 발표된 IMF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는 GDP 성장률이 지난해 -3.9%, 올해는 -6%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모든 데이터와 전망이 모두 암울하다.
 
이란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국민이 선출한 하산 루하니 대통령(사진 아래)과 국회의원에 대한 임면권을 갖는 신정체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서구식 체제로 바꾸기를 원한다. [AP=연합뉴스]

이란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국민이 선출한 하산 루하니 대통령(사진 아래)과 국회의원에 대한 임면권을 갖는 신정체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서구식 체제로 바꾸기를 원한다. [AP=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2016년 9.1%가 떨어졌던 물가는 지난해 40%가 뛰었다. IMF의 지하드 아주르 중동·중앙아 담당 국장은 지난달 28일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서 “이란의 올해 물가 상승률이 4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 동요를 우려한 테헤란 정부는 임금 인상 등 대책을 내놨지만, 먹힐지 미지수다. 
 
2016년 이란 현지 취재 당시 경제 관계자들로부터 “지식 기반산업을 키워 경제적으로 도약하고 싶은데 오랜 투자 정체로 두뇌 유출이 심각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란은 이슬람권에서 터키·이집트와 함께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는 드문 나라다. 과학기술과 교육에 꾸준히 투자해 경제 역량을 길러왔다. 군주제를 유지하기 위해 오일달러를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선심 정책에 쏟아온 걸프 지역 산유국과는 다르다. 하지만 제재가 계속되면 이란의 제조업 기반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재가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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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경제 제재로 고통스럽지만 미국도 원하는 것을 얻기 힘들 전망이다. 트럼프의 목표가 너무 야심 차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9월 25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우리는 모든 국가가 이란 정권을 고립시키고 종교적 정당한 운명을 되찾으려고 분투하는 이란 국민을 지지하도록 요청한다”고 말했다. 목표가 이란 체제의 괴멸과 권력 교체임을 분명히 한 발언이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탄생한 ‘반미 신정 체제’가 ‘친미 세속국가’로 바뀌는 ‘레짐 체인지(체제변화)’를 원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란은 현재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이 투표로 뽑지만, 이슬람 시아파의 최고 지도자가 이들과 사법부 판사들과 군대인 공화국 수비대 고위 지휘관에 대한 임면권을 쥐는 ‘신정 체제’다. 40년 전 혁명 당시 민주화 세력이 종교계의 힘을 빌린 결과다.
 
이란은 최고지도자 할리 하메네이(위 사진)가 국민이 선출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한 임면권을 갖는 신정체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서구식 체제로 바꾸기를 원한다. [EPA=연합뉴스]

이란은 최고지도자 할리 하메네이(위 사진)가 국민이 선출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한 임면권을 갖는 신정체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서구식 체제로 바꾸기를 원한다. [EPA=연합뉴스]

또 다른 문제는 석유 수급이다. 트럼프는 이란산 없이도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의 증산으로 수급과 가격 유지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달 26일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에게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전화해 ‘유가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트위터에선 “사우디와 다른 국가들에 공급 확대를 얘기했으며 모두 동의했다”고 했다. 하루 100만~200만 배럴에 이르렀던 이란 석유 수출의 감소분을 다른 나라의 증산으로 벌충하겠다는 이야기다. 트럼프의 이 발언에 당시 국제 유가는 하루에 3%가 떨어졌다.
 
하지만 사우디나 UAE에 비해 품질이 좋은 이란산은 대체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함량이 많은 이란산 초경질유는 특히 그렇다. 이는 한국 정유산업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게다가 OPEC 회원국 중 석유 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가 국정 마비에 빠진 상황에서 3위인 이란의 수출마저 봉쇄하면 수급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유가가 요동칠 가능성도 있어 트럼프의 립 서비스만 바라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란이 제재에서 벗어날 방법은 있을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미국의 경제 제재 완화 사례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과거 제재 대상국이 체제전환이나 개혁에 나설 경우 제재를 완화하고 국교를 회복해왔다. 베트남은 전쟁포로·실종미군 문제 해결 노력과 도이머이(개혁) 추진, 노동·인권 개선의 결과 94년 제재 전면 철폐와 국교 정상화를 이뤘다. 미얀마는 민간 정부 등장과 정치범 석방, 언론 자유화, 경제개방의 결과 2016년 이를 이뤘다. 리비아는 2003년 대랑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하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서 이듬해 이 두 가지를 얻었다.
 
하지만 이란이 베트남·미얀마·리비아식 유화 조치를 먼저 취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란의 종교 권력을 무너뜨리는 레짐 체인지는 지금 상황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초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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