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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겪는 시말서…‘무조건 제 잘못’식으로 쓰면 안 돼

시말서

시말서

#직장인 이모(36)씨는 업무용 비품을 구매하다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 제품 선택을 잘못해서 비싼 제품을 샀다. 원래 사려던 제품과 구매품을 착각해서 빚어진 일이다. 가격 차가 10배 정도 났다. 납품받은 뒤에야 영수증을 보고 실수를 깨달았다. “시말서를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대형 마트의 한 직원은 업무시간에 손님들이 사용하는 육아휴게소에서 휴대전화를 보며 쉬기 일쑤다. 직원 복장을 하고서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다른 직원이 떠안는다. 동료와 매장에서 싸우기도 한다. 일하다 말고 장을 보는 경우도 있다. 여러 차례 경고를 받고도 바뀌지 않았다. 상사가 시말서 제출을 명령했다. 그러나 제출을 거부하며 회사와 갈등 중이다.
 
흔히 업무상 과실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거나 규정을 어긴 행위를 ‘시말서 감’이라고들 한다. 시말서는 써야 하는 근로자나 지시하는 상사 모두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대체로 징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때론 시말서 제출 여부를 두고 회사와 근로자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는 이유다.
 
회사의 취업규칙에 어떻게 규정되어 있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말서는 징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말서 제출로 마무리되고, 그냥 넘어가면 여간 다행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다른 징계가 내려질 수 있다. 그러니 ‘시말서 감’이 생기면 고민될 수밖에 없다.
 
회사의 시말서 제출 명령은 업무지시에 해당한다. 따라서 제출을 거부하면 그 자체가 징계 사유다. 시말서를 안 내다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시말서 미제출을 이유로 해고와 같은 과도한 중징계는 허용되지 않는다. 징계 정당성이 인정되더라도 징계양정이 지나치게 과하면 부당한 징계가 된다. 물론 시말서가 누적되면 징계의 강도는 높아질 수 있다.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지경까지 이를 수 있다.
 
시말서 작성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무조건 잘못했다는 식으로 썼다가는 나중에 화를 부를 수 있다.  
 
본인이 잘못한 게 아닌 내용을 쓰면 안 된다. 깊이 반성한다는 취지로 작은 과실을 큰일인 양 포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금물이다. 잘못한 사안의 이상도 이하도 적으면 곤란한 일을 겪을 수 있어서다.
 
시말서는 말 그대로 업무의 시작과 끝의 과정을 적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식인 ‘시말서’ 대신 ‘경위서’로 표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업무 과정의 과실을 인정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이란 뜻에서다. 따라서 누구라도 할 수 있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업무 프로세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점을 담는 게 좋다.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과실이라고 판단되면 그 요인을 적시하고, 제거하는 방법을 제안해도 된다.
 
가끔 상사가 시말서를 보고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인다”며 다시 쓰라고 반려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요구는 거부해도 된다. 시말서는 반성문이 아니다.
 
대법원(2010년 1월)은 “사죄문 또는 반성문 성격의 시말서 제출 명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강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를 거부했다고 징계를 하면 부당 징계가 된다. 부당 징계가 내려지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해 구제받을 수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이 기사는 고용과 일자리, 일터의 이야기를 전하는 디지털 코너 [김기찬의 인(人)프라]에 소개된 글입니다. 인터넷 (joongang.joins.com)에서 더 많은 콘텐트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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