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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90쪽 vs 심재철 13쪽 '1980년 진술서' 전말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이끌었던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당시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의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합동수사본부 진술서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튜브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튜브 캡처]

 
지난달 유시민 이사장의 1980년 합수부 진술서를 일부 공개하며 “21살 청년의 자필 진술서가 다른 민주화 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었다”고 주장했던 심재철 의원은 6일 유 이사장 진술서 전체와 자신의 진술서를 모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당시 운동권 내부에선 심 의원이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서 동지들을 배신하는 진술을 한 탓에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투옥됐다는 게 30년 가까이 정설로 통해왔다. 심 의원의 진술서 공개는 그런 정설에 대한 반격 차원이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유시민 진술서 내용 봤더니
유 이사장은 자신의 진술서 일부가 공개된 뒤인 지난 1일 팟캐스트 ‘알릴레오’를 통해 ‘밀고’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요지는 “저는 그 진술서를 보면 잘 썼다고 생각한다. 감출 것은 다 감췄고 부인할 것은 다 부인했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심 의원은 추가 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재반박했다.
 
①진술서 작성 시점=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심 의원이 공개한 건 자필 진술서다. 제가 추측하기엔 1980년 7월 중순 이후에 쓴 거로 보인다. 심 의원이 잡혀 온 6월 30일 이후 합수부에 재차 불려가 심 의원이 진술한 내용에 맞춰 자술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유 이사장 진술서엔 ‘1980.6.12 자술인 柳時敏(유시민)’이라는 자필이 남아있다. 심 의원의 자필 진술서 작성 시점은 ‘1980.6.30’으로 적혀있다. 즉 “심 의원 진술에 맞춰 썼다”는 유 이사장의 해명은 시간상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이다.
 
②진술의 범위=유 이사장은 “학생운동가 수칙에 따라 진술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첫째, 학내 비밀조직과 써클을 감추고 모든 일은 학생회에서 한 것으로 진술. 둘째, 정치인들과 묶어 조작하는 것에 휘말리면 안 된다. 특히 김대중 총재와는 절대 얽히지 말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공개된 유 이사장의 진술서엔 당시 운동권 내 여러 단체명과 모임명은 물론, 학생 운동 관련 인사 77명의 이름이 실명 그대로 적혀있다. 심 의원은 “유 이사장의 진술로 인해 행적이 소상히 밝혀진 77명 학우 가운데, 당시 미체포 상태였던 18명은 그의 진술 직후인 6월 17일 지명수배됐다”고 주장했다.
 
또 유 이사장 진술서엔 “‘민청협’(민주청년협의회) 회장이고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사회학과)”이란 표현도 등장한다. 민청협은 신군부에 반대하던 학생 운동 단체이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서울대 복학생 대표였다.  
 
③누가 밀고 했나=유 이사장은 “(당시) 비밀조직의 전모가 거의 몽땅 다 들어가 있었는데, 거기에 ‘유시민 경제78 농촌법학회’가 딱 나와 있었다. 그래서 봤더니 우리 친구들 진술서였다”고 말했다. 농촌법학회 동료들이 자신을 밀고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심 의원은 “유 이사장 진술서에는 농촌법학회 핵심 인물들이 2명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즉 유 이사장이 먼저 농촌법학회 동료들을 누설했다는 게 심 의원의 주장이다.
 
◇유시민·심재철 진술서 비교하면
PDF 파일 형식으로 공개된 진술서는 ‘치안본부’ 양식의 서류에 자필로 작성됐다. 심 의원은 13쪽, 유 이사장은 90쪽 분량이다. 심 의원은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나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기소 당사자였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13쪽을 썼지만, 다른 동료들은 2~5쪽 분량만 적어냈다. 최소한으로 진술하자는 불문율 때문이다. 그런데 유 이사장은 혼자서만 90쪽을 적어냈다. 경찰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1980년 계엄보통군법회의의 심 의원 내란 혐의 재판 기록 중 법원이 채택한 증거 목록 표. [심재철 의원실 제공]

1980년 계엄보통군법회의의 심 의원 내란 혐의 재판 기록 중 법원이 채택한 증거 목록 표. [심재철 의원실 제공]

 
◇유시민 “수사관 속이려 창작”
논란이 커지자 유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 진술은 수사관을 속이기 위해 그럴듯하게 창작해서 적은 것이다. 또 심 의원 등 이미 사정 당국에 노출된 사람들만 적극적으로 내세운 것일 뿐, 비밀조직을 공개했다거나, 경찰에 적극 협조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유 이사장은 이해찬 대표에 대해선 “이해찬 선배가 몇 천명 보는 데서 내 멱살을 잡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 진술하지 않기는 어려웠다”며 “다만 ‘그렇다’고 하지 않고 ‘그렇게 들었다’는 식의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 측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형제처럼 지냈던 심 의원에게 법적 대응은 할 생각도 없고, 논쟁을 계속 이어갈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이번 논쟁과 관련 당시 서울대 학생운동권이었던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고 문익환 목사, 이해찬 대표, 설훈 최고위원 등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투옥시킨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유죄판결에서 핵심법정증언이 바로 형(심 의원)의 증언임이 역사적 진실로 인정되고 있다는 것을 어찌 형만 부정하냐”고 비판했다. 이에 심 의원은 “내가 체포되기 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은 다른 피고인의 자백으로 완성돼 있었다”고 반박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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