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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 설탕과 소금만으로는…

최훈 논설주간

최훈 논설주간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현 정권의 이념 지향을 압축한 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 두 구절이다. 1992년 대선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썼던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의 문재인식 버전이다. 요즘 진보가 ‘기득권 횡포의 수단’쯤으로 여기는 ‘자유’란 단어를 버린 게 차이라면 차이겠다.
 

평등과 공정, 진보의 특성이지만
인간은 훨씬 복잡한 욕망덩어리
다양한 욕구를 이해·조화시키는
균형감각 지녀야 진보정치 성공

이런 진보 이상의 뿌리는 구약성서의 “공평한 제재와 정의가 물과 강처럼 흐르게 하라(let judgement run down as waters, and righteousness as a mighty stream, 아모스서)” 인 듯싶다. 평등, 공정, 정의…. 도덕적이고 강렬하다. 인간이 거역하기 힘든 천상의 복음(福音)인 만치 지상의 인간이 도달하긴 버거운 가치가 아닐는지. 애초 속세엔 존재하지 않는 낙원일 수도 있겠다. 아니 표 앞에 마주선 정치인들의 두뇌에나 있는 허상(虛像)은 아닐까.
 
평등과 공정을 재촉하는 권력의 반복된 호각 소리에 소시민들의 가책(呵責)은 점점 숨을 곳마저 없어진다. 푼푼이 월급 모아 아파트 평수 늘려가는 재미. 내 땅 한 뼘을 가져 보고픈 소망. 남의 재건축·재개발 ‘대박’이 부럽기만 한 노후 불안. 돈 좀 모아 내 아이만큼은 학군 좋은 동네로 옮겨 주고픈 조바심. 자나 깨나 이윤과 사업 좀 키워 보려 궁리하는 기업주. 자식 또래 알바생 급료를 견줘 봐야 하는 편의점 주인. 정규직 늘려주다 일 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내 ‘신의 직장’. 오늘도 ‘갑질’과 ‘꼰대’, ‘미투’를 조심하자 다짐하며 집 나서는 부장들. 뭉텅이로 떼 가는 내 세금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게으른 이들에게 내 땀의 대가를 축내는 건 아닌지. 평등은 도대체 기여에 따른 보상인지, 불평등을 막기 위한 평등인 건지….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살며, 소시민과 도덕적 피의자의 경계선을 매일 오락가락 넘나든다. 심판이 두려운 이 고단한 삶은 나의 잘못인가, 권력의 아집인가. 타고난 온갖 욕망덩어리인 소시민의 삶은 세속의 5년 권력마다 왜 이리 고통과 단죄(斷罪)를 받는 건가.
 
공평한 자본주의…. 이 형용모순에 맞닥뜨린 소시민들의 혼돈은 복잡하다. “하느님이 다스리는 이 땅이 부로 풍요로워진다면, 하느님의 선하심과 정의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빈곤과 결핍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을 욕되게 할 뿐”이라는 건 프로테스탄트 청교도들의 신념이었다. “상인은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며 이윤 추구와 부의 축적을 죄악시하던 중세 가톨릭에 맞선 대전환이었다. 이게 자본주의 정신으로 이어졌다고 막스 베버는 해석했다(『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부정한 방법만 아니라면 북돋워줘야 할 자본주의 정신은 지금 공평이라는 매서운 회초리를 맞을까 잔뜩 움츠러들었다. 평등이란 의도의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전환, 부동산 중과세, 강사법의 정책들. 갈수록 소시민의 삶을 고난의 광야(廣野)로 헤매게 하고 있다. 노예해방, 인권법 등 ‘도덕의 혁명’ 시대는 지난 지 한참이다.  
 
지금은 소득 3만 달러 자본주의 시대 아닌가. 뛰어난 진보주의자인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는 『구십 평생 내가 배운 것들』을 통해 “정치는 도덕적 목적을 위한 실용주의적 행위여야 한다”고 회고했다. 무엇이 몸통이고 뭐가 꼬리인가.
 
진보주의자들의 ‘평등’과 ‘공정’ 편향은 인간에게 설탕과 소금만 먹고 살라는 격일 수 있다고 도덕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시사했다. 저서 『바른 마음(The Righteous Mind)』에서 그는 설탕과 소금만 파는 식당을 가상의 비유로 제시한다. 설탕만 파는 ‘The True Taste’ 식당의 메뉴라곤 설탕·꿀·나무진액·인공합성물의 네가지 당류뿐이다. 생물학자인 식당 주인은 설명한다. “혀의 미뢰는 단맛·신맛·짠맛·쓴맛·감칠맛의 다섯 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중 단맛 수용체가 활성화될 때 뇌에서 도파민이 가장 강하게 분출된다. 칼로리당 쾌락의 단위로 봤을 때 감미료만을 먹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장사가 잘되느냐는 하이트에게 주인의 답이 이렇다. “형편없지요. 그래도 다행인 건 저 아래쪽에 화학자가 연 소금 식당보다는 좀 낫습니다.” 설탕은 배려나 복리, 소금은 공평·인권과 비슷한 성질로 그는 추론했다. 하이트의 반복된 실험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들은 소수자 배려,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 자유의 핵심 도덕 중 배려와 공평성, 자유를 확연히 중시했다.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여섯 가지 도덕 기반들에 골고루 의지했다. “요리가 맛있으려면 반드시 다섯 가지 미각 수용체를 지닌 우리 혀를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이트의 결론이다.
 
진보의 공정과 평등, 이해하지만 그것만으론 곤란하다. 소시민의 욕구에 대한 너그러운 이해와 포용, 균형감각의 조화가 필수다. 권력의 ‘내로남불’이 왜 반복되는가. 공정과 평등으로만 갈 수 있는 낙원이라…. 그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란 단언컨대 없다.
 
최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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