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집 떠나 월세방 얻는 검사들…누가 '정치검찰'로 내몰았나

'야단법석(야단法석)'에서는 법조계의 각종 이슈와 트렌드를 중앙일보 법조팀 기자들의 시각으로 재조명합니다. '야단法석'을 통해 법조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세요.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군데군데 휴일이 끼어 있어 연휴 기분 만끽하신 분들 많을 겁니다. 하지만 법조팀 주요 출입처 중 한 곳인 검찰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중엔 연휴 기간에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1일은 휴일인 근로자의 날이었지만,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닌 공무원들은 모두 나와서 정상 근무를 했습니다. 이날 만난 한 검사는 "우리는 근로자가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보니 주 52시간 근무도 엄격히 지키기가 힘듭니다.

 
"아빠, 오늘 와? 내일 와?"
일러스트=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어린이날을 앞둔 어느 날 저녁, 수도권 지역에 근무하는 한 강력통 검사와 그의 아내를 같이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연휴에 뭘 할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어린이날에 아이 손 잡고 놀이공원 한번 못 가봤다"고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이번 어린이날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하더군요. 옆에 있던 아내에게 "남편이 가정에 충실하냐"고 묻자 "말해서 뭐하겠느냐"며 남편에게 눈을 흘겼습니다. 괜한 질문에 분위기만 싸늘해졌네요. 
 
서울 지역에 근무 중인 다른 검사도 가슴 아픈(?) 에피소드 하나를 전했습니다. 아침 출근길을 배웅하던 딸이 "아빠, 오늘 들어와? 내일 들어와?"라고 물었다는 겁니다. 평소 휴일 근무와 야근을 밥 먹듯 하다 보니 생긴 '웃픈' 이야기들입니다.
 
저도 옆에서 지켜보는 처지이긴 하지만, 일선에서 일하는 검사와 수사관들은 정말 밤샘을 밥 먹듯 하고 있습니다. 검사실 중엔 1인용 접이식 간이침대인 'x꾸x꾸'가 비치된 곳이 제법 있습니다. "낮잠 자는 용도"냐고 물었다가 소금 벼락을 맞을 뻔했습니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검사실과 판사실의 다른 풍경을 전했습니다. 그는 "경험에 비춰봤을 때 사무실에 컵라면이 비치된 경우가 판사실은 30% 정도라면, 검사실은 99%"라며 "일선 검사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출근 시간은 있어도 퇴근 시간은 없다"
검찰 '김학의 수사단' 사무실이 들어선 서울동부지검 청사. [연합뉴스]

검찰 '김학의 수사단' 사무실이 들어선 서울동부지검 청사. [연합뉴스]

일반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도 이럴진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형 수사가 시작되면 사실상 휴일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성폭력'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서울동부지검에 꾸려진 검찰 수사단은 지난 3월 29일 발족했습니다.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검사 14명이 수사단으로 차출됐습니다. 지방에서 파견 온 검사 가운데 일부는 서울에 주거지가 없어 사무실 인근인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숙소를 얻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당시에도 전국에서 수많은 인원이 차출됐습니다. 한 파견 검사는 "3개월만 있으면 된다고 해서 왔는데 수사가 1년 동안 이어졌다"며 괴로워했다는 후문입니다. 이 검사는 처음엔 서울중앙지검 인근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오피스텔을 얻었는데 관리비를 포함한 월세가 100만원을 웃돌았다고 하네요. 결국 몇달 못 버티고 다른 동네로 숙소를 옮겼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다른 검사에게 전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더욱 슬픕니다. "어차피 집에도 못 가는데 방을 왜 얻느냐"는 겁니다.
 
평일 오후 10시 무렵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로비 앞으로 택시들이 줄지어 들어서는 모습. [중앙포토]

평일 오후 10시 무렵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로비 앞으로 택시들이 줄지어 들어서는 모습. [중앙포토]

힘들기는 검찰 수사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규모 수사가 시작되면 수사관들도 대거 파견되기 마련이죠.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올라온 직원들은 머물 곳이 없습니다. 대검 복지후생과에 따르면 검찰은 서울에 주거지가 없는 직원들을 위해 두 개의 숙소, 이른바 '비상대기소'를 운영 중입니다. 옛 서울지검 남부지청 자리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카튼빌', 서울동부지검 인근인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라온빌'이 검찰의 비상대기소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정기인사 때 서울로 발령 난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의 항상 만실이라 대기 순번도 꽤 길다고 하네요.
 
한 수사관은 검찰의 업무 강도에 대해 "출근 시간은 있어도 퇴근 시간은 없다"는 표현으로 설명을 대신했습니다. 대형 수사가 시작되면 새벽 3~4시가 넘어 퇴근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어쨌든 다음날 9시까진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수술 대상' 정치검찰 누가 만드나?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게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해외 순방 중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정면 비판하고 나선 문무일 검찰총장이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4일 귀국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게양된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해외 순방 중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정면 비판하고 나선 문무일 검찰총장이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4일 귀국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외부에서 검찰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합니다. 대표적인 게 '정치검찰' 논란입니다. 정권의 목표에 따라 검찰이란 '칼'이 춤을 추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외치는 목소리도 한결같습니다. 바로 "검찰 개혁"입니다. 모든 정권의 공통된 관심사였습니다. '개혁의 대상'인 검찰은 늘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수술을 한 적은 여태 없었는데, 이번엔 정말 칼을 댈 모양입니다. 국회에서 '요란한' 과정을 거쳐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 이른바 '검찰개혁 법안'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습니다. 검찰은 이제 1년 안에 진짜 수술을 당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드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정치검찰이 문제라면, 과연 그 정치검찰은 누가 만드는 걸까요.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최근 '패스트트랙'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진 여야 공방은 무더기 '쌍방 고발' 사태를 불러왔습니다. 패스트트랙 대치로 검찰에 고발된 국회의원만 수십명에 달합니다. 모든 사건을 '수술 대상'인 검찰에 맡겼습니다. 이를 본 검찰 관계자는 "정치검찰이라고 비판하면서 왜 자꾸 정치 사건을 검찰로만 가져오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법률위원장, 이재정 대변인(오른쪽)을 비롯한 당직자들이 패스트트랙 대치에 따른 폭력 사태와 관련, 지난달 29일 오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19명과 보좌진 2명에 대해 특수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법률위원장, 이재정 대변인(오른쪽)을 비롯한 당직자들이 패스트트랙 대치에 따른 폭력 사태와 관련, 지난달 29일 오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19명과 보좌진 2명에 대해 특수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현직 검찰 간부는 "정치적인 사건의 경우 수사 착수와 동시에 담당 검사가 '정치 검사'로 찍힐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건엔 양쪽 당사자가 있기 마련인데, 어느 결론이 나오더라도 한쪽으로부턴 욕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겁니다. 그렇다고 수사를 대충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죠.
 
이런 상황을 두고 "개혁 대상인 검찰에 키를 쥐어준 꼴"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검찰의 기소 여부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의원직 상실과 피선거권 박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직 검사장급 인사는 "정치권이 검찰 힘을 뺀다면서 되레 키워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권의 각종 고소·고발장들은 당장 수사에 착수하지 않더라도 검찰 캐비넷에 차곡차곡 쌓이게 됩니다. 언제든 정치인들의 목을 겨눌 수 있는 카드가 왕창 생기는 셈이죠. 대화와 타협이 없는 '정치의 실종'이 불러온 비극입니다.
 
검찰을 두둔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권의 힘이 강할 땐 앞장서 하명수사를 수행하고, 힘이 빠지면 누구보다 먼저 돌아서서 정권에 칼을 겨누는 게 지금까지의 검찰이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 검찰의 민낯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 역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권을 무기로 검찰을 장악하고 입맛에 맞게 이용하려 들었습니다. 수사기관 사이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중립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개혁이라면 검찰의 힘을 뺀다 한들 이름만 다른 수사기관이 검찰의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검찰 수술, 해야 합니다. 하지만 환부를 도려내는 것과 동시에 병을 얻게 된 원인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혹시 수술을 맡은 의사의 손이 청결하지 못해 환부가 썩고 곪게 된 것은 아닐까요. 어린이날 아이 손 잡고 놀이공원 한 번 제대로 못 가보며 일에 파묻혀 산 검사를 누가 정치검찰로 내몰았을까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입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다른 기자들의 연재 기사 보기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