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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동아시아의 미래, 한·일 유대 재발견에 달렸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일본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퇴위하고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즉위했다. 사후 교대가 아닌 생전 양위여서 침울한 기색은 전혀 없고 명랑한 분위기 일색이다. 연호도 ‘세상의 평화를 이룬다’는 뜻의 헤이세이(平成)에서 ‘아름다운 평화를 이룬다’는 뜻의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일왕은 권력이 아닌 권위를 체현하기 때문에 역사를 만들기보다는 시대를 상징한다.
 
레이와 일본의 출범은 다양한 방식으로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한·일 관계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나루히토 일왕은 1960년생, 아베 총리는 1954년생이다. 전후 처음으로 권위와 권력이 모두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로 교체되었다. 일본은 이제 침략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의 부채 의식에서 벗어나 거리낌 없이 제 꿈을 펼쳐나갈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내정뿐 아니라 대일 외교에서도 적폐 청산이 기승을 부린다. 정반대를 지향하는 한국과 일본이 ‘아름다운 평화를 이루기’는 어렵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나 전시 노무 동원 문제 등 과거사에 사로잡혀 붕괴 직전인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는 힘들 것이다.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심기일전(心機一轉)해 과거사 갈등 해결을 모색하고 공동 번영 사업을 추진한다면 관계 개선의 길은 열릴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레이와 일본과 한국은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로 진화할 것이다. 3년 후면 양국에서 견원지간(犬猿之間)의 정권은 물러나고 상대방에게 유연한 정권이 들어설 수 있다. 또 한·일은 세력을 확장하는 중국, 국익을 우선하는 미국,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을 상대하는데 협력이 유리하다고 깨닫고 서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실제 동아시아 국제 정세가 한·일에 불리하게 변하더라도 한·일 상호 의존은 약화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한 해 1000만 명을 넘어선 양국 방문자도 한·일 관계를 지탱하는 우군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한·일은 공조·공감하기 쉬운 구조와 요소를 넓고 깊게 갖추고 있다.
 
세계적 문명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의 『총·균·쇠』는 지난 20년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웅장한 스케일로 묘사한 이 책 마지막 장에서 그는 한·일 국민을 ‘유년기를 함께 지낸 쌍둥이 형제와 같다’고 비유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양국 국민에게 상호 불신과 증오의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두 나라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었는지를 증명한 자신의 결론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대립과 갈등은 서로 파괴적일 뿐 이로울 건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는 한국과 일본이 오랜 유대를 성공적으로 재발견하느냐 여부에 좌우될 것이다.’
 
한·일 관계를 국내적 시각에서만 바라보면 서로 싸우고 미워한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지만 다이아몬드와 같이 국제적 시야에서 조망하면 한국과 일본처럼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높은 수준의 문명을 창출해온 경우도 드물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놀라운 위상이 명백한 증거가 아닌가! 일본에서 레이와 시대가 개막된 것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현안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한·일 관계의 역사를 상호 화해의 관점에서 새로 정립하기 바란다. 제국과 식민지의 역사 화해는 서양에서도 이룩하지 못한 어려운 과제이다. 한·일 양국 국민은 세계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 화해를 향해 절차탁마하며 전진하기를 기대한다. 특히 양국의 정책 결정과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상의 결단과 분발을 촉구한다. 그래야 한·일은 ‘아름다운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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