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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의 퍼스펙티브] 과도한 국가 개입은 개인의 도덕적 해이 부른다

정부 개입의 한계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국민의 일상생활과 경제 활동에 국가 개입이 급격히 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챙겨야 한다며 돈을 푸는 사업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그럴수록 개인과 기업은 위축되고 무력감을 느낀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이를 ‘국가주의’라고 비판하였다. 제대로 된 논쟁을 기대했는데 아쉽다.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달린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을 전후하여 유럽의 사회는 계급으로 분열되고 갈등이 심화하였다. 이에 편승하여 공산주의와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광범하게 퍼졌다. 개인은 무력감과 두려움에 빠졌다. 이에 대응하여 교황 피우스 11세는 개인의 존엄과 개성이 존중되는 인간 중심적인 사회를 지키고자 했다. 그는 1931년에 5월 15일에 40주년(Quadragesimo Anno) 교서를 통해 보충성(Subsidiarität)의 원칙을 발표하였다. 보충성의 원칙이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예수회 신부인 넬-부로이닝(Oswald von Nell-Breuning)의 자문과 연구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들어서 보충성의 원칙은 정치·경제·사회 분야 등에서 널리 논의되었다. 유럽공동체 결성이 구성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보충성의 원칙이 해법으로 등장했다. 92년 2월 7일 체결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조약은 유럽 통합의 원리로 보충성의 원칙을 채택하였다. 이후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공동체의 구성 국가들은 헌법을 개정하여 보충성의 원칙을 헌법에 명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보충성의 원칙은 90년대 후반부터 주로 지방분권의 원리로 논의되기 시작하여 2004년 지방분권특별법에 규정되었고, 2017년을 전후하여 제안된 각종 헌법 개정안에서 채택되었다.
 
넬-브로이닝은 68년 발간한 『사회건축법』(Baugesetze der Gesellschaft)에서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법칙을 제시했다. 제1 법칙으로 연대성의 원칙을, 제2 법칙으로 보충성의 원칙을 꼽았다. 연대성은 개인과 공동체 간의 공동 운명에 근거한 보증적 상호 책임이다. 보충성은 이 상호 책임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책임 분담의 원칙이다. 연대성과 보충성은 항상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보충성이 없는 연대성은 무자비한 집단주의를 초래한다.
 
보충성은 양면성을 가진다. 적극적인 측면은 국가나 지방정부 등의 공동체에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의무를 부과한다. 지나친 개인주의로 공동체 해체를 막기 위해 집권적 경향을 가진다. 소극적인 측면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개인에 맡겨야 하며 공동체의 개입을 금지한다. 집단주의로부터 개인을 지키기 위해 분권적 경향을 가진다. 보충성의 원칙은 또한 공동체 상호 간의 관계에서 개인에 근접한 공동체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국가가 과도하게 팽창하는 오늘날 보충성의 원칙은 대부분 소극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논의된다. 즉, 국가의 활동을 제한하기 위한 원리가 된다.
 
스위스의 연방의회를 비롯하여 많은 공공건물에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Unus pro omnibus, omnes pro uno)’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연대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스위스에서 전통적으로 연방 문서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1868년 가을 알프스 지역에 대홍수가 발생하자 전국적인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많이 사용되었다. 그 후 국가 기관과 정당, 정치인들이 널리 사용하면서 스위스의 국가 모토가 되었다. 우연하게도 북한 헌법에도 같은 구절이 있다. 북한 헌법 제63조는 “…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 원칙에 기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스위스와 북한은 모두 연대성을 강조하지만, 스위스는 국민이 자유롭고 행복한 가장 번영하는 국가이고, 북한은 국민이 질곡에 시달리는 최빈국에 속한다. 스위스와 북한의 운명을 가른 것은 보충성의 원칙이다. 스위스는 자발적 연대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보충성을 헌법에 보장한다.
 
헌법에 규정하기 이전에도 보충성을 헌법상 일반 원칙으로 인정하여 인간 중심의 분권 국가를 구현하였다. 북한은 강압적인 연대성만 일방적으로 강조할 뿐 보충성의 원칙을 무시한다. 특히 북한 헌법 제64조는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행복한 물질문화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제5조에서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를 채택하여 국가 중심의 집권적 집단주의를 채택하였다.
 
연대성과 보충성의 원칙에 근거해서 몇 가지 현안을 짚어본다. 먼저 복지국가의 문제이다. 무상 급식, 청년 수당, 고교 무상 교육 등 각종의 무상 정책이 쏟아진다. 한편에서는 국가의 과도한 팽창을 우려하여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우리의 복지 비중이 작기 때문에 더 늘려야 한다고 지지한다.
 
보충성의 원칙은 개인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거나 가족·사회단체 등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는 국가 등 공동체의 개입을 금지한다.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국가가 나서면 불필요한 개입이 된다. 개인이 자기 책임으로 해결하려는 노력 대신에 국가에 의존하는 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 이에 보충성은 불필요한 지원을 차단하기 위한 필요성 심사(Bedüftigkeitsprüfung)를 요구한다. 국가의 지원은 자조(自助)를 위한 도움이어야 한다.
 
국민연금이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에 개입하는 주주권 행사도 현안이다. 정부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천명하였다. 시장과 경쟁 질서에 기반을 둔 보충적인 경제 질서는 효율적인 경제 성과를 가져오는 조건이 된다. 경쟁 과정에 국가가 개입하면 국민 복지의 총량은 감소한다. 경쟁이 가져오는 혁신 효과를 국가가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에 의해 조종되는 경제체제는 정보의 결함으로 인해 실패한다. 시장의 실패로 국가가 개입하는 경우에도 가능한 시장 질서에 합치되어야 하고,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 책임성을 적게 제한하도록 보충적이어야 한다. 국가의 개입은 국가 실패를 초래하지 않는 것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한정되어야 한다. 과도한 국가 개입은 사람 중심이 아니라 국가 중심이 된다.
 
시·도 지방소방관의 신분 전환도 첨예한 쟁점 사안이다. 정부는 지방소방관의 처우와 장비를 개선하기 위하여 지방직인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소방사무는 일상생활에서 화재를 예방하고, 조기에 신속하게 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일선 현장의 기초지방정부가 감당할 수 있고, 우선해야 한다. 광역지방정부나 국가는 기초지방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경우에 보충적으로만 개입해야 한다.
 
외국에서도 기초지방정부의 지방직 소방관이 소방사무를 수행한다. 지방의 소방사무는 당연히 지방소방관이 주민과 함께 수행해야 한다. 지방소방관의 처우와 장비가 열악하면 국가가 지방정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여 개선하면 된다. 지방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여 국가가 직접 개입할 일은 아니다.
 
보충성의 원칙은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의 자기 책임에 맡겨야 한다. 그래야 개인과 기업이 활기를 찾고 경제도 회복될 수 있다. 보충성은 능력에 따른 책임 분담을 위한 정의의 원칙인 동시에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한 경제성의 원칙이다. 국가는 개인이나 사회단체, 지방이 할 수 없는 일에만 보충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개헌특별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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