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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만 대접하는 유럽영화제에 오기가 생겨 뛰어들었죠"

제20회 전주영화제에서 공로패를 받은 임안자 영화평론가를 3일 영화제 헌정파티에 앞서 단독 인터뷰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20회 전주영화제에서 공로패를 받은 임안자 영화평론가를 3일 영화제 헌정파티에 앞서 단독 인터뷰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제대로 통역할 사람도 없던 시대에 한국영화를 유럽에서 빛나게 해준 사람.”(임권택 감독)  
“나의 은인, 아름다운 아줌마, 실천적 국제영화평론가.”(이장호 감독)
 
충무로 거장들이 이런 애정 어린 헌사를 바친 이는 올해 20주년을 맞은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공로패를 받은 임안자(77) 영화평론가다. 스위스 바젤에 사는 그는 1980~2000년대 유럽에 한국영화를 앞장서 알린 일등공신. 9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신인감독상) 심사위원을 맡는 등 유럽 영화제 활동에 더해, 부산‧전주 등 한국에 국제영화제 토대를 닦는 데 힘을 보태며 ‘영화제 전문가’로 불렸다. 이런 공로로 2000년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2004년부터 5년간 전주 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역임한 그가 전주영화제에서 공로패를 받은 건 10년 전에 이어 두 번째. 3일 영화제의 헌정파티에서 그를 만났다.
   
가난 떨치고 간 유럽서 만난 모국의 영화
3일 제20회 전주영화제가 마련한 임안자 평론가 헌정파티에서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김승수 전주시장, 임안자 평론가, 스위스인 남편 페터 플루바허, 이충직 집행위원장(왼쪽부터)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3일 제20회 전주영화제가 마련한 임안자 평론가 헌정파티에서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김승수 전주시장, 임안자 평론가, 스위스인 남편 페터 플루바허, 이충직 집행위원장(왼쪽부터)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그냥 ‘영화광’이라 써주세요. 영화를 무척 사랑하는.”
수줍게 웃는 그의 곁엔 영화감독 임권택‧박광수·임순례‧오멸‧허진호 등을 비롯해 김동호 부산 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 송길한 작가, 제작자 심재명 대표(명필름), 이춘연 대표(씨네2000) 등 충무로 동료들이 가득했다. 스위스에서 함께 온 남편, 맏딸도 곁을 지켰다.  
 
“올해로 제가 이국생활 53년째예요. 지금은 댐에 수몰된 전라도 용담이 고향인데, 스물네 살에 교환 간호사로 미국을 거쳐, 파독 간호사 친구가 있던 스위스 바젤에 갔죠. 스위스 사람을 만나 가족을 꾸렸지만 한국 사람이란 마음이 약해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런 정체성을 지켜준 게 한국영화에요. 나의 정신세계, 살아 숨 쉬는 고향이죠.”
 
어릴 적 영화에 대한 기억이라곤 “한국전쟁 때 어머니 따라 거리 천막에서 주저앉아 본 프로파간다 선전물이 다였다”는 그다.  
 
간호사로 스위스에 가서 영화평론가가 됐다.  
“문학가를 꿈꿨는데 집이 쫄딱 망해서 간호사가 됐다. 미국 선교단체가 세운 전주예수병원에서 일하며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같은 작가들 원서를 읽으려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다. 스위스에 건너가선 시민병원에 취직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게 됐는데, 문학과 닮은 영화가 좋더라. 간호사도 그만두고 미국서 번 돈을 학비로 썼다. 독일어를 빠르게 배워, 졸업 후엔 잡지에 영화평도 기고했다.”
 
영화 '바보 선언' 포스터.

영화 '바보 선언' 포스터.

한국영화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스위스인 친구가 예술영화관을 열었는데, 88년 이장호 감독의 ‘바보 선언’을 저를 위해 구해서 틀어줬다. 한국영화를 제대로 본 것이 처음이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듬해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가 정말 폭발적이었다. 유럽에선 잘 몰랐던 한국영화가 2관왕을 차지한 것이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대상,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가 청년비평가상을 받았다. 특히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보곤 정신적으로 압도당한 관객이 많았다. 저는 지금도 이 영화를 두고 전 세계에 가장 아름다운 불교예술이 일본도, 중국도 아닌 한국에 있다고 말한다.”
 
"일본영화만 찾는 유럽 영화제에 오기 생겼죠"
1989년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대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가 됐다.

1989년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대상을 수상하며 큰 화제가 됐다.

영화 속 한국 불교 철학이 유럽관객에게 이해될 수 있었던 데는 그가 직접 배 감독을 인터뷰해 번역한 자료가 큰 역할을 했다. 영어‧독일어‧불어를 구사하는 그는 이때를 계기로 유럽을 찾은 한국감독들의 통역자 역할에 나섰다. 직접 새로운 한국영화를 발굴해 해외 영화제에 소개하거나 회고전 등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94년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국제평론가상을 받은 정지영 감독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한 예다. 정 감독은 본지와 통화에서 “임안자 선생님이 영화제에 소개해준 덕에 초청받아 수상까지 했다”면서 “영화를 꿰뚫는 직관과 통찰력도 예리한 분”이라 했다.  
 
임 평론가 자신이 가장 보람됐다고 돌이킨 건 2005년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회고전과 명예황금곰상(공로상) 수상을 성사시킨 일이다. “임권택 감독은 한국 현실을 누구보다 몸으로 겪으며 영화를 익히셨잖아요. 우리나라 영화에 임 감독님이 없었다면 아름답지만 밑 빠진 항아리 같았을 거예요.” 
이렇게 말한 그는 “당시만 해도 유럽에선 동양 예술 하면 다 일본에 있는 줄 알았다”면서 “일본은 임 감독님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 유럽 주요 영화제에서 회고전도 여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훌륭한 감독이 있는데도 안 부를까, 오기가 생겼다. 감독님 영화가 가장 많이 소개된 베를린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쫓아가 기획부터 발 벗고 나섰다”고 했다.
 
3일 임권택 감독이 제20회 전주영화제가 마련한 임안자 영화평론가 헌정파티를 찾았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3일 임권택 감독이 제20회 전주영화제가 마련한 임안자 영화평론가 헌정파티를 찾았다. [사진 전주국제영화제]

스위스의 '충무로 사랑방', 손자들은 케이팝 매니어
임 평론가의 스위스 집엔 유럽을 찾은 충무로 영화인들이 묵어가는 사랑방도 생겼다. ‘한국영화의 방’이란 이름까지 붙였다. “제가 한창 일하던 1990~2000년대엔 한 해에 영화제 아홉 곳을 갔죠. 가족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이젠 다들 한국영화 전문가예요. 손자들은 케이팝을 좋아하고요.(웃음)”  
 
2008년 뇌경색으로 갑작스레 전주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자리를 떠났던 그는 건강을 되찾은 이후 이 영화제 고문으로 활동해왔다. “나고 자란 용담이 수몰된 뒤 오빠 집이 있는 전주가 고향이 됐다. 자유‧독립‧소통의 세 가지 철학을 잘 지키며 20주년을 맞은 전주영화제가 자랑스럽다”고 그는 말했다. 앞서 1996년 1회 때부터 8년간 고문 역할을 했던 부산영화제가 5년 전 ‘다이빙 벨’ 사태로 어려움을 겪을 땐 “정말 가슴이 아팠다”며 “영화제는 외부 간섭 없이 자유롭게 감독들의 정신을 살아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괴물' '스윙키즈' 달라진 세대 시선 인상적
영화 '스윙키즈'는 한국전쟁 당시 거제포로수용소를 무대로, 이념을 뛰어넘어 춤을 통해 우정을 나누는 다국적 댄스팀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NEW]

영화 '스윙키즈'는 한국전쟁 당시 거제포로수용소를 무대로, 이념을 뛰어넘어 춤을 통해 우정을 나누는 다국적 댄스팀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진 NEW]

최근엔 영화에 더해 평창 겨울올림픽‧케이팝‧클래식 다방면에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는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변화도 찾고 있다. 
 
“올 초에 본 강형철 감독의 ‘스윙키즈’가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서 천대받던 흑인과 우리 수용소에 갇힌 북한 젊은이, 남한 피난민 등 전혀 다른 정체성의 사람들이 같이 스윙을 추는 데 감격했죠.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선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버리면서 괴물이 출현하잖아요. 한국전쟁 때 미국이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들이 있는데, 우리 늙은 세대는 알면서도 미국에 직접 대놓고 못 했던 얘기를 요즘 젊은 세대는 이렇듯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하기 시작했어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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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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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