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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운동하는 백수” 신도림동 여자 복싱 세계 챔피언

3월 26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 특설 권투경기장. 여성 복서 신보미레(25) 선수의 빨간 글러브가 루핀더 카우르(24ㆍ인도)의 왼쪽 얼굴을 때렸다.
 
9라운드까지 팽팽한 경기를 펼치던 루핀더는 중심을 잃고 두 손을 링 바닥에 짚었다. 루핀더는 이내 몸을 일으켜 10라운드까지 경기를 마쳤지만, 심판들은 신 선수의 판정승을 선언했다. 그가 WIBA 수퍼페더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순간이다. 
 
3월 26일 해운대 벡스코 권투경기장, 신보미레 선수가 인도 루핀더 카우르 전 WIBA 수퍼페더급 챔피언을 다운시키는 장면. 신길체육관 제공

3월 26일 해운대 벡스코 권투경기장, 신보미레 선수가 인도 루핀더 카우르 전 WIBA 수퍼페더급 챔피언을 다운시키는 장면. 신길체육관 제공

 
지난달 새 챔피언이 훈련하고 있는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의 신길체육관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 그런데 챔피언이지만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신 선수는 “관장님 돈 쓰면서 딴 세계챔피언이니까요”라며 웃었다. 한국 선수가 외국 선수와 복싱경기를 하려면 상대 선수에 비행깃삯ㆍ숙박비ㆍ대전료(파이트머니)를 제공해야 한다. 인지도가 낮은 신인 여성 권투 선수 경기에 돈을 대주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돈은 윤강준 체육관장이 냈다고 한다. 신 선수의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러시아ㆍ태국에 있는 외국인 선수도 한국으로 초청하느라 돈이 더 들었다. 그렇게 쓴 돈이 1600만원이다. 결국 신 선수의 경기를 본 복싱 관계자가 세계타이틀 매치를 성사시켰다.
 
윤 관장은 “보미레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여자 선수라 적자를 감수했다”며 “WIBA 챔피언이 메이저 타이틀은 아니지만 이제 세계의 다른 선수들에게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챔피언이 된 소감을 묻자 신 선수는 “딱히 수입이 없으니, 또래 취업준비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래 취준생들이 직접 공부 스케줄을 짜듯, 혼자 운동 스케줄을 짠다. 매일 오전 10시에 체육관에 나와 달리기 6km를 뛰고, 2시간 근력운동을 한다. 오후엔 줄넘기와 자세연습으로 1시간 몸을 풀고, 샌드백과 미트를 30분 친다. 그 뒤 3시간이 회원들과 스파링을 하는 시간이다. 세계챔피언이 됐지만 수입이나 일과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더 공신력 있는 타이틀을 따야 하는 나로서는 그 과정이 ‘취업 준비’과 같다”고 말했다. 챔피언이지만 새로 잡힌 경기 일정이 없는 것도 신 선수를 힘들게 한다. 그는 “지금은 세계챔피언보다는 운동하는 백수에 가깝다”고 말했다.  
 
신보미레 선수는 1995년 4월 6일 서울 동작구에서 태어났다. 키는 168cm, 혈액형은 AB형이다. 서울여대 체육학과를 졸업해 현재 신길체육관 소속 프로복서로 활동한다. WIBA 슈퍼페더급 챔피언이다.

신보미레 선수는 1995년 4월 6일 서울 동작구에서 태어났다. 키는 168cm, 혈액형은 AB형이다. 서울여대 체육학과를 졸업해 현재 신길체육관 소속 프로복서로 활동한다. WIBA 슈퍼페더급 챔피언이다.

 
신보미레는 서울여대 체육학과 13학번이다. 원래 장래희망은 체육연구원이었다. 하지만 2학년 때 취미 삼아 시작해보려고 찾아간 권투 체육관에서 진로가 바뀌었다. 권투 글러브를 낀 그의 모습을 본 윤 관장이 ‘타고난 파이터’라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윤 관장은 선수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했고 그는 이를 받아들였다. 신 선수는 “처음엔 다른 사람들처럼 무난한 직장을 갖길 원했던 것 같다”며 “어려서부터 하고 싶던 걸 이제야 하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30살까지는 해보겠다”며 ‘헝그리 복서’로서 의지를 밝혔다.
 
그의 별명은 ‘걸크러쉬’다. 원래는 여자가 봐도 멋진 당찬 여자라는 의미다. 링 위에서 상대방을 '으깨버리는(crush)' 모습을 본 신 선수의 친구들이 지었다. 신 선수의 주특기는 상대방의 주먹을 맞으면서도 퍼붓는 연타다. 아직 테크닉은 부족하지만 타고난 신체 조건과 체력이 강점이다. 그의 현재 전적은 11전 7승(3TKO) 1패 3무다. 
 
꿈을 물었다. 신 선수는 “당연히 모든 복서의 꿈인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서는 것”이라며 “우선 국내 최고 여성 복서인 최현미(29) 선수에게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챔피언이니 기회를 달라”고 덧붙였다.
 

대한복싱협회에 따르면 현재 프로 복서로 실제 활동하는 선수는 남녀 합쳐 60명 정도다. 협회 관계자는 “생계유지는 어렵지만, 꿈을 가지고 전업으로 경기하는 선수들이 꽤 있다”고 했다. 윤 관장은 “운동하는 친구들은 생활이 어려워도 세계무대에 서기 위해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며 “작은 응원 하나가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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