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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 ‘시민과 함께’ 서울시 예술정책, 공공성 vs 예술성 갈등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지난 3월, 을지로 상업화랑에서 ‘박원순 개인전’이 열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가로 데뷔한 건 아니다. 소장 미술작가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서울-사람’이 ‘박원순 작가의 어시스턴트’를 자처해 을지로 재개발 사업 등 시장의 전시행정을 비판한 패러디 전시였다. 이들은 “어떤 정치인보다 공공미술·공공디자인·공공건축을 많이 언급하고, 임기 약 2700일 동안 ‘예술’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뉴스를 약 2700여 개 생산한 것이 박원순 시장”이라며 ‘시민을 위한다’는 그의 정치적 제스처를 ‘예술적 퍼포먼스’라 조롱했다.
 
예술가들의 비아냥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 문화예술정책의 방향성에서 비롯됐다. 기승전 ‘시민과 함께’를 외치는 박원순 시장이 시민들의 생활문화를 우선하며 순수예술 지원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듯한 시그널에 예술가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서울시 산하 서울문화재단과 세종문화회관의 조직 개편을 둘러싸고 일어난 잡음이 대표적이다.
 
예술가들, 박원순 시장의 정책 비판
 
지난 1월 14일부로 서울문화재단 조직도에서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이 사라졌다. 독립 예술본부였던 남산예술센터가 시민 생활문화를 관장하기 위해 신설된 지역문화본부 산하에 편제된 것이다. 극장장이 가졌던 모든 결재권은 지역문화본부장에게 귀속되고 극장장은 예술감독 역할만 수행하게 됐다.
 
연극인들은 현장 문화운동가 출신으로 지난해 부임한 김종휘 대표가 예술의 독립성을 침해하려는 시그널로 보고 있다. 결재권을 상실한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극장을 지역문화 카테고리 안에 두면 정치적 영향을 받게 된다”고 유감을 표했다. “예술에 대한 비전 없는 공공성 추구”라며 “앞으로 서울문화재단과 창작을 하려면 지원의 대가로 지역을 위해 뭐라도 의무적으로 해야 되는 건가”라고 묻는 예술가도 있다.
 
연극인들의 반발에 극장운영에 대한 TF팀까지 꾸려졌지만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재단의 ‘2019 예술지원사업 정기공모’ 결과 발표가 한 달 이상 연기되자 공연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 예술인들이 들고일어났다. 기존에 7개 창작공간에서 장르별로 진행되던 지원사업이 본부로 통합돼 담당자들이 흩어지고 팀원 10명 중 5명이 신입인 상황에서 업무량 폭주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서울문화재단 측은 “분산됐던 사업을 통합해 사용자 편의를 도모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예술인들은 재단이 예술지원사업보다 시민문화사업을 우선하다 사달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30일 재단측이 예술지원사업 체계 개선을 위한 정기간담회를 열겠다며 참여 예술가 구성에 나서자 구성 기준을 놓고 예술가들이 또다시 의문을 제기한 상태다.  
 
한편 세종문화회관은 지난 3월 소년소녀합창단과 청소년국악관현악단을 각각 서울시합창단과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부설 단체로 흡수통합시키기로 결정했다. 산하에 총 9개 예술단체를 둔 거대 조직 세종문화회관은 그간 대내외적으로 “몸집만 커져 운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지난해 부임한 김성규 사장이 무급 교육단체들을 성인 단체에 합병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술가들은 “예술성을 고려하지 않은 경영자의 판단”이라며 반발했다. 사단법인 한국합창총연합회가 합병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고, 한국합창작곡가협회도 “전국의 국공립 소년소녀합창단에게 비슷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세종문화회관 측은 “교육시스템 구축을 통해 공공극장의 책무인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한다. 향후 모든 산하 단체에 부설 유소년 단체를 설립하고 예술교육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부설 단체가 되면 성인 단체의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고 ‘티칭 아티스트’ 제도를 정비하기 위한 교육 컨설팅도 진행 중이라는 게 세종 측의 설명이다.
 
예술가들은 ‘단장’의 독립된 자리를 문제 삼는다. 통합 이후 서울시합창단 부지휘자가 소년소녀합창단장을 겸직할 예정이라서다. 이범준 한국합창작곡가협회장은 “단체의 장기적인 방향을 세워 끌고 갈 책임자를 없애는 것이 예술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성악가인 단원들이 합창 교육을 제대로 못해 예술성도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공 문화예술 정책을 놓고 예술지상주의와 문화민주주의가 대립하는 모양새다. 예술가들은 서울시가 ‘시민과 함께’를 외치는 명분인 ‘공공성’이 시정 홍보의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서울시는 “예술성을 결코 포기한 적 없다”고 항변한다.
 
서울문화재단 측은 “재단이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가 예술지원”이라면서 “전체 사업 중 예술지원사업 규모가 가장 크다. 예산도 전년도 160억에서 올해 180억으로 늘었고, 생활문화사업 예산은 40억 규모에 불과하다”고 했다. 세종문화회관 측도 “취미 수준을 넘어 미래 예술가 양성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권위 있는 객원지휘자를 위촉해 다양한 음악적 경험 기회를 확대할 예정이고, 예산도 전년 대비 6.2% 증액됐다”고 밝혔다.
 
서정협 서울시 문화본부장도 “예술성과 공공성을 조화시키는 정책 틀은 변함없다”면서 “시민들의 문화권을 향상시키는 ‘비전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과 예술인 권리를 보장하는 ‘서울예술인 플랜’이라는 마스터플랜 하에서 모든 문화행정을 전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성과 공공성의 공존 고민해야
 
예술성과 공공성은 사실 대립항이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가들만 설 수 있는 예술의전당의 유인택 신임 사장도 지난달 30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예술의 전당의 정체성은 공공성”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간 예술가들이 예술지상주의적 관점에서 활동해왔기에 적극적인 형태의 공공성을 실천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서지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는 “과거에는 예술 자체로서의 공공성을 인정받았지만 21세기 들어 예술에 더욱 적극적 형태의 공공성 구현이 강조되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라면서 “이런 시대의 변화 속에서 예술가들의 위기의식이 생겼다. 예술성이 담보된 예술 그 자체로의 공공성과 더불어 예술을 통한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도 예술가와 예술기관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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