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선데이 칼럼] 위로 필요한 시대…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철학박사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철학박사

그냥 배우가 아니었다. 탤런트 김혜자. “대사를 까먹었다”는 표현마저도 그가 하니까 자연스러운 대사처럼 어울렸다.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악기 하나씩 가지고 태어난다. 각자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기다. 서로 으르렁대기 바쁜 이 메마른 세태에 그 악기는 좀처럼 울릴 줄 모른다.
 
김혜자의 내레이션 연기는 발군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악기를 두드렸다. 한 번은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통해, 또 한 번은 백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통해. 시청자들은 뜨거운 눈물로 공감했다.
 
“내 삶은 때론 행복했고 때론 불행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내레이션 장면은 다시보기 할 때마다 감동을 되살려 낸다. 대상을 받은 김혜자는 계속 악기를 연주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과거-현재-미래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도구일 뿐이다. 도구가 우리를 구속한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거 때문에 우리는 괴로워하고,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래를 염려하며 잠을 못 이룬다. 오직 실재하는 것은 지금 여기일 뿐인데, 그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 과거와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말라는 김혜자의 호소는 그런 의미로 들린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참 눈부신 연주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록밴드 들국화 보컬 전인권의 목소리가 연상된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 행진 행진 행진….” 전인권의 목소리는 날카롭게 갈라지면서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우리의 ‘행진’을 가로막는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풀어놓는다.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 행진 행진 행진….” 전인권이 목 놓아 외치는 소리도 다름 아닌 현재를 붙잡으라는 얘기로 들린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 같다. 대배우는 위로가 되는 드라마를 만들어줘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예술이 주는 위로는 흔히 눈물을 동반한다. 우리 마음의 악기가 울리는 소리는 눈물로 표현된다.
 
우리 역사 속에도 많은 눈물이 있다. 눈물이 흘러넘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개개인의 삶과 행진이 이어지면 역사가 된다. 역사의 스트레스와 역사의 우울증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혜자의 내레이션을 우리 역사에 대입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필자의 가상 문구다. ‘우리 역사는 때론 행복했고 때론 불행했습니다. 역사가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온갖 역경을 딛고 지금 이렇게 잘살게 되어서 좋습니다. 안중근-3·1운동-이봉창-윤봉길-광복군으로 이어지는 항일 투쟁, 광복과 새 정부 수립의 새벽녘 향기, 우리도 잘살아보자는 산업화 바람, 백성이 주인 되는 민주화 열기, 평화와 통일의 21세기 희망…, 어느 시대이고 눈부시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가상 문구를 김혜자의 내레이션처럼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땅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이 땅의 삶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아빠였고, 누이였고, 오빠였으며, 딸·아들이었을 우리 국민 모두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김혜자의 감동은 그가 죽음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에 배가된다.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한 번뿐인 인생, 어떤 음악을 연주할 것인가. 좋은 음악은 전염된다. 세계의 유명한 명상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조언도 현재에 집중하라는 얘기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와 함께. 현재에 집중하는 길은 숨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에서 시작한다. 행복의 열쇠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철학박사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