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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점입가경의 ‘무선(無線)전쟁’ …‘선(線)’을 없애야 ‘선(先)’이 된다

정보통신기술 분야부터 가전까지 무선화 열풍… 삼성·애플·LG·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 각축장
 
글로벌 산업계에서 ‘무선(無線)전쟁’이 한창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부터 가전 업계까지 제품 무선화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과거에는 유선 형태로만 존재했던 분야가 기술 발전으로 무선화에 성공, 전에 없던 수요 창출과 기존 수요 흡수로 이어지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하고 있다. 이어폰·배터리·청소기 등이 대표적이다. 무선 전파를 이용하는 무인항공기 드론과, 무선 충전 방식 도입을 눈앞에 둔 전기자동차도 글로벌 무선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사진:ⓒ gettyimagesbank

사진:ⓒ gettyimagesbank


국내외 정보통신기술(ICT)과 가전 관련 업계에서 ‘무선(無線)전쟁’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과거에는 유선 형태로만 존재했던 제품이 기술 발전으로 무선 방식으로 거듭나 전에 없던 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기존 수요까지 흡수하고 있다. 귀에 꽂아 듣는 방식의 음향기기인 이어폰이 대표적이다. 애초 이어폰은 과거 수십 년 간 오직 긴 선을 통해 워크맨 등의 기계 본체와 직접 연결돼야만 이용할 수 있는 기기였다. 이 때문에 이어폰 이용자들은 휴대나 이동 중에 긴 선이 자주 꼬여서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이어폰=유선’ 공식은 글로벌 ICT 기업 애플이 2016년 블루투스(휴대기기끼리 연결해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하는 근거리 무선 기술 표준) 기반의 무선 이어폰 ‘에어팟(AirPods)’을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으로 깨졌다. 에어팟이 세계 최초 무선 이어폰인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브라기(Bragi)라는 독일 스타트업이 2015년 ‘대쉬’란 이름의 무선 이어폰을 내놓아 주목을 받는 등, 2010년대 들어 이어폰의 무선화가 활발히 진행됐다. 그중 시장에 충격을 안기면서 폭발적인, 의미 있는 수요 증가를 이끌어낸 제품이 에어팟이다. 애플 스마트폰 ‘아이폰’과 연동된다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결정적으로 어필됐다. 에어팟 출시 초기만 해도 일각에선 “불편하고 어색하다” “디자인이 별로다” 등 혹평이 따랐지만 분위기는 점차 달라졌다. 선 없는 이어폰 사용에 익숙해진 아이폰 이용자가 늘고 입소문이 나면서 에어팟에 대한 관심도가 그만큼 커졌다.
 
 
무선 이어폰 수요 급증 이끈 ‘에어팟’
 
실제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CPR)에 따르면 글로벌 무선 이어폰 판매량은 지난해 4600만대. 그중 에어팟이 3500만대로 전체 판매량의 4분의 3을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무선 이어폰의 글로벌 판매량은 에어팟을 중심으로 한 수요 증가에 힘입어 내년에 1억2900만대 규모로 급증할 전망이다. 소비자들이 이미 무선 아이폰의 편의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애플 측도 1세대 에어팟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3월 2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에서 2세대 에어팟을 공개했다. 배터리 수명 향상(1회 충전에 통화 3시간, 음악 재생 5시간 가능)과 음성 인식 인공지능(AI) 비서 ‘시리(Siri)’ 탑재, 무선충전 케이스 옵션 제공 등이 1세대 제품과의 주요 차별점이다. 해외에 이어 국내에서도 최근 정식 출시됐다.
 
이에 맞선 경쟁사들의 움직임도 만만찮다. 애플의 스마트폰 맞수 삼성전자가 지난 2월 열린 언팩 행사에서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10’ ‘갤럭시폴드’와 함께 무선 이어폰 ‘갤럭시버즈(Galaxy Buds)’를 새로 공개했다. 마찬가지로 무선 충전을 지원(1회 충전에 통화 5시간, 음악 재생 6시간 가능)해 에어팟을 정면 겨냥한 제품이다. 2개의 마이크를 주변 소음에 따라 조절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어댑티브 듀얼 마이크로폰’ 기능을 지원해 차별화를 꾀했다. 무게를 고려한 휴대성은 에어팟보다 다소 떨어진다는 평이지만, 에어팟 대비 수만원 저렴하게 책정된 가격이 무기다. 이윤정 CPR 애널리스트는 “갤럭시버즈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 브랜드인 갤럭시S 시리즈의 두터운 인지도를 바탕으로 무선 이어폰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키워나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또 다른 경쟁상대인 미국 ICT 기업 아마존 역시 무선 이어폰 경쟁에 최근 가세했다. 블룸버그통신은 4월 4일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아마존이 연내 출시를 목표로 AI 플랫폼 ‘알렉사(Alexa)’를 내장한 무선 이어폰을 개발 중”이라고 보도했다. 향상된 음질 제공과 물리적인 제스처로도 기기 제어가 가능한 기능 탑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일본 소니와 중국 화웨이 등도 무선 이어폰 경쟁의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애플의 수성(守城)이 이어질지, 후발주자들의 반격이 통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근래 들어 가전 분야에서도 무선전쟁이 치열하다. 이어폰처럼 청소기 분야에서 무선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글로벌 무선 청소기 시장은 2017년 기준 42억 달러 규모로 해마다 20~30%가량의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6년 50만대였던 무선 청소기 판매량이 지난해 100만대로 2년 만에 배로 증가한 것으로 가전 업계는 보고 있다. 세계 무선 청소기 시장의 개척자는 1993년 설립된 영국 가전 업체 다이슨으로 꼽힌다. 앞서 세계 최초로 먼지봉투가 필요 없는 진공청소기를 개발한 다이슨은 이후 청소기의 패러다임 자체도 유선에서 무선으로 바꾼 기업으로 평가된다. 이런 명성에 힘입어 고가 전략 고수에도 국내 프리미엄 청소기 시장에서 한동안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후발주자들의 기술력이 상향평준화하면서 ‘무선 청소기=다이슨’ 공식이 깨지고 기업 간 시장 경쟁이 과거보다 훨씬 치열해졌다. 연구·개발(R&D) 끝에 2015년 국내 최초 무선청소기를 선보인 LG전자가 대표주자다. LG전자 관계자는 “약 10년 간 9개국에서 5000여 명의 소비자를 직접 인터뷰하면서 (소비자들이) 청소기 전선을 기다랗게 늘린 채 집안 곳곳 이동하는 데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며 무선 청소기 R&D 과정의 뒷얘기를 전했다. 특히 일반적인 무선 청소기의 흡입력이 유선 청소기보다 약해 실용성이 떨어져, 수요 확보에도 애로점이 따르고 있다고 보고 품질 개선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이후 LG전자는 공기 중 미세먼지가 많아진 국내 실정을 고려, 물걸레 기능을 탑재한 무선 청소기 ‘코드제로 A9 파워드라이브 물걸레’를 지난해 말 선보였다. 지금은 다이슨을 제치고 국내 점유율을 50%대로 끌어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틈새시장 노리는 중소·중견기업에도 영향
 
다이슨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후발주자들의 공세에 과거 철옹성 같던 점유율을 계속 뺏기고 있다. 미국에선 현지 업체인 샤크닌자에 2017년 점유율 추월을 허용했고, 호주에서도 LG전자의 공세에 고전하고 있다. 올 초 미국 매체 컨슈머리포트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주된 이유로 다이슨 제품의 내구성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자체 조사 결과 다이슨 무선 청소기 이용자의 19%가 제품을 구입한 지 3년 안에 배터리 문제로 불편을 겪었으며, 12%는 브러시 오작동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다이슨은 최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껏 알려진 미비점 보완에 집중한 무선 청소기 신제품 ‘V11 컴플리트’를 선보이면서 반격에 나섰다.
 
이렇게 치열한 무선전쟁은 단순히 이어폰과 청소기 등 일부 분야만의 트렌드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다. 무인 항공기인 드론이나, 종이·모바일 기기를 오가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는 스마트펜 같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무선 기술을 필요로 한다. 최신 ICT의 집약체로 군림하는 스마트폰에선 부속품인 이어폰 외에도 핵심 부품인 배터리 분야에서 무선 기술 적용이 한창이다. 삼성전자 갤럭시S10엔 배터리 무선 공유 기능이 탑재됐는데, 다른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와 배터리 용량을 나눠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쉽게 말해 배터리를 하나의 기기에서 무선으로 다른 기기에 옮기는 기능이다. 그러자 맞수인 애플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ICT 전문 매체 나인투파이브맥은 4월 1일 밍치 궈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애플이 올해 선보일 신형 아이폰 시리즈에 배터리 무선 공유 기능을 탑재할 것”으로 전망했다.
 
두 기업이 이처럼 전반적인(all around) 무선화에 공을 들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ICT 업계 한 관계자는 “코드리스(무선화) 범위가 넓어질수록 (소비자가) 무선 기술이 적용된 신제품을 연쇄 구매할 개연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ICT와 제조 기반의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소비자를 겨냥한 신(新)무기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갤럭시S10을 쓰고 있는 소비자라면 갤럭시버즈에 눈독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갤럭시S10는 배터리 무선 공유 기능을 갖췄고, 갤럭시버즈도 무선 충전을 지원해 소비자 입장에서 두 제품을 동시에 쓸 때 시너지 효과가 있어서다. 거꾸로 갤럭시버즈 사용에 먼저 관심이 생겼다면 스마트폰을 갤럭시S10으로 교체하는 데도 그만큼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수요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게 요즘의 무선화 트렌드라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기업들이 라인업 전반의 무선화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 됐다. 때론 발 빠른 인수·합병(M&A)도 도움이 된다. 갤럭시버즈의 경우 삼성전자가 지난 2017년 인수를 완료한 하만카돈 산하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인 AKG의 음향기술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하만은 무선 스피커 분야에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글로벌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하만의 기술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오는 이유다.
 
무선 전쟁은 틈새시장을 노리는 중소·중견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소기업인 착한텔레콤은 과거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았던 팬텍의 ‘스카이(SKY)’ 브랜드를 인수한 후 무선이어폰 ‘스카이 핏 프로’와 무선충전패드 ‘스카이 멀티파워 패드’를 최근 출시했다. 이 회사처럼 R&D의 방향을 무선화로 선회하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워 틈새시장 공략에 도전하는 중소·중견기업이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성비 확보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결국 관건은 소비자가 실생활에서 만족할 만한 ‘차별화한 기능’ 한두 가지를 어떻게 포착해 제품 안에 잘 구현해내느냐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소형 배터리 쓰임새 많아져 생산량 늘리기로
 
한편 글로벌 무선 전쟁의 여파는 배터리 업계에도 미치고 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으로 유명한 LG화학의 경우 최근 다양한 무선 제품에 들어가는 소형 배터리 생산에도 힘쓰고 있다. LG화학 측은 올 초 1조2000억원을 투입해 중국 난징에서 배터리 공장을 증설한다고 밝히면서 “이번 투자는 전기차용 배터리뿐 아니라 무선 청소기와 전동공구 같은 비(非)ICT 분야용 원통형 배터리 수요 증가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 B3에 따르면 이런 원통형 배터리의 글로벌 수요는 다양한 무선 제품 시장의 확대 등으로 2015년 23억개 수준에서 연평균 27%씩 성장해 올해는 60억개 수준이 될 전망이다.
 
경쟁사인 삼성SDI 역시 중국 톈진에서 4000억원을 투자해 원통형 배터리 생산 라인을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7150억원으로 전년 대비 511.6% 급증했는데 그중 소형 배터리에서만 5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소형 배터리의 쓰임새가 많아지면서 배터리 업계에 그 영향이 고스란히 미치고 있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ICT와 가전을 넘나드는 무선화 추세에 짧은 시간 빠른 충전이 가능한, 그러면서도 장시간 사용이 가능한 배터리 성능이 요구되고 있다”며 “고성능 소형 배터리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또한 무선 전쟁의 시대가 가져온, 주목해야 할 풍경이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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